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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28. 2023

그런 기 모두 선입견이지요

6월 27일 화요일 밤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 저녁 식사 후 인근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몇 년 동안 못 본 것을 하루 밤 안에 회포를 모두  풀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헤어지고 남자 넷이서 가까운 곳에 있는 허름한 술집에 다시 앉았습니다. 저녁부터 술은 적당하게 마신 것 같았습니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줍니다. 부모 자식 세대 간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술집 밖엔 비가 조용히 내리니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경험을 말했습니다. 고교 2학년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쟁을 하는데, 한학을 조금 하신 아버지가 학교 문턱에도 못 가신 어머님을 일방적으로 훈계하듯이 질타하는 것이 정말 못마땅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고향 마을 인근에서 똑똑하다고 나름 소문이 나신 분이시기에 그랬는지 몰라도 어린 제 마음엔 '왜 부인을 존중하지 않는가'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생겼지요. 아내를 챙기지 못하는 남편은 존재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저도 아내를 잘 챙긴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 당시 밤늦게 제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보통은 환한 표정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과나 배를 깎아서 간식으로 들고 오셨는데, 어떨 때는 아무 것도 들지 않고 어딘가 심각한 표정을 보이시더군요. 저는 단번에 눈치를 채고 공부하던 책을 덮어 놓고 어머니께 이물 속에 앉아 벽에 기대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가 가만히 섰습니다. 제 덩치가 큰 편이고 힘도 셌습니다. 문 밖에 서 있으면 아버지가 제 방으로 어머니를 부르려고 하시다가 못마땅한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며 마실을 나가셨지요. 저도 별다른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지요.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어머니께 누군가 상처를 준다! 그런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지요. 아버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세월이 흘러가서 두 분 돌아가신 뒤 한참이나 시간이 흘렀을 때, 고향 마을 회관에 들르면 아지매들이 그런 말씀 해주셨지요. 


"니가 잘 몰라서 그렇지 느그 엄마 그래도 아부지 진짜 좋아했데이."


제 경험담을 듣고 술집에 앉은 세 사람 각자의 경험을 돌아가며 들려줍니다. 한 분은 아버지가 밥상을 엎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이분께서 아버지를 꼭 안고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또 한 분은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심하게 할 때마다 아버지 두 팔을 잡고 밖으로 모시고 나갔다고 합니다. 두 분 모두 공통적으로 그 당시 고교생이었는데, 아버지도 더 이상 자신들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때가 부모 자식 세대 간 충돌이자 갈등 시기였는데, 아버지 세대가 어쩔 수 없이 물러섰던 것 같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분께선 최근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당신의 자녀가 1남  1녀인데, 딸이 위고 아들이 5살 터울 아래라고 합니다. 그런데 둘이 좀 심하게 다투기에 아들을 데리고 나가서 한 마디 했답니다. 


"그래도 니 누나고 누나는 여잔데 니가 누나 말을 들어주면 안 되나?"


저도 그런 순간이었다면 당연히 해줄 수 있는 말이라 여겼습니다. 함께 앉은 분들도 대부분 동의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연을 들려주는 분께서 우리에게 해준 말은 특별했지요. 


"그때 우리 아들이 뭐라 했는지 알겠습니까. 이러더라구요. 아버지 아들은 자식 아닙니까. 왜 저에게만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분도 갑자기 화가 나기에 아들을 몰아쳤다고 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들 세대 선입견이 아닐까 하고 말씀하더군요. 나이 적은 남동생이 누나에게 잘 했든 잘못 했든 상관없이 무조건 베풀어야 한다는 우리들 세대의 선입견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집 3남매 큰아들, 딸, 막내아들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사이가 좋았습니다. 제 기억에 아들 형제의 갈등은 있었지만, 딸과 다툰 적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형제가 다투거나 갈등이 있을 때 저와 아내가 개입할 필요가 없었지요. 딸 아이가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로 오빠를 설득하거나 동생을 달래며 문제가 대부분 해소가 되었었거든요. 딸 아이는 말도 별로 없지만 너무나 착하고 순해서 아들 형제가 딸 아이에 대해선 각별합니다. 


만약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큰아들과 제가 갈등한다면 저는 기꺼이 양보하려 합니다. 이젠 자식들이 중심이 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니까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이들이 저와 아내에게 대들었던 기억도 별로 없습니다. 하기야 아내는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아내 말이, 


"아이들이 당신은 진짜 좋아하는데, 나한테는 안 그래. 짜증내고 화를 보이면서 나한테는 할 말 다하더라. 당신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니 아이들이 당신한테는 그렇게 잘 하는 것 같애."


제가 그랬지요. 


"아이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면 그건 기꺼이 받아주지만 만에 하나 당신에게 그런 모습 보이면 그건 용납할 수 없지. 더욱이 당신 지금 장기간 환자인데. 우리집 아이들 3남매 다른 집에 비하면 진짜 효자, 효녀다. 그리고 즈글끼리 사이가 진짜 좋다 아이가. 앞으로 아이들이 우리에게 심하게 대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되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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