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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10. 2023

대학 다녀 봐야 별 볼일 없어서요

한 학교에서 32년을 근무하고 퇴직하였으니 집 이웃에 졸업생들이 많습니다. 오가는 길에 졸업생을 자주 만나지요. 그래서 지역에서 주위 사람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어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퇴직하여 낮에도 가끔 집에서 생활하다 잠깐 외출하면 평소엔 길에서 그 시간에 절대로 만날 일이 없던 졸업생들과 간간이 마주치지요. 어제도 태풍이 온다는 뉴스를 듣고 차를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으려고 아파트 현관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졸업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에 공부와는 완전히 담을 쌓았던 아이였지만 운동 실력이 탁월하여 스포츠 관련 학과로 진학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진학했는지늘 자세히 몰랐지만, 대학에 진학은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꾸벅 인사를 하기에 제가,


"야~야, 오랜만이네. 오늘은 복장을 보니 아르바이트 하는가 보네. 힘들지 않나."

"돈을 많이 받으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배달 아르바이트 할 만하네요."


그런 대화가 대충 마무리되면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 아르바이트한다고 수고가 많네. 그러면 대학은 어떻게 하고. 진학은 했다던데. 00 네가 운동에 아주 재주가 많았지. 잘 다니고 있나."


학생이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저도 괜히 물어 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도 공부를 하기 싫어서 선생님들과 여러 가지로 충돌하곤 했던 아이에게 굳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학창 시절 공부 기억을 떠올려야 하는지 말입니다. 평생 교직에 있다 보니 그런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가 봅니다. 


"대학은 때려 치았뿌심더. 대학에 다녀 봐야 별 볼입 없어서요. 부모님께도 말씀 드렸습니다. 동의해 주셨습니다. 동의 안 해주셔도 제가 그냥 그만두려 했습니다."


아하 그랬구나. 더 이상 할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돈 많이 준다고, 돈 많이 벌겠다고 아르바이트 너무 무리하지 마라고 살짝 충고했더니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한 달 이렇게 일하면 얼마나 버느냐고 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 달에 열심히 일해서 한 400만 넘었다고 하네요. 한 몇 년 꾸준히 벌어서 배달하는 가게와 똑 같은 가게를 스스로 열어 보겠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이라고 공감하면서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몸이 많이 상하는 법이라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했지요. 100세 인생을 살아갈 인생 구만 리 청춘이 자칫 돈 벌겠다는 것에 너무 무리하여 몸이 탈나면 만사가 끝이라고 강조하면서 말입니다. 


아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인사를 건네며 저만치 달려갑니다. 그리고 저도 차에 가기 전 나무 그늘 아래서 잠깐 생각에 잠깁니다. 대학! 대학! 그렇게 꼭 가야만 하는 곳인가. 안 가도 아무 일이 없는 것 아닌가. 우리 학창 시절엔 대학을 제대로 못 가면 죽는 줄 알았었지요. 그렇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은 필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교차합니다. 정답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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