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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27. 2024

교강사 주차신청서 말고요.

 화요일은 오전 수업과 오후 수업 사이에 3시간의 공강이 있었다. 혼자 점심을 먹고 나서도 두 시간은 어딘가에 머물러야 했다. 그럴 때마다 유독 이십여 년 전, 대학생이던 시절이 생각났다. 공강이 있을 때는 과방에 들르곤 했다. 사랑방 같은 공간에는 ‘그날이 오면’이나 ‘잠들지 않은 남도’와 같은 노래가 있는 민중가요 악보집이 있었다. 그 책을 펴고 품 안에는 기타를 끼고 노래하던 복학생 형들과 후렴구에서 함께 떼창을 하던 우리가 있었다. 과방 테이블에 앉아 날적이 노트를 끄적이는 후배가 있었다. 바닥에 전지를 깔고 매직과 붓을 들고 대자보를 쓰는 동기가 있었고, 군복 입고 곧장 과방으로 온 휴가 나온 선배도 있었다.


그때는 '내가 좀 끼어도 될까?'하는 생각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굳이 먼저 권하지도 않는데 먼저 같이 밥 먹고 차 마시자고 하는 게, 괜스레 눈치 없이 끼는 아줌마처럼 보일까, 마냥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럴 때는 찾을 자료가 있다고 하고 학교 도서관으로 자연스럽게 빠지는 게 좋았다. 


도서관 입구에는 핸드폰 앱의 QR코드를 찍고 들어가라는 안내가 있었다. 도서관 앱까지는 잘 깔고 학번을 입력하고 로그인까지는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도통 화면에 QR코드가 보이지 않았다. 도서관 입구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두리번거리다가 결국 옆을 지나가는 대학생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학생은 내가 내민 핸드폰 화면에 손가락을 대더니 왼쪽으로 쓱 밀었다. QR코드는 도서관 앱의 두 번째 화면에 배치되어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나이 많은 자의 자격지심까지 더해서,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도 못 하고 쩔쩔매고 있는 노인이 된 기분이 되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주차장에 들렀다. 대학원의 주차 비용은 꽤 비싼 편이었다. 다행히도 정기 주차권을 구입하면 월 3만 원으로 주차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주차장에 있는 관리 부스에 가서 정기 주차권을 신청하러 왔다고 이야기했다. 직원분은 신청서를 쓰라고 종이를 건네주셨다. 맨 위에는 '교강사 주차신청서'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저녁에 찾아와서 주차 양식을 요구하는 사십 대라면 특수대학원을 온 직장인 대학원생이라고 생각될 수 있었겠지만, 아침부터 찾아온 사십 대라면 교수나 강사인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직원분께 "아, 저기요. 저 학생인데요."라며 학생용 양식이 별도로 있냐고 물었다. 직원분은 죄송하다며 다른 양식을 내밀었다. 이 상황이 잠시 서로 머쓱해서 "제가 만학도라서요."라며 굳이 안 붙여도 될 말을 더했다. 


그러자 직원 분은 "중국어과 학부에는 60살 먹은 분도 있어요"라고 하셨다. 그리고 "힘내요"라고 덧붙이셨다. 냐하하. 예. 꼭, 힘낼게요! 그리고, 나 말고 60대 중국어과 대학생 분도 힘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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