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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Sep 07. 2023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것을

가난했지만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던 시절

아침에 아내 출근 시간에 저도 함께 집을 나섭니다. 아내가 최근에 체중이 늘어나 이전에 입었던 옷들이 몸에 맞지 않다면서 살짝 투덜댑니다. 어떤 옷은 아예 가위로 일부 잘라내기도 하면서 허리 부분을 펑펑하게 리폼했답니다. 그리고 저에게 물어봅니다.


"이거 아깝지만 가위로 잘라 다시 만들었는데 어때.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배나온 거 표 조금이라도 안 날 거 같은데 안 그래."


저도 이 순간은 조금 난감합니다. 그래도 배가 나온 것이 분명한데,  사실대로 말하면 아내가 실망할 것이요, 그렇다고 마음에 없는 말 하려니 제 속이 안 편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빙 둘러 둘러 말했습니다.


"당신 얼굴이 이뻐서 뭘 입어도 이뻐."


그러자 아내가 기뻐하는 표정도 없이 냅다


"당신은 솔직하지 못해. 이 옷을 입어도 이쁘다 하고 저 옷을 입어도 다 이쁘다 하니 물어 봐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냥 나 혼자 생각하고 말란다. 먹는 것도 그래. 뭐든 내가 해주면 맛있대. 그러면 진짜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어 도움이 안 돼. "


저도 그 순간 입을 다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떡하라는 뜻인지 모르곘네요. 아내가 건강이 나쁘기 전에 해주었던 요리 솜씨가 매우 뛰어났거든요. ㅎㅎ.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오기 전에 바지 고무줄 부분에 가위를 대는데 저는 도무지 구분이 안 가더군요. 모두 까맣게 보여서 어느 부분을 잘라야 하는지 판단이 안 되어 아내에게 말했지요.


"난 암만 봐도 색깔이 구분이 안 되네. 당신은 그래도 단번에 가위질을 하는 거 보니 아직 시력이 좋은가 보네."


그랬더니 아내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난 안경을 썼잖아. 이거 안 보여."  ㅋㅋ.


무안해진 제가 한 마디 더 보탭니다.


"나도 얼라 때는 그래도 눈이 좋아 엄마가 바느질하다가도 나보고⁴ 바늘에 실 끼어 달라고 했었는데."


그러자 아내가,


"그때 눈이 안 좋은 얼라가 어디 있노. 나도 그랬다. 아버지가 나보고 00아 여기 와서 바늘에 실 좀 끼어다오 하면 빨리 달려가 그렇게 해드렸지. 지금 우리 나이가 얼만데 얼라 때 이야기 하면 우짜노."


이건 도무지 무슨 화제도 결론은 항상 제 부족으로 귀결되네요. 어쩔 수가 없지요. 아내 건강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제가 약간 부족한 스탠스를 취해야 하겠지요. 그리고 둘이서 서로 어린 시절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화제가 이어집니다.


저는 지독히도 가난한 농가의 2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부모님 농사를 열심히 도우면서 학교를 다녔고, 아내는 부잣집 딸로 태어나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학교를 다녔다고 늘 강조합니다. 집에 머슴도 두어 명 있었다고 하네요. 어떨 때는 머슴이 학교 가는 길에 데려다 주기고 했다는 말을 하면서 은연 중에 저보다 나은 어린 시절을 강조합니다. 그건 사실이니 어쩔 수 없지요.




 오래 전 어느 유명 인사의 책에서 발견한 글이 생각납니다.


  "가난은 형제를 단합하게 한다."고.


아마도 제 기억에 이수성 국무총리 자서전에서 본 것 같습니다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한 농가에서 우리 3남매는 정말 우애가 깊었습니다. 그렇다고 처가 형제들이 우애가 깊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내랑 둘이서 서로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보니 문득 제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뿐이지요. 비록 가난하지만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그 시골 깡촌에서 대학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보다 훨씬 부유한 친구들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멈춘 것을 생각해 보면 제 인생은 그야말로 복을 받았지요.


어려운 살림에 대구 시내 하숙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우리 부모님과 형 그리고 여동생이 제 가슴엔 언제나 고마운 존재입니다. 고교 시절과 대학 때 가끔 시골에 가서 집안일 열심히 도우고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면서 가족끼리 주고받았던 기억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여름날 밤 마루에 다섯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삶은 고구마를 김치와 함께 먹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마루가 시원하여 가끔은 우리들이 큰 댓자로 누우면 세상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 되지요. 물론 아버지 계실 때는 그렇게 편하게 누울 수는 없었지만. 가끔 우리 가족들이 모여 뭔가 먹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 3남매를 만면에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던 표정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별로 드시지 않고 그런 말씀 하셨지요.


"세상에서 절대 안 아깝고 진짜 좋은 기 두 가지 있는데, 내 논에 물이 콸콸 흘러 들어가는 거랑 내 새끼들 입에 묵을 끼 마이 넘어가는 기라 안 카나."


어머니께선 제가 어릴 때부터 읽었던 책 내용을 들려 드리면 너무 좋아하셨지요. 그래서 다섯이 모였을 때 다시 한 번 책 내용을 들려주면 아버지 형 여동생 세 사람의 반응을 합친 거보다 열 배 이상 크게 리엑션 해주셨습니다. 조선 후기 고전소설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우리 어머니, 지금 생각하면 그 책 내용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의 둘째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때 우리 식구 다섯이 만들어간 삶의 행복이 정말 오래 갈 줄 알았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불과 10년도 채 안 되네요. 그래도 그때가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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