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집으로 가는 길에

by 김곤

장모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저것 좀 봐 이런 환경에서 참... 쯧쯧."

장모님이 말씀했다.

"그러게요. 애들이 고통이 심하겠어요. 우리는 마스크라도 쓰지만..."

내가 말했다.


그 길을 가끔 지나다녔지만 그날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의 외부에 대항하기 위한 일체의 불평도 없이 의연히 서있는 거리의 꽃들이다.


나는 그들이 마치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실험실에 갇혀 있는 듯했다. 사람들의 눈 호강을 위하여 식물 생태계의 희생이 강요된 모습이다. 그들의 존엄성이 처참히 짓밟힌 현장이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나는 장모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도 꽃들도 매 마찬가지예요. 환경이 중요해요."

"그럼. 당연하지"

장모님이 말하셨다.


저들에게도 금이야 옥이야 사람 손길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멘트로 덮여 있는 거리에서 토양의 영양분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꽃나무들이 처연하게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말이다.



세상의 아이들은 어떤가. 아이들도 부모가 어떤 물을 주며 키우느냐에 따라 인성이 혹은 인생의 이 달라진다. 아이들에게 구정물을 주느냐 맑은 샘물을 주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자란다. 가정에서 따뜻한 정을 받지 못하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청소년들도 태어나자마자 혹은 얼마 후에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와 조국의 품을 벗어날 수밖에 없는 갓난아기들도 있다.


여기서 잠시, 노르웨이의 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적극적 평화가 주는 울림에 귀를 기울여보자. 그는 전쟁의 부재 혹은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인 기존의 소극적 평화의 개념을 확대했다. 기아, 인종, 성별, 나이, 인권, 장애, 노동 등에 대한 차별과 환경피해, 정치적 탄압 등의 사회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인 적극적 평화의 세계다.


세계 경제의 상위 10위 국가에 이름이 올라있는 대한민국이다. 해외입양 송출국의 지위도 여전히 높은 나라다. 출산율 최저 국가의 현실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주위에 혹은 가정에 누군가의 사랑에 목말라하는 아들과 딸들 혹은 노부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어떤 단체에서 소외된 들에게 온정의 손이 뻗치길 바라며 난 장모님의 손을 잡고 그 길을 지나갔다.


그리고 매연과 먼지에 뒤범벅이 된 곳에서 앙상한 나뭇가지와 아직 제대로 피지도 못한 꽃들을 뒤로하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거리에 방치된 채 아무 말도 없는 저들의 존엄성은 누가 지켜줄까?'


'저들은 과연 우리의 존엄함을 인정해 줄까?'





사진: 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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