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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ug 20. 2023

그 말을 믿나

나이 많으신 부모님께서 시골 집에 찾아 온 아들 부부에게 말합니다.


"이렇게 자주 안 찾와 와도 된다. 너희들도 도시에서 살기 바쁠 텐데 여기까지 차로 몇 시간 걸려 오려면 얼마나 고생이겠나. 아이들도 오가는 차안에 시달리고 그러나 이젠 오지 말고 일 있으면 전화로, 거 있잖아 얼굴 나오는 전화하면 안 되나 싶다. 그리고 명절엔 우리가 올라가는 기 좋을 것 같아."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한다고 배우고 자란 아들 내외에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참! 며느리는 좀 다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하기야 요즘 아들도 모두 부모에게 효도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은 듯합니다만. ㅎㅎ. 어쨌든 시골에서 얼마 안 되는 농사에 고생 많으신 부모님이 하루 하루 늙어가시는 것이 안타까워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시골까지 가는 것을 정례화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시골 방문이 빡빡해집니다. 


맞벌이 부부라서 아내도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여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하자고 마음 먹고 있던 참인데, 마침 아버지께서 젊은 부부 앞에 그런 말을 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부부가 평등하게 육아를 책임진다는 의식이 예전보다 많아졌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정주부들이 겪는 고통은 만만치 않지요. 특히 주중에 바쁘게 지내다가 주말엔 집에서 편안히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시골까지 가서 일요일까지1박 2일 간 시부모 뒷바라지 하며 보내는 시간은 그야말로 고통 그 자체가 됩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시댁 방문조차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런 상황을 눈치채셨는지 시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셨지요. 


며느리 입장에선 그 동안 겉으로 불만이 있어도 내색도 못하고 고삐에 매인 듯 남편을 따라 아이들 챙기고 시골길에 가는데 무슨 흥이 나겠습니까. 아이들도 시골예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간다고 했을 때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했는데, 방문 횟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영 시큰둥해집니다. 시골에서 하룻밤 자는 것도 한두 번이지 도시에서 즐겁게 노는 것에 비해 재미도 없을 테지요. 


시아버지가 정색을 해서 그렇게 말씀해주시고, 아들도 별 말이 없이 동의하는 분위기에서 며느리라고 특별히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이 나고선 아이들과 시어른 사이에 화상통화도 간간이 있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뜸해집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입장에서 귀엽고 예쁜 손주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늘 같은 말을 반복해도 지겹지 않지만, 아이들은 금새 지쳐 버립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시골 방문도 점차 어렵게 되고, 아들 입장에선 영 불편하여 어쩌다 시골 부모님을 뵈러 홀로 가기도 합니다. 부모님은 손주가 오지 않아 아쉽기 그지없지만, 억지로 이해하려 합니다. 대신에 아들이 그 바쁜 시간을 쪼개 당신들을 찾아와 주니 그것만으로도 복(福)이거니 합니다. 아들이 시골을 방문한 날은 며느리도 죄송한 마음에 시골 어른들에게 전화를 걸어 근황을 알려 줍니다. 며느리는 그래도 아들보다 더 자주 평소에 전화를 거는 편입니다. 


이런 사정을 듣고 어느 지인이 말합니다. 


"나이 많으신 부모님께서 그런 말한다고 그냥 믿나? 아이 엄마가 주말에 쉬고 싶은데 촌에 있는 시댁을 방문하는 것은 그만하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자네까지 발걸음을 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부모님들의 실망이 커진다고 봐야겠지. 전화를 안부를 묻고 연락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사람은 한번을 봐도 역시 얼굴을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안사람하고 아이들에겐 강요하지 말고 자네 혼자라도 가끔 시골에 가서 부모님 얼굴을 뵙고 위로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아들 혼자서 시골 방문을 간간이 합니다. 아들이 온다 하면 늙으신 부모님 마음이 하루 종일 설렙니다. 노부부 앞에 장성한 아들이 마주 앉아 저녁밥을 먹으며 옛날 추억을 떠올리며 담소를 나눕니다. 밤이 깊어가도 두 분 주무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렇게 장성한 아들이지만 부모의 마음 속엔 아주 갓난애 시절부터 어렸을 때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입가에 미소가 핍니다. 



명절 풍경



설 추석 명절이 되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도회지에 나가 살고 있는 자식들이 손주까지 함게 고향 마을을 찾아옵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시골의 명절 풍경도 상당히 변했다고는 하지만 명절에 고향을 찾아오는 대강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DNA화 되어 있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며칠 전부터 아들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해서 허름한 마루에 방 한 켠 소쿠리에 가득 가득 놓아둡니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은 집만 나가도 마음껏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시골 소쿠리에 담긴 음식들은 어머니께서 마련해 놓은 세상에서 유일한 음식이라 더욱 귀합니다. 예전 마을 전체에 유명했던 노부부의 음식 솜씨는 거의 사라지고 맛도 별로 없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 당신들의 정성을 먹고 자란 아들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식들 손주들이 집에 오기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명절 전날이면 한적하여 시간이 정지된 듯하던 시골 마을에도 드디어 시간이 본격적으로 돌아갑니다. 골목 골목마다 집집마다 시끌벅적합니다. 사람들 냄새가 가득 가득 피어오릅니다. 


그런데 우리집 아이들은 아직 소식이 없네요. 시골에서 새벽 일찍 일어나 아이들이 언제 오나 하고 동구밖 길게 난 길을 자꾸만 쳐다 봅니다. 아무리 봐도 들어오는 기색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마을 골목길을 뒷짐지고 걸어봅니다. 다른 집은 아들 딸들은 벌써 도착하여 시끌시끌한데, 우리집 아이들은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 가득입니다. 비록 아주 멀리서 살고 있지만, 우리집 아이들이 제일 먼저 오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 생각하다가 늦어도 좋으니 아무 일없이 오기만 기다립니다. 일년 내내 고생하면서 이 시골에 살아도 오직 이날 아이들 집에 오는 날 기다리는 낙(樂)으로 견뎌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집에 오는 자식들은 그저 부모님 뵈러 간다는 의무감에서 올지 모릅니다. 혹은 진정으로 부모님을 뵙고 싶어서 올지도 모릅니다. 명절 전날 아내와 아이들 차에 태워 시골가는 기분도 남다를지 모릅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명절 기다림은 그런 것들과 전혀 상관없이 그냥 아들 며느리 손주들 기다립니다.  


명절 전야가 하이라이트지요. 부모님 계신 시골집으로 오는 귀성길에 몇 시간이 걸렸니, 고속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이었니. 차량 행렬이 거북이보다 더 늦다는 둥, 차안에서 아이가 소변을 보는 낭패도 겪었다는 것 등등 사연도 화제도 정말 풍성합니다. 아들 며느리와 손주들이 차례차례로 큰절하고, 손주들은 시골 부모님 품에 달려와 안깁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주를 끌어안는 순간은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입니다. 정말 행복한 순간입니다. 요 녀석들이 어찌 이리 예쁠꼬. 손주들의 재롱에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릅니다. 그날만은 다들 잠도 없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손주 놓고 이렇게 예쁘게 길러 준 며느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진심을 담아 며느리 손을 꼭 잡고 감사 인사를 몇 번이나 합니다. 며느리는 당연한 일인데 이렇게 시부모가 감사 인사를 전하니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렇게 삼대가 모여 즐겁고 행복한 담소를 나눕니다. 


추석 같은 경우는 팔월 보름이니 달이 휘영청 솟아 올라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힙니다. 아이들은 피곤하여 잠에 들고, 고부지간에 무슨 긴밀한 할 얘기가 있는지 부엌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간간이 두 사람의 웃음 소리가 마루를 지나 마당까지 나옵니다. 마주 앉으면 웬지 데면데면한 부자(父子) 간이지만 이날만은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 주신 막걸리 잔을 주고 받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수고를 언급하며 막걸리 가득 부어 권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술을 고개돌려 조심스레 마십니다. 그리고 두손으로 공손하게 아버지께도 막걸리를 올립니다.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대여섯 살 조그만 꼬마아이가 이제 장성한 성인이 되어 가솔들을 이끌고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뵈러 왔으니 참으로 감개무량한 순간입니다. 


추석 명절이 한 달 정도 남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래도 힘들고 바쁜 도시 생활 중에도 멀리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뵙는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떠올립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부모가 명절에 자식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심정은 변함이 없음을 생각하며 써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도 그건 진심이 아닙니다.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 먹고 싶지 않으니 음식을 굳이 사오지 마라. 우리한테 옷이 많이 있으니 사오지 마라. 손자 손녀들 학교 다닌다고 바쁘니 자주 안 와도 된다." 등은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합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들 며느리 손주들 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고, 자녀들이 사오는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당신들의 진심이며, 비싼 옷이 아니라도 사드리면 맨날 그것을 꺼내놓고 즐거워하십니다. 손자 손녀는 말로 헤아릴 수 없이 보고 싶은 존재랍니다. 아들 며느리도 마찬가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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