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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29. 2023

아버지 낙장불입 입니다. 하하

현관에 놓인 삼남매 신발-큰아들 딸 막내아들

저녁에 다들 퇴근하여 거실에 모였습니다. 큰아들이 아내의 왼쪽 발목 부분을 정성껏 사지하면서 걱정스런 말로 아내를 위로합니다. 그래서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족욕 기계를 주문하여 곧 도착할 것이니 꼭 사용해 보시라고 권합니다. 큰아들 말에 정(情)이 뚝뚝 묻어납니다. 저와 아내에게 정말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큰아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냥 고맙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와 아내에게 동시에 묻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전기 밥솥 언제 고치셨어요?"


그래서 모두 출근했을 때 제가 인터넷으로 수리 요청하여 며칠 전에 수리하시는 분이 우리집에 와서 깔끔하게 고쳤다고 답했지요. 기계 부품은 2만원인데 출장 인건비가 3만원이랍니다. 아내는 왜 그리 비싸냐고 살짝 한 마디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이거 새로 구입하려 하면 40만 대라고 하대. 그나마 센스 부분 고장이 나서 부품도 간단하게 교체할 수 있었다고 하대. 우리집 밥솥이 벌써 7년 되었는데 한번도 부품을 교체 안 하고 지금껏 사용한 것도 대단한 거라고 하더라. 지금부터 매년 고무 패킹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더라. 5만원으로 싸게 했지. 그래 생각하면 안 되나. 그리고 집에 있는 술도 그분에게 한 병 드렸다. 고맙다고."


아내는 술까지 한 병 그냥 드렸다고 또 한 마디 합니다. 마구 퍼주는 거 또 했구나!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큰아들이 현금을 저에게 건넵니다. 수리비는 자신이 부담하려 했다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돈을 다시 주면서


"지금은 내가 돈이 필요 없고 00 네가 많이 필요하니 도로 받아둬라. 나중에 내가 필요하면 그때 다오."


아들이 돈을 받아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왠지 지금 드리는 것이 적게 치일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돈을 다시 달라고 한 마디했지요. 그러자 큰아들이


"아이구 아닙니다. 이젠 낙장불입 입니다. 하하하. "


큰아들이 곧장 된장국을 마련합니다. 요리 실력이 상당히 좋은 큰아들이 집에 있으면 저와 아내는 그 요리를 은근히 기다리게 됩니다. 매주 토요일 낮에 국수, 냉면 등을 풍부한 육수와 함께 해주는데, 평일엔 저녁마다 만남이 많아 이렇게 초저녁부터 담소를 나누는 일이 드물지요. 그런데 오늘 목요일 저녁 참으로 오랜만에 큰아들이 된장국을 준비하고 저와 아내는 큰아들을 바라봅니다. 참으로 고마운 아들입니다. '낙장불입'을 그런 상황에 쓰는 순발력에 감탄하는 밤 거실 창문 밖은 빗물이 곱게 타고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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