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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07. 2023

아지매, 이러다가 하루 장사 망칠 낀데

나~가 80인데 할매 안 카고 아지매라 카이 고맙심더

저녁 무렵 재래시장에 들렀습니다. 고구마랑 땅콩을 사서 삶아 놓으면 아이들이 저녁 간식거리로 괜찮을 듯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처럼 쿠팡 같은 배달업체 앱을 써서 편리하게 사는 것은 괜찮은데, 그렇게만 계속하면 재래시장 할머니들 채소는 어떻게 되나 싶었습니다. 장터 바닥에 각종 채소를 놓고 파시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지극히 노쇠합니다. 한번 앉으면 일어서는 것도 만만히 않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에서도 채소 돈도 안 되는 거 팔아 볼 거라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아득한 옛날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물론 어머니가 매일 시장터에 쪼그리고 앉아 이분들처럼 채소를 팔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분들을 뵈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나이가 비슷할 것 같은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보다 규모가 좀 커졌네요. 이 정도 자리를 내 준 식당 주인 마음씨가 넉넉하게 보입니다. 갈 때마다 애초에 생각한 것보다 많이 사가지고 옵니다. 아내에게 불필요하게 많이 산다고 핀잔을 들어도 어차피 집에 가면 제가 손질할 테니 비닐 봉지에 가득 가득 삽니다.


"아지매, 이 고구마 얼마요~?"


"고건 한 봉지에 5천 원이다. 저~ 촌에서 가져 온 기라 겉으로 깨끗하이 안 해도 맛은 괜찬을 끼라."


마트보다 훨씬 많이 줍니다. 제가 할머니께 가격을 놓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길가던 남성 분께서 갑자기 제가 가리킨 고구마를 덜렁 들고 계산하고 갑니다. 고구마를 담아놓은 것 중에 가장 이쁘게 보인다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쁘게 보이는  맛이 좋지 않겠능교?"


그러자 할머니가 돈을 받으면서 한 마디 하십니다.


"사람이나 그기나 이쁘고 봐야 되는 갑다. 우쨌든 고맙심더."


그리고 고구마를 들고 가시는 그분께 한번 더 인사하고 저를 돌아봅니다.


"아지매, 요 고구마 하고 저쭈~ 있는 땅콩도 좀 주이소. 채소도 좀 사가지고 가야 하는데."


"그 땅콩도 한 봉지에 5천이요, 채소도 뭐 이리 마이 사가지고 갈라 카는데. 집에 가마 각시하고 둘이 있는 거 아인교. 이래 마이 사가지고 가면 각시가 안 좋아할 낀데. 집에 가마 귀찬쿠로 이 마이 가져 가면 싫어할 낀데, 대충 사 가지고 가이소마. 내사마 마이 사가지고 가시만 고맙기는 하지만서도."


그렇게 대충 살 것을 봉지 봉지마다 가득 넣고 돌아서다가 한 마디 건넸지요.


"아지매, 이렇케나 고생 고생해서 따님을 그리 잘 키아카 교대 보냈대매. 그 딸 잘 있는교?"


"세상에! 우리 딸 교대 간 거는 우째 아는교? 세상 비밀 없다 카디마 우째 알았는교?"


"전번에 사러 왔을 때 다른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 옆에서 들었제. 그래 똑똑하고 이쁜 그 딸 효도도 잘 한다 카더만 학교 잘 다니고 있지요. 아이다. 공부를 너무 잘 해가~ 벌써 선생 발령난 거 아이가. 아지매 맞지요?"


"미국에 교환 학생으로 가 있심더. 이렇게나 우리 딸도 잘 알아주이 참말로 고맙심더."

라면서 당신의 딸이 아기 때부부터 지금껏 얼마나 예쁘고 똑똑하고 착한 지를 열심히 설명해 주십니다. 80대 언저리로 보이는 할머니가 불편한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딸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그렇게 대중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다른 화제를 올릴까 싶어서 눈치껏 제가 차로 가려 합니다. 그때 할머니가 갑자기 5천 원을 주십니다. 제가 받을 이유가 없었지요.


"아지매, 제가 이 5천 원을 왜 받는데. 하루 종일 힘들게 팔았다가 저녁답에 이리 했뿌마 장사 완저이 망했뿐다. 이러다가 하루 장사 망칠 낀데. 정신 단다이 해가 다시 받으시이소."


"아이고 내 정신 봐라. 그렇다고 이렇게 돈을 도로 주이 내가 참말로 고맙심더. 배우고 양심이 착한 사람은 역시 다르네예. 눈치없이 내 딸 자랑한다카다가 그만"


그리고 크게 웃으십니다. 이제는 진짜 헤어져서 차에 오려는데, 그분께서 갑자기 큰소리로


"보이소. 가마이 생각하니 내가 나~가 벌씨로 80이 다 되가는데, 아지매, 아지매 카면서 불러주이 그기 진짜 고맙심더."



잠깐 나눈 대화로 그분이 그렇게 크게 웃으시면서 얼굴 가득한 주름살들이 동시에 활짝 펴는 것을 보니 제 마음도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할머니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렇게 힘든 농촌에서 여자 몸으로 우리 3남매를 혼자 책임지다시피 온몸으로 희생하셨던 어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 저 할머니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셨겠지요. 어머니 살아 생전에 제대로 효도를 하지 못한 아쉬움이 갑자기 몰려 옵니다. 한없이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어머니께서도 시장터에 가셔서 채소를 팔긴 했는데, 형이 경운기를 운전하거나 저와 동네 아이들이 리어카에 가득 실어 시장터 식당 앞 평상에서 채소를 팔았습니다. 식당 주인과 평소 안면이 있던 터라 그 주인께서 어머니를 배려해 주신 거지요. 달성군 논공면 금포1리 면소재지 속칭 '돌끼 5일장'에 가셔서 열무나 배추를 단으로 묶어 팔았는데, 일 년에 서너 번 정도니까 매우 뜸했지요.


국민학교 5학년 때에 저도 학교 수업을 마치고 가방을 싸자마자 곧장 교문을 나와 장터로 달려 갔습니다. 어머니가 못다 판 채소는 오후가 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제 마음이 조급해져서 평상 한쪽에 책보를 던져놓고 어머니와 열심히 팔았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제가 더 목청껏 소리내어 파니까 많이 사가지고 가시더군요. 이웃 마을에 계시는 외가 먼 친척 아재가 나머지 대부분을 사주시긴 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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