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 아내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밤에 분명 큰아들이 있었는데, 아침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딸 아이가 출근하고 그 다음에 큰아들이 집을 나서기 때문에 아내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 큰아들이 자기 방에서 나와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나올 기미가 없어서 방문을 노크하고 열었지요. 침대 위에 이불이 뭉쳐 있어서 그 안에 있으려니 하고 다시 부엌으로 와서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아내가 가만히 저를 바라보다가,
"아들 방안에 있어요? 이렇게 늦게까지 잠을 잘 아이가 아닐 텐데."
라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합니다. 그래서 저도 다시 한 번 더 가서 확인합니다. 침대 이불을 풀어 들어올리니 아이가 없습니다. 오만 생각이 순식간에 밀려 옵니다. 어제 밤 늦게 큰아들이 저에게 뭐 드실 거냐고 물었던 기억도 나고, 제가 밤 늦게 뭘 먹기는 그렇다고 답하니 아들이 먼저 자겠노라고 가면서
"아버지 안녕히 주무세요. 저 먼저 자겠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단 말이지요. 그런데 밤새 아들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저와 아내가 놀랄 수밖에 없었지요. 딸 방과 막내아들이 가끔 오면 머무르는 방에도, 화장실에도, 현관 문 바깓도 모두 확인했지만 큰아들 종적이 묘연하였습니다. 서서히 당황스러워집니다. 잠깐 어딜 가도 반드시 말을 하고 가는 큰아들인데, 최근에 심경에 무슨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거실 유리창 너머 화단도 살펴 봅니다. 온갖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이 아이가 어딜 갔단 말인가. 어딜 가면 간다고 문자라도 남겼으면 좋으련만.
큰아들의 최근 삶에 대해 저 스스로 상상해 봅니다. 저와 아내에게 지극정성으로 효도를 다하는 큰아들이 그간 힘들었던 것은 아닐까. 꼰대 기질이 농후한 이 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은 아닐까. 행여 나한테 뭔가 할 말은 있는데 그 말을 하지 못해 혼자 끙끙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와 아내가 빨리 결혼하라고 강요는 하지 않았다지만, 아내가 큰아들이 훗날 결혼하면 아들과 며느리가 생활할 조그만 아파트라도 마련하자고 했던 것 때문에 무슨 속사정이 생긴 것은 아닐까. 진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아내가 그러지 말고 전화라도 해 보라고 하기에 전화를 걸었지만 통화가 연결되지 않습니다. 신호는 분명 가는데 받지를 않습니다. 저와 아내의 표정이 그야말로 암흙같이 변합니다. 걱정, 염려, 불안에서 서서히 공포감까지 가는 듯합니다. 아침 이 시간에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문자라도 미리 주었으면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인데, 지금이라도 전화를 받으면 정말 다행일 텐데. 도대체 이 시간에 어딜 가서 뭘 하고 있기에 우리 부부 속을 태우고 있는가.
저도 아내도 갑자기 말이 없어집니다. 이심전심이겠지요. 한 번 더 전화를 걸어 반응이 없으면 곧장 경찰서에 연락하여 실종 신고를 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 제 휴대폰이 울립니다. "큰아들 00"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제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큰아들이 급하게,
"아버지 죄송합니다. 어제 밤늦게 지인 연락을 받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지인 집에서 자고 출근 중입니다. 걱정을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나중에 퇴근하여 집에서 뵙겠습니다. 어머니께도 정말 죄송합니다."
"야~야! 별일 없으면 됐다. 조심 조심해서 출근했다가 나중에 집에 올 때는 조심 조심 해서 오너라. 걱정 많이 했지만 별일이 없으니 됐다. 근무 잘 하거라."
호통이라도 칠 분위기였는데, 막상 큰아들 목소리를 들으니 화가 나지 않고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달려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