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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28. 2023

인자 이 나이에 그런 거 뭐 신경쓰노?

우리 모임 회원 중에 최근에 암 선고를 받고 서울 삼성병원 임상치료를 받는 여 선배님 한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일본어도 전혀 못하는데 5년 전쯤에 우연히 저희 모임에 가입하셔서 우리들과 함께 지내왔지요. 저희 모임은 한국 일본 시민들이 교류하는 모임인데 벌써 30년이 되어갑니다. 대부분 일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기에 이분이 가입할 때 사람들이 수근거리기도 했습니다. 나이도 60대에 일본어도 모르는 분이 가입한다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 하는 말들이었지요. 그 당시 여러 단체에서 가입 시 연령 제한을 두었는데, 65세였습니다. 우리 모임에도 연령 제한을 두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제가 그건 곤란하다고 반대하였지요. 당시 제 의견에 동조하는 분들이 많아서 우리 모임만 그런 연령 제한을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65세가 되지 않아도 60대가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들이 꺼리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우리 모임에 가입하려 할 때 기존 회원들이 일본어 실력과 연령 문제도 거부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지금 40대 50대로 활동하고 있지만, 언젠가 나이를 먹습니다. 60대 금방 옵니다. 70대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무슨 대학교수들 모임처럼 학문을 연구하는 단체도 아닌데 뭐 그리 외국어 실력 가지고 사람을 가립니까. 그분이 들어오셔서 활동하다가 본인이 불편하면 일본어를 배우면 되는 것이고, 외국어 실력이 부족하여 본인이 어렵다 판단하면 활동하지 않으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 놓고 별별 조건을 달아 가입에 제한을 두는 것은 곤란하지 않나요. 나이 가지고 뭐라 하면 그 말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들으면 괭장히 불쾌하지 않겠어요? 사람 한 사람 모시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귀하게 받아들여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모임 대표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회원들께서 수용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분 모임에 들어오셔서 정말 겸손하고 솔선수범하시더군요. 후쿠오카에서 양측 시민들이 교류할 때 일본 참가자들이 대부분 한국어 교실 학생들이라 오히려 일본어를 못하는 이분을 더 선호하더군요. 자신들이 배운 한국어로 이분과 한 조가 되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정말 재미있어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밤배로 부산에서 후쿠오카를 갈 때 이분께서 며칠 전부터 준비한 열무김치, 파김치, 물김치, 배추김치까지 김치를 정말 맛있게 담아 풍성하게 가져 오셨습니다. 산간마을인 오이타 현 나카츠 시 야바케에서는 현지 일본분들이 김치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되느냐고 부탁하는 일도 있었지요. 이분 일본어 할 줄 모르고 나이가 많았지만 모임을 위해 정말 열심히 활동하여 저희들에게 큰힘을 주셨지요. 


어쩌다 해군 상사로 근무하는 아드님이 집에 오는 날 해산물을 가득 사갖고 오면 저희들을 불러 직접 횟감을 손질하여 대접하기도 했지요. 우리가 음식하느라 너무 무리하시지 말라고 권유하면 그분이 그랬지요. 


"이렇게 와서 맛있게 먹어주는데, 이것보다 즐거운 기 어디 있능교? 많이 드시는 기 진짜 보기 좋심더. 그라고 이렇게 누추한데까지 와서 정말 고맙심더."


그런데 이분께서 최근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1남 1녀를 훌륭하게 키우고 노년에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가는데 암 선고는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격이었지요. 다행히도 항암치료를 잘 받아 상황이 매우 좋아졌던 모양입니다. 아직 완치 판정은 받지 못하고 있지만 컨디션은 괜찮다고 하였지요. 그러다가 최근 삼성병원에 최신약이 들어와 매주 금요일에 주사를 맞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부산에서 서울 오가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기에 아예 서울 삼성병원 근처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장기간 계신다고 합니다. 


저도 전화라도 자주 걸어 안부를 묻게 됩니다. 전화할 때마다 특유의 쾌활한 음성으로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하십니다. 괜찮을 리가 있나요. 효자인 아들이 이분을 꼭 챙긴다는 말에 그건 잘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분 계원 친구들이 네 명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최근 네 분 모두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면서 크게 웃음을 들려주십니다. 한 친구는 서울에 허리 치료 차 왔다가 이분 숙소로 와서 함께 자면서 생활하기도 했다면서 좋아하십니다. 저도 서울 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뵙겠다고 했지요. 그러면서, 


"제가 여자라면 서울 가서 함께 묵으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해서 얼굴만 잠깐 뵙고 내려와야 하겠습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이라 빨리 나으실 것 같습니다. 쾌차를 빌겠습니다. "


그러자 그분께서, 


"아이고, 인자 이 나이에 그런 거 뭐 신경쓰노. 그냥 와서 하룻밤 묵고 가면 되지 내가 나~가 얼만데 내외 따지고 그랍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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