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Jul 15. 2023

좀더 살갑게 대하면 안 되나

외출하려고 아파트 1층 현관문을 통과하여 주차장으로 갑니다. 제 차는 저만치 보이는데, SUV 차량 한 대가 시동이 걸린 채 오른쪽 뒷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연로하신 남성 분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들게 차량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곁에서 보호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 어르신이 힘들게 힘들게 차에 도착하자마자 운전석에 있던 젊은이가 돌아나옵니다. 그리곤 뒷문을 쾅 닫아버립니다. 물론 가족이니 안전을 생각해서 문을 닫았겠지만, 그렇게 세게 문을 닫으면 올라탄 그 어르신이 놀라지나 않을까 제가 걱정이 될 정도였지요. 그러지 말고 차에서 미리 내렸다가 그 어르신이 걸어오시면 곁에서 살갑게 부축하여 차에 태워 드리고 문도 두 손으로 조심하며 닫되, 최대한 부드럽게 하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학생들 문을 닫는 것을 보면 그 순간 깜짝 깜짝할 때가 많습니다. 실내로 들어갈 때 문을 두 손으로 잡고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닫으라고 지도하지만 실제로는 아이들이 제 몸만 통과하면 한 손으로 문을 잡고 그냥 세게 닫아버립니다. 그 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좀전에 본 그 젊은이도 아직 20대 중반으로 보입니다. 제가 보기엔 차 안에 앉아 뒤에서 걸어오는 부친의 발걸음이 늦다고 재촉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친이 힘들게 힘들게 뒷좌석에 올라타자마자 그제서야 운전석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와 뒷문을 잡고 힘껏 닫아 버린 것 같았습니다. 나이 많은 환자 입장에선 그렇게 세게 닫히는 차문 소리에도 예민한 법입니다.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지요. 저도 그런데 그 어르신은 오죽했을까 싶습니다. 제가 가서 도와줄 만했으면 좋았을 텐데 잠깐 동안 일어난 일이라 그냥 바라보고 말았네요. 하기야 한참 바쁘게 생활하는 젊은이가 어르신을 외면하지 않고 그렇게 자신의 차에 태워 병원이든 어디든 모시고 가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겠지요.


저에겐 그 장면이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연로하신 분들에게는 곁에서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비단 육체적인 건강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신적인 건강도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과 대화를 할 적에는 가급적 나지막하고 부드럽게 미소 띠 얼굴로 대해야 합니다. 몸 아프고 나이 들면 세상 사는 것이 그냥 귀찮고 서러울 뿐입니다.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잘 받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 가면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내 삶이라고 깊이 인식하고 남을 대할 때도 진심으로 부드럽게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쇠한 사람들은 제 몸을 제 맘대로 할 수 없습니가. 그런 현실에서 자신에 대한 원망도 큰 법입니다. 그래서 더 더욱 살갑게 대해주어야 합니다. 말 한 마디라도 정말 따뜻하게 말입니다.


지난 달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독서토론회를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데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나이가 진짜 많이 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가족이 아닌 지인과 식사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을 보았지요. 제 일행들은 우리 테이블이 아니니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쪽 테이불에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어떻게든 혼자 몸으로 테이블을 잡고 힘으로 버티며 두 다리로 일어서는데 여간 힘들게 보이지 않더군요. 두 분 지인 중 한 분은 차를 대기하러 가시고, 나머지 한 분도 가족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할아버지를 부축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지켜만 봅니다. 식당 주인도 난감한 표정을 짓습니다. 제 짐작엔 가족이 없는 할아버지를 두 분 지인께서 저녁 식사 자리에 대접하려고 자신의 차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곁에 가서 할아버지를 꼭 안았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혼자서 힘을 쓰던 것을 멈추고 저에게 오롯이 기대버리더군요. 제가 오른 팔로 할아버지의 오른 팔을 잡고 제 왼 팔로 그분 허리를 바싹 안아 일으켰습니다.


할아버지가 온몸을 저에게 아예 기댑니다. 그렇게 안다시피하면서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식당 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식당 내에 계신 분들 모두 구경만 하고 있더군요.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힘들게 걸으시던 할아버지가 저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넵니다.


"참말로 고맙소. 우리집 아~들도 이리 안 해 주는데. 왜 밖에 나가서 힘들게 밥을 먹느냐고 타박만 하는데, 얼굴도 모르는 분이 이렇게 날 일으켜 세우고 차에 태워주이 참말로 고맙소. 복 많이 받을끼요."


그렇게 대기하던 차량 뒷문을 천천히 열고 왼 발부터 오른 발 그리고 두 손까지 부드럽게 태워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고맙다는 표시로 미소를 보내줍니다. 그렇게 차는 떠나고 제가 돌아서니까 그제서야 일행이 모두 박수를 치면서 저를 칭찬해 주네요. 저도 고맙다고 했지요. 그런데 저 할아버지 이렇게 어렵게 저녁 식사를 한들 집에 돌아가면 또 얼마나 힘들까 싶었습니다. 저분의 현재 삶이 바로 훗날 나의, 우리의 삶인 것을 생각하였지요.

작가의 이전글 조각배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