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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04. 2023

왜 자꾸 날 데리고 갈라 카는데?

토요일 오전은 늘 그렇듯이 아내를 차에 태워 병원 정기 물리치료를 받으러 갑니다. 벌써 몇 년 되었지요.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기에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합니다. 아내 출퇴근 시에는 반드시 제가 동행하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옆에서 지킵니다. 큰아들과 딸 아이가 집에 같이 있어도 아내는 꼭 저만 불러 뭔가 시킵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는 누구랄 것도 없이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지만 아내는 그래도 제가 편한가 봅니다. 심지어 저에게 종이 가방에 든 것을 가져다 달라고 했을 때, 그 가방이 딸 아이 바로 곁에 있었지요. 가방을 가져다 주면서도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편해도 그렇지, 그렇다고 딸 아이가 있는데 굳이 날 시키나.'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환자 입장에서 편한 사람에게 시켰으리라 이해하고 살짝 삼키곤 했지요. 그래서 때로는 환자보돠 간병하는 사람이 더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간병하는 수준이야 진짜 간병하는 사람들에 비해 그야말로 '새 발에 피'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말입니다. 간병하는 사람이 아무리 힘들다 한들 환자 본인만큼이야 하겠습니까. 거동도 제대로 못하는 중증 환자는 또 스스로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제 아내는 그나마 거동에 큰 지장이 없는 상태이기에 간병하는데 크게 힘들지 않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아울러 듭니다.


그렇게 토요일 오전 물리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큰아들이 꼭 전화를 걸어옵니다. 국수 준비하고 있으니 집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면서 말입니다. 가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잠시 마트에 들르자로 하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집니다. 대부분 정해진 시간에 집에 도착하지만, 큰아들 생각에 국수를 먹는 타이밍에 맞출 수 있을까 싶어서 확인 차 전화를 걸어온 것입니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도 큰아들과 나란히 서서 국수 요리 마무리를 합니다. 큰아들표 국수를 먹게 된 지 꽤 되었습니다. 육수를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큰아들표 국수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토요일 점시 국수를 먹고 나면 육수는 버리지 않고 남겨둡니다. 다른 요리에 용하는 것이지요.


이번엔 국수를 먹고 저와 큰아들은 각자 자리로 돌아가 편하게 할일을 하는데, 아내와 딸 아이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둘이 자매처럼 편안하게 얘기를 오랫동안 하네요. 화제도 다양합니다. 옷, 신발 구입을 비롯한 손흥민 축구, U-20 월드컵 이야기, 우리집 3남매 이야기 등 화제가 많이 등장하네요. 저야 옆에서 띄엄띄엄 듣다 보니 맥락은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둘이서 간간이 크게 웃기도 하는 것을 보니 뭔가 재미있는 내용이 있는가 하고 추측만 하지요. 그러다가 아내가 갑자기 저에게 한 마디 겁니다.


"당신은 왜 자꾸 나를 데리고 어딜 갈라 카는데, 안 그래도 환자인데"


그 말을 듣고 제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이뻐서 그렇지.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나 여자 친구가 예쁘면 어딜 데리고 가서 은근히 자랑할라 하거든. 대학 다닐 적에 당신이 우리 학교 놀러 왔을 때나, 기숙사 축제에 왔을 때도, 교생실습 때도 당신이 오면 다른 사람한테 자랑할라 그랬거든. 당신이 이뻐서 그랬다 왜!"


아내가 일부러 저에게 물어본 듯합니다. 아내는 기분 좋아라 하는 표정이 역력한데, 딸 아이는 어이없어 하는 기색을 보입니다. 팔불출을 떠올렸겠지요. ㅋㅋ.


언젠가 병원 의사께서 아내와 저를 함께 앉혀 놓고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모든 병이 다 그렇지만, 환자의 심리 상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육체적으로 아파서 힘들 수는 있지만 간호하는 사람이 환자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면 치료하는데 효과가 정말 큽니다. 가끔 남편 분께서 사모님을 위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도 정말 중료하지요. 가끔은 남편 분께서 조금 망가져서 사모님 기분이 즐겁게 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망가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격이 되니까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하."


그래서 그 의사 선생님 말씀처럼 아내 병간호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해보려고 애를 씁니다. 어디선가 웃기고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집에 와서 아내랑 둘이 있을 적에 전해줍니다. 제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재주가 부족해서 그런지 들었을 적과 달리 아내의 표정이 영 아닐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저 딴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라 전해 주었는데, 아내는 그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어서 오히려 제가 무색해진 적도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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