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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n 30. 2023

문제 해결 이렇게 했습니다

지난 번 일본 오이타 현 분고오노 시 미에마치라는 아주 자그마한 일본 농촌 시골 마을을 40명 단체를 인솔하여 방문했을 때 에피소드입니다. 우리나 일본이나 시골 마을에 외부에서 단체 방문이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방문단이 현지에 방문했을 때 반응이 대단했습니다. 시 의회의장이 시장 대신에 축사를 하면서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저도 대표로 발언하면서 이번에는 일본 측에서 우리나라를 많이 방문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올 하반기에 그곳에서 방문단을 구성하여 부산 시내와 기장군까지 방문할 것이라고 약속했지요. 그래서 가급적 도심지 말고 농촌 지역 남들이 좀처럼 방문하지 않는 곳에 주목해 달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읍 규모의 인구가 2천 명도 안 되는 그야말로 시골마을이라 진짜 한적하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시골길을 걸으니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걸어보니 금방 외곽지까지 도달하더군요. 농로를 따로 빗속을 걸으면서 아득한 어린 시절 제 고향 마을을 떠올릴 정도로 그 풍경이 흡사하더군요. 그러다가 우산을 들고 비 속에서 물이 가득 실린 논을 바라보던 농부를 발견하고 말을 건넸습니다. 


”おはようございます。”

”はい、おはようございます。”

“田植えがおわりましたか、いまみてね。田植えばかりでしょうね。”

”そうですね。昨日たうえを終えました。”

“今年も豊作をお祈りします。”

”はい、本当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그렇게 둘이 인사를 나누니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한 분이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느냐고 물어봅니다. 충남대  의대 교수님이신데 일본어를 몰라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설명해주었지요.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모내기가 끝났습니까? 지금 보니 모내기를 금방 끝낸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어제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올래도 풍년이 되길 빕니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시골 농촌길을 걸으면서 어린 시절 추억에 잠기기도 합니다. 일본 큐슈 지역의 특성상 물이 풍부해서 그런지 몰라도 수목들이 엄청나게 풍부하더군요. 멀리서 숲을 보면 나무들이 부풀린 것처럼 산들이 풍성한 자태를 하고 있습니다. 같이 간 카이스트 교수님은 이런 풍경을 보고 말씀하시더군요.


"습기가 많고 물이 풍부한 것을 보니 약초가 별로 없을 듯하네요."


그래서 우리를 안내하던 일본인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자기도 약초에 관해선 별로 못 들어본 것 같다면서 카이스트 교수님의 의견에 동조하였습니다. 저도 잘 모르는 사실이라 신기하고 궁금했습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그래서 그 말이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볼까 했지만 돌아와 일상에 젖다가 그만 잊어버렸습니다. ㅎㅎ


현지에서 1박 2일 호텍 숙박인데, 시골 호텔이라 화려한 외관은 아니지만 실내는 괜찮더군요. 다들 만족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경비도 무척 저렴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이런 약속을 하였습니다. 


"식사와 숙박비는 전체 경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술값도 원래는 전원의 경비에 부담을 지우게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술을 안 마시는 사람에게 술값을 부담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경비는 그야말로 실비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술값을 따로 지불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녁 교류회 시에 술을 마시겠다고 생각하시면 직접 계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깊이 이해 부탁드립니다."


40명 중에 술을 마시는 분이 15분 정도더군요. 그런데 호텔 측에선 술값을 현장에서 계산하지 않고 숙박비와 일괄 계산하였습니다. 저녁 교류회 분위기가 좋아서 저도 아무 생각이 없이 다음 날 일정을 시작하려는데, 호텔 측에서 계산이 덜 끝났다는 것입니다. 무슨 문제일까 확인해 보니 술값이 8만 5천 엔 정도 추가가 되었는데, 어떻게 할 거냐고 하네요. 그래서 회계 담당하시는 분께 일단 제 카드로 결제하라고 한 뒤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어제 행사 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양측 시민들이 허심탄회하게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술잔도 건네고 보기 좋았습니다. 다음엔 여기서 우리 나라로 단체 방문한다고 하니 그때 다시 만나길 빕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제 밤 술값이 의외로 많이 나왔습니다. 8만 5천엔 정도되는데, 술 드신 분만 1인당 5천엔 정도 내주셨으면 합니다. 조금 부족한 것은 저희들 예비비로 충당할까 합니다."


조금은 경직된 분위기가 될 것 같아 다시 마이크를 붙잡았습니다. 


"혹시 술을 조금 마셨기에 돈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제 말을 놓친 분도 계실 겁니다. 내고 싶은데 제가 말을 빨리해서 그만 손을 들지 못한 분이 계실 것 같습니다. 너무 고민하시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 회계 담당하시는 분이 모자를 들고 버스 앞에서 뒤로 걷어 나갑니다. 자발적으로 모자에 돈을 넣어주더군요. 저는 속으로 1인당 5천 엔에 술을 마신다 하는 사람이 15명이나 총 7만 5천 엔을 걷을 것이다. 그렇다면 1만엔 우리 돈으로 9만월 정도 부족한 것은 우리 집행부에서 부담하지 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여성 분께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어제 행사할 때 보니, 술 외에도 우롱차 같은 차도 꽤 많이 나왔더군요. 술값만 걷을 것이 아니라 술 안 마시는 사람이 우롱차 한 잔, 물이라도 한 잔 했을 것 같으니 술 안 드시는 분들은 1인당 1천엔 정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도 귀가 솔깃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술 안 마시는 분들이 1인당 1천엔을 내 주시면 상당히 큰 금액이 됩니다만 우리 이번 방문이 어디 여행사 주관도 아니고 순수하게 민간 단체에서 계획하고 진행하기에 초과되는 금액은 곤란합니다. 무엇보다 제일 처음에 약속한 대로 하고 싶습니다. 술 드시는 분만 5천 엔씩 주십시오. 조금 모자라는 금액은 집행부에서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책임도 있으니 저희들이 알아서 지불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중에 회계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7만 5천엔을 훌쩍 넘는 금액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초과되는 금액은 이번 현지 방문에 협력해 준 일본측 관계자와 시모노세키 현지 한국어교실 선생님께 선물 비용으로 쓰겠다고 발표했더니 함께 하신 분들이 큰 박수로 호응해주셨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문제를 제 나름대로 해결했던 일이었지요. 


*추신: 현지 호텔 교류회에 참석한 일본 시골 분들이 술을 엄청 마셨는데, 그분들은 술값을 결과적으로 내지 않았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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