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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ti Jan 25. 2024

1990년대와 2010년대 대학 강의실의 풍경 비교

1990년대 후반 대학에 다닌 나는 교수님들이 초록 칠판에 쓰시는 한자 단어들을 보면서 두꺼운 스프링 노트에 받아 적곤 했다. 당시는 신문도 한자와 한글이 병행되었던 시절이었고, 전공책도 '을/를/이/가'를 빼고는 다 한자로 적혀 있었다. 한자를 한글처럼 술술 써 내려가면서 역사 관련 내용을 설명하시는 교수님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귀 기울여야 했다. 안 그러면 칠판에 쓰인 한자가 무슨 음인지 몰라서 받아적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기곤 했다.


한편, 교수들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적는 건, 지성인인 대학생에게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만의 관점으로 의문을 가져야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줄도 알아야 했다. 강의실 뒷자리에 국방색 깔깔이를 입고 온 복학생 형들이 가끔 "교수님, 하지만 또 다른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제 생각에는" 하고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막연한 동경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자고로 대학생이라면, 저렇게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다시 학생이 되어 앉아 있는 강의실은 교수의 강의를 노트북으로 옮겨서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만 존재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탓도 있겠지만, 전공과목의 차이도 있었다. 내가 학부 시절에 공부했던 역사교육은 논쟁점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학문이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지식이 그리 깊지 않더라도,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논쟁이 가능하다. 반면 미술사는 상대적으로 논쟁점이 명확한 성격의 학문은 아니다. 또한 논쟁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점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해석이 주된 논의 지점이 되다 보니, 관련 주제에 대한 지식의 깊이 여부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무엇보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그 주제에 대한 지식이 쌓여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막 '도자기'가 '도기'와 '자기'의 합성어이며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운 이에게는 모든 것은 다 받아적고 외워야 할 대상이었다. 수업 내용을 다 받아치기에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녹음했다. 허락을 구하지 않고 녹음해도 되는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다 새로운 내용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녹음본을 들으면서 수업 내용을 다시 복기했고, 노트북에 받아친 내용들은 전공책과 논문들을 읽으며 살을 덧붙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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