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Aug 20. 2023

요즘 서른도 아이 같아

안방에서 아내와 딸 아이가 TV를 함께 보면서 아주 살갑게 대화를 나눕니다. 아내가 코로나 2차 백신 접종 주사 후유증으로 4년 째 고생하고 있는데, 요즘 많이 좋아졌습니다. 가끔은 저와 아내가 그런 대화를 합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우리보다 훨씬 아픈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린 그 정도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라고 습관적으로 말하지만, 아내 혼자 코로나 접종 주사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저도 옆에서 4년 째 케어한다고 조금! 고생하고 있지요. ㅎㅎ. 저야 건강하니 그리 힘들지는 앉지만 말입니다.


딸과 나란히 앉아 웃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내 표정이 참 보기 좋습니다. 둘이서 저렇게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기 갑자기 이 책이 떠오릅니다. 노인의학에 관한 세계적인 의학자인 루이제 애런슨이 쓴 <나이듦에 관하여>에서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843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노인의학과 돌봄에 관한 성찰을 담은 <나이듦에 관하여>에서  저자 루이즈 애런슨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년기를 잘 보내기 위한 필수품이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때마다 써먹는 모범 답안이 있다. 바로 우월한 유전자(타고난 건강), 행운, 두꺼운 지갑, 착한 딸 하나다.”            



물론 이 책 지은이 루이제 애런슨이 말한 것이 무조건 옳은가에 대해선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양하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녀가 제시한 네 가지 필수품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노년기를 건강하려면 타고난 건강, 행운, 두터운 지갑, 착한 딸이라는 그녀의 말 중에 '착한 딸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집 아이들 3남매 모두 저와 아내에게 지극정성을 하지만, 그중에서 아내와 가장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딸이 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30대 중반인데도 아직 결혼도 않고,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우리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가 건강할 때는 딸 아이를 많이 챙겼는데, 요새는 딸 아이가 아내 대신에 집안일을 많이 챙깁니다. 저와 아내가 늘 그랬지요. 


"요새는 서른도 아이 같아. 옛날 같으면 벌써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 가정을 이루고 살 텐데. 시집도 안 가고 우리와 딱 붙어서 살면서 하는 거는 완전히 아기 같고 참 희한하제?"


예전 같았으면 30대 성인인 딸을 집에 두지도 않았겠지요. 집밖으로 얼른 내놓아 자립하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저와 아내에는 딸 혼자라도 집에 있어 주는 것이 참으로 고맙습니다. 퇴근 시에는 저와 아내가 뭘 먹고 싶으냐고 문자를 넣는데,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하지요. 딸 아이도 한창 친구도 만나고 동료들과 업무 후에 만나 모임을 할 법도 한데, 종료 시간이 되면 곧장 집으로 와서 저와 아내를 챙겨 줍니다. 


큰아들과 막내아들도 아내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막상 그들이 집에 있을 때는 아내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누는 경우가 드뭅니다. 물론 집안에 있을 때 아내가 육성으로 또는 휴대폰으로 뭔가 부탁하면 즉각 곁으로 와서 보조합니다만, 딸 아이처럼 살갑게 잔잔하게 대화를 긴 시간 나누는 경우는 어색하지요. 그래도 집에 있을 때 아내를 챙겨주는 아들들이 고마운 것은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면 곁에서 말 상대가 필요합니다. 특히 70대를 넘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그때 즘이면 모두 떨어져 지냅니다. 그래서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말 상대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지나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말하자고 하면 그것도 좀 그렇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딸 아들들이 한 아파트에서 살지는 않아도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거나, 같은 아파트 같은 동 중에 다른 층에 살면서 부모를 케어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하긴 이렇게 부모집 근처에 살면서 부모를 돌보는 자식들 같은 사례도 경제적 사정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가능합니다.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뻔한데, 우선 나 살기 급급한 상황에 처하면 어쩔 수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부모를 케어한다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요. 그에 대한 대책을 정부 차원에서 정책 입안에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정부에서도 그런 고민을 하면서 노령화에 대비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어도 아직은 미흡하지요. 의료, 보건, 의식주 등등 숱한 난관이 있겠지요. 


그리고 가족이 한 곳에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같은 공간에 지내면 서로 서로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딸 아들이면 그래도 한 공간에서 웬만한 허물은 이해해 주지만, 만약 며느리 사위가 한 공간에 같이 지내면 그에 따르는 불편은 참아내기 어렵지요. 그래서 언제든 달려 올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살면서 부모를 챙기는 방법도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파트에서도 그렇게 지내면서 부모님을 늘 케어하는 따님이 계셔서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따님의 딸, 그러니까 나이 많으신 노부부에게는 외손녀가 되지요. 대학생인데도 노부부에겐 아직도 애기로 보이듯이 같이 걸어가면 정말 좋아합니다. 외손녀가 방긋 방긋 잘 웃어주면 더욱 좋아하고요. 


30대가 되어도 어른들에겐 아직 아기로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요?









작가의 이전글 그 말을 믿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