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아래 3세대'
우리 가족 이야기다. 구성원은 장인과 장모님, 그리고 우리 부부와 딸이다. 정통 경상도 사나이인 장인어른은 말수가 적어 내가 아침인사를 하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거의 전부다.
"일어났냐?"
"응. 그래~~"
장인어른은 누구나 부러워하던 곳에서 공직생활을 하고 이제 90을 바라보고 계시며 술은 입에도 안 대시고 담배는 여전히 애용품이며 당뇨와 무릎관절이 안 좋아 고생하지만 건강하신 편이다. 형제자매가 8명이나 되는 장모님은 공주과여서 아내의 손이 많이 가고 형제분들 중에 세 분은 미국에 두 분은 집 근처에 다른 자매 분들은 서울과 지방에 사시는데 이웃에 사는 막내 여동생하고 가장 친하게 지낸다. 한 유명한 원로배우가 좋다고 꽤나 쫓아다닐 정도로 젊었을 때는 상당한 미인이셨다고 하는데 남쪽이 고향이라 장인어른과는 영호남의 결합인 셈이다. 장모님과는 결혼 전부터 노래방도 같이 가는 등 친하게 지냈으며 2년 전 고관절 수술 후부터 장모님에게는 우리 부부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
아내와는 소개로 만나 1년을 교제하고 결혼했는데 그때가 내 나이 32세에 했으니 늦은 편이었음에도 한동안 아이가 안 생겨 산부인과에서 시험관 아기 권유도 받았었으나 운 좋게 결혼 후 4년 만에 임신에 성공하여 딸 하나를 두고 있는 우리 부부는 사이가 좋은 편인데, 아내는 결혼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오빠라고 하며 다녔지만 지금은 누나라고 빡빡 우긴다. 다섯 형제 중 막내인 나는 청년시절 통장에 있던 63만 원만을 들고 일본에 공부하러 갔던 패기 넘친 청년이었으며, 부모님에게 손 내미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한국 식당 종업원, 한국어교사, 신문 배달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대학 내내 장학금을 받으며 보냈던 5년 간의 유학생활을 아름다운 행복 추억 보따리로 간직하고 사는 중년 아저씨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술과 친구를 좋아했지만 건강에 사달이 난 후부터는 다 끊고 산다.
부모와 외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딸은 아직도 친구들보다 엄마와 같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자식자랑을 하는 것은 꼴불견이라고 말들 해서 간단히 소개한다. 다섯 명이 생활하는데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각자 방을 갖고 있다. 처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얻는 것도 많다. 나부터가 장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며 딸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니 집은 교육의 장이요, 모시고 산다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것임을 두 분과 시간 여행을 하며 알아 간다. 어느 날 얼마 전부터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아내에게 내가 물었다.
"이번에 우리 딸하고 어디 좀 갔다 오지 그래?"
"엄마는?"
"내가 캐어해야지."
"에이, 당신이 못 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고 하면서 내가 다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 당신은 여행을 언제 가보니?"
"할 수 없지. 경기도 가까운 곳으로 엄마랑 같이 가야지."
아래는 매운 것이 먹고 싶다는 딸이 아내와 한 대화 내용이다.
"엄마, 오늘은 얼큰한 거 먹고 싶어."
"할머니는 못 드시잖아."
"........"
"그럼 할머니 먼저 채려 드리고 먹든지."
"그래."
이렇게 3세대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절제와 겸손, 감사와 배려에 익숙해져 간다. 그것이 보람이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