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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Jul 15. 2023

조각배처럼

강가에 홀로 있는 조각배를 바라봅니다. 뭍에 묶인 줄이라도 없었다면 정처없이 어디론가 떠다녔겠지요. 주인은 어디 가고 조각배 홀로 강물 위에 곱게 떠 있네요. 누군가 그렇게 오랜 세월 그리워했던 사람이라도 곁에 있다면 조각배 위에 마주 앉아 아득히 멀어져 간 그 시절 강변 노래를 불러주며 노라도 저을 텐데. 저도 홀로 있고, 조각배도 우리네 인생처럼 그저 홀로 떠 있네요. 


조각배를 타고 마음 속에서 추억의 여행을 떠납니다. 


들판에서 열심히 삼태기를 짊어지고 손으로 거름을 뿌리던 때에도 낙동강 변 그곳에 석양이 온 세상을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지요. 잉어떼가 비상할 때 흘러가는 강물 조각 조각마다 발간 놀이 얹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지요. 여름 날엔 저녁 무렵 해거름이 일하기 가장 좋았습니다. 선선한 강바람을 온몸으로 안고 수박을 걷어낸 밭 두둑을 갈고 거름을 풍성하게 고루고루 넣어줍니다. 말없이 일하고 있던 때가 지금도 그립기만 합니다. 무던한 성격이라 누구랑도 잘 어울렸고, 부모가 시키는 일엔 한 마디도 대거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칭찬하니 그냥 좋았습니다.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던 어린 시절 부모 말이라면 그저 해야할 것으로만 알았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부모께는 효도, 형제는 우애, 친구 사이는 의리가 긴 인생에 깊이 들어앉았습니다. 지인들이 저에게 그런 말을 가끔 해주었습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절대로 내치지 않는 성격이라 참으로 의리가 많다."고.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상대방이 저를 싫어해서 갈 일이 있어도 제가 먼저 상대를 내친 경험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냥 혼자 삼키고 말았지요. 


순식간에 살아온 세월입니다. 그야말로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니 지금 여기에 와 있네요. 긴 긴 시간들이 지금  손 끝에 살짝 얹힌 무게로 느껴집니다. 그리운 사람도 많습니다. 원망하면서 함께 지낸 사람도 이젠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비교적 평탄하고 행복하여 즐거웠던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형 여동생 그렇게 다섯이서 정말 행복하게 살았던 고향 마을의 삶들도 떠오릅니다. 그 시간이 두고 두고 오래 갈 줄 알았지만, 어머니가 1년 먼저 55세로 세상을 버리시고, 다음 해 아버지도 세상을 뜨셨지요. 형님은 대구에 여동생은 경북 영주에 저는 이렇게 부산에서 각각 떨어져 살고 있으니 아득한 그 시절 다섯이서 그야말로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았던 시간들이 참으로 보고 싶습니다. 우리 남매는 마을에서도 우애가 깊기로 소문이 많이 났고,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란 말을 많이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시절도 너무나 그립습니다. 


조각배가 지금 강가에 홀로 있으니 제 현재 삶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아내도 아이들 3남매도 참으로 고맙게도 저에게 지극정성이지만, 지금 이 순간 강가에 저 혼자 나와 생각에 잠겨 있으니 문득 홀로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각배가 더 깊이 다가오는가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저 조각배처럼 홀로 남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 자체가 그렇게 운명지워진 것 같습니다. 늘 행복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평생 고통 속에서 살란 법도 없습니다. 인생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즐거움이 다하면 괴로움이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어야 할 것들을 결코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지금 현재 행복하다면 그것 자체에 진짜 감사해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현재 홀로 존재한다면 내 인생에서 홀로 살아가는 시기를 맞이했을 뿐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그것을 억지로 거부하는 것은 내 삶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그렇게 수용하면서 살아가야 삶이 온전해지는 법입니다. 물론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난 때문에 자신을 지나치게 학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가난도 덤덤하게 받아들여야 삶이 평안해집니다. 남을 대할 때도 좀더 너그럽고 여유롭게 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비난하면서 살면 그것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또 너무 욕심 부리는 것도 정말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요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이 분명 강한 것은 사실이자 현실이지만 그 돈 때문에 다른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우(愚)를 범하면 곤란하겠지요. 특히나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를 먹어 보니 이제 혼자가 되는 시간이 많음을 실감합니다. 아직까지는 혼자 생각하며 사는 것이 힘들거나 두렵진 않지만 세월이 흘러가서 진짜 고독한 혼자가 될 때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외로움을 느끼며 힘든 시간을 맞이하겠지요. 그때도 지금처럼 혼자 있는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미래의 걱정을 미리 당겨서 하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지금은 지금대로 나중은 나중대로 제 삶에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홀로 떠 있는 조각배를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봅니다. 지난 날 저와 어떻게든 인연이 있었던 사람 누군가와 여기서 우연히 만난다면 다시금 흘러간 그 옛날 추억에 젖어 조각배에 오를 듯합니다. 


조각배에 서서히 여름비가 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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