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과 바다는 가는 시냇물도 가리지 않는다.
도둑질 같은 나쁜 짓하는 사람도 도움이 되느냐도 논란이 되긴 하지만 비슷한 사례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합니다. 바로 계명구도(鷄鳴狗盜)입니다. 닭 울음 소리와 개 도둑이란 뜻입니다.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옵니다. 중국 춘주전국시대 전국 사공자’(戰國四公子)로 유명한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제(齊)나라 맹상군, 초(楚)나라 춘신군, 위(魏)나라 신릉군, 조(趙)나라 평원군이지요. 그중 ‘계명구도’는 맹상군과 관련된 고사성어입니다.
맹상군은 평소에 출신과 신분에 관계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식객으로 받아들입니다. 3천 명을 먹고 재우려면 경비가 만만찮았겠지요. 당시엔 천하의 인재를 발탁하는 것이 유행처럼 행해졌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받아들이다 보니 역량이 탁월한 인재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개 도둑 출신과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食客)까지 받아들이는 일이 생깁니다. 그러자 다른 식객들은 뭐 그런 재주도 재주라고 하면서 쓸모없다며 크게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맹상군은 아무리 사소한 재주라도 훗날 쓰일 데가 있지 않겠는가라면서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천하 체후 중 최강대국인 진(秦) 소왕이 맹상군을 초청합니다. 겉으로는 초청이지만 강제 소환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맹상군은 여러 식객들과 함께 진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진나라에 머문 지 오래되었지만, 맹상군 일행은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진나라 소양왕이 맹상군을 진에 초청해 등용하려 했으나 신하들이 제나라 사람이라 위험하다고 진언하자, 불안감에 빠진 소양왕은 맹상군을 연금해 버립니다. 장기간 연금을 당하자 맹상군 일행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진나라를 탈출하려고 시도합니다. 먼저 진소왕의 후궁에게 뇌물을 주고 소왕을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그때 진소왕의 후궁 연희는 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이 있는 부분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 일명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합니다. 매우 귀한 옷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호백구는 맹상군이 처음 진나라에 들어올 때 진소왕에게 이미 선물로 바쳤기에 맹상군도 난감한 처지에 처합니다.
그때 개 도둑 출신 식객이 진소왕의 침실로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 왔고, 맹상군은 그 옷을 애첩에게 바친 후 겨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객사를 나온 맹상군 일행은 서둘러 진나라를 벗어나기 위해 국경인 함곡관으로 향했습니다. 마음은 조급한데 맹상군 일행이 국경에 도착했을 무렵은 아직 동이 트기 전이었습니다. 뒤로는 진나라 추격군이 쫓아오고 국경의 문은 열리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 함께 간 식객 하나가 닭 울음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동네 닭들이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모두 울어댔지요. 함곡관 문이 열리면서 맹상군 일행은 진나라의 추격을 뿌리치고 무사히 제나라로 복귀합니다. 물론 계명구도에 나온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개도둑질 같은 절도 행위를 능숙하게 하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란 뜻은 결코 아닙니다.
요즘 '집단 창의'가 흔히 언급됩니다. 한 사람의 똑똑한 인재보다 수많은 사람의 창의력이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중 귀하지 않은 존재가 없다고 여기면 되겠지요. 물론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 말종도 안고 가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학벌 외모 집안 같은 외형적 조건에 매이지 말고 사람이면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하니 차별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 큰일을 이루는 데 활용할 자세를 갖추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