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엽 Aug 23. 2023

문전작라(門前雀羅)

사람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법


문전작라(門前雀羅)는 문 앞에 참새 떼가 놀고 새 잡는 그물이 처졌다는 뜻입니다. 인간세태를 풍자한 말인데, 권력을 잃고 미미해지만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한산해져 참새떼만 논다는 것이지요. 문전에 사람이 가득하다는 문전성시(門前成市)나 문정여시(門庭如市)와 상대가 되는 말이지요.




사마천(司馬遷)의 불후의 역사서 <史記> 중 70열전이 있는데, 그중 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나온 말입니다. 중국 한 무제(武帝)때 구경(九卿)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는 비범한 인물들이었습니다. 권력자의 눈치만 보는 간신들과는 결이 달랐지요. 두 사람 모두 체면을 지키며 의리를 소중히 여기고,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극진히 대접할 줄 알았습니다. 상당한 권력자였지만 매우 겸손했습니다. 당연히 그들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요.


그런데 인간사 늘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 벼슬길도 당연히 위기가 옵니다. 특히 급암은 직선적인 성격으로 다혈질의 강성군주 한무제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혹자는 그런 급암을 높이 평가하지만 벼슬길에 들어선 당사자는 그 길이 탄탄대로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무제의 미움을 사서 중앙관직에서 밀려나 멀리 회양군(淮陽郡)의 태수(太守)가 되기도 했습니다. 정철의 관동별곡에 '급당유 풍채를 고텨 아니 볼 게이고' 의 급당유, 즉 급장유가 바로 급암의 자인 장유(長儒)입니다. 정철은 그를 언급하면서 선정善政에 대한 의지를 피력하였습니다.



정당시도 지인의 죄에 연루되어 서민(庶民)이 되었다가 결국 여남군(汝南郡) 태수 좌천되고 삶을 끝냈지요. 두 사람 모두 벼슬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는 집안조차 가난하였으므로, 찾아오는 사람이 날로 줄어들어 결국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마천이 두 사람 전기 뒤에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들에게 교훈을 남깁니다.



‘대개 급암과 정당시 같은 현인(賢人)이라도 세력이 있을 때에는 손님이 많았지만, 힘이 없어지자 모두 떠나 버렸는데, 하물며 보통 사람은 어쩌겠는가. 또 적공(翟公)의 경우도 그가 정위(廷尉)의 벼슬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넘쳐 났지만 그가 벼슬을 떠나자 방문객은 끊어져 문 앞에는 참새 떼가 모여들어 새를 잡는 그물을 문 앞에 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적공이 다시 정위 벼슬을 하게 되자, 방문객은 예전처럼 다시 들끓게 되었다. 그것을 본 적공은 대문에 다음과 같이 크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살게 됨에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자가 됨에 사귐의 실태를 알며, 한 번 귀하게 되고 한 번 천하게 됨에 사귐의 정을 알 수 있다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랴!’’



一死一生乃知交情  



一貧一富乃知交態  



一貴一賤交情乃見 



어제 지난 번 지방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한 분의 장인상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그분의 지위가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방문객이 적은 것을 보고 문전작라가 생각났습니다. 너무나 아깝게 낙선하였지만, 선거에 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 더 이상 찾아올 이유가 없었겠지요. 사모님과 나란히 앉아서 위로하다가 인간세상의 염량세태에 대해 대화하기도 했지요. 친정 아버지가 89세 연세에 돌아가셔서 마음도 아프겠지만, 선거 과정과 결과를 겪으면서 갑자기 변한 사람들의 냉정한 태도에 실망하였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모님은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말이지요.



사람들의 행태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상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져도 변하지 않는 의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문전작라를 보면서 제 자신의 삶도 돌아봅니다. 저야 무슨 권력이 있겠습니까만. 사람이 살다보며 좋은 시절도 있고, 어려운 때도 만날 일이 있지요. 좋을 때야 무엇이든 좋게 넘어갈 수 있지만,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위에서 손이라도 뻗어 격려해주면 편이 되어 줄 때 진짜 힘이 됩니다. 그런 것이 사람 사는 세상에 필요한 의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직지신(社稷之臣) 급암(汲黯)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