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나 제 곁에 와서 큰아들 어제 밤에 들어왔냐고 물어봅니다. 아내가 일어나면 그 순간부터 아내의 아침 식사 준비가 시작되니 그 전까지 책을 읽고 있었던 게지요. 큰아들 방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될 것을 굳이 저에게 물어보는 것은 제가 확인해 줄 것을 묵시적으로 바란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어제 밤늦게까지 제가 큰아들을 기다릴 겸 유튜브 동영상으로 '헤로도토스 역사' 강의를 시청하고 있었기에 그 시간까지 귀가하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잠든 후에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모양입니다. 아내 말을 듣고 현관에 보니 아들의 검은 색 구두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제가 잠들고 나서 큰아들은 귀가했을 것이고, 지금 이 시간에는 피곤하여 깊이 잠들었을 것 같아 방문을 열면서 확인하면 곤란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지요.
"어재 밤늦게까지 내가 잠 안 자고 아들을 기다렸으니 더 늦게 온 모양이네. 현관에 구두가 놓인 거 보니까 지금 깊이 잠든 것 같아. 나중에 출근 시간까지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잘 수 있도록 그냥 놔두는 것이 좋겠다."
아내가 뭔가 불만이 잔뜩 든 표정을 짓습니다. 요즘 큰아들의 귀가 시간이 들쭉날쭉하거나 어떤 날은 아예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자는 날도 많습니다. 직장 동료나 친구 또는 주말 알바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는 것 같습니다만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물어보면 아들에게 괜히 신경쓰이게 할 것 같았지요. 아내는 그것이 내심 불만인 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한 마디 하라는 의도겠지요. 큰아들이 아닌 저에게 확 쏘아부칩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무슨 젊은 아~가 뭐 그리 일이 많다고 매일 늦게 들어오고, 아니면 아예 들어오지도 않고 그라노? 좀 일찍 집에 오만 안 되나."
아내 말도 일리가 있지만 저 말을 큰아들이 직접 들으면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이 될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당신 말도 맞는데, 요즘 아~들 사는 기 진짜 바쁘고 힘들 끼다. 그냥 못 본 척하고 놔둬라. 그래도 우리 큰아들은 우리한테 잘 하려고 애쓰고, 어떨 땐 자기도 모르게 부모 눈치본다고 고생 안 하나. 늘 우리 심기 살핀다고 조심 조심 안 하드나. 그것도 큰아들한테 엄청난 스트레스 아니겠나. 지금 이날까지 큰아~가 우리한테 무슨 큰 소리 한 번 하더나. 혹시나 나하고 당신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신경쓰는 거 보면 큰아~도 힘들 끼다. 그냥 못 본 척 하는 것이 가~한테는 도움이 될 끼다."
그렇게 큰아들 입장이 되어 쉴드를 쳐주긴 하지만 아내의 표정은 영 마뜩지 않습니다. 기성세대가 보기에 자신들의 젊은 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젊은 세대의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차지 않기도 하겠지요. 그런데 지나고 보면 말입니다. 우리 젊은 시절도 냉정하게 살펴보면 그때 부모님들 성에 차기나 했을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에게 관대합니다. 스스로는 늘 잘 한 것 같고, 자신은 괜찮은 것 같고 그러면서 스스로에겐 매우 너그러운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나 헛점을 지니고 살고 있고,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제 부모님께선 살아 계실 때 저희 3남매에게 참으로 관대했습니다. 정말 잘해 주셨습니다. 무슨 잔소리 같은 거 기억에도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뭘 얼마나 잘 했다고 부모님께서 잘해 주셨겠습니까만, 그래도 저희 부모님은 우리 3남매에게 지극정성이셨습니다.
평소에 큰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우리 방에 와서 다녀왔다고 밝히고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았지요. 저와 아내 입장에선 큰아들이 초저녁 이른 시간에 퇴근하여 이렇게 귀가 인사를 하면 그냥 좋고 행복하지요. 하지만 우리와 달리 젊은 세대는 저녁에도 누군가와 만날 일이 많습니다. 요즘 와서 큰아들의 귀가 시간이 들쭉날쭉하기도 합니다. 아예 안 들어오고 외박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왜 그랬냐고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거나 몸이 아픈 것이 아니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집에 일찍 들어오면 저와 아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손수 준비해 주는 큰아들의 정성이 있기에 들쭉날쭉한 귀가에도 우리가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할 듯합니다. 오히려 무사하게 하루를 보내고 귀가하니 고마워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귀가하는 딸이 저녁 내내 청소 세탁 등을 확인합니다. 제가 낮에 청소한다고는 하지만 딸 아이에게 성이 차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딸 아이가 청소기를 돌리다가 제 곁에 오면 큰 눈으로 저를 째려보기도 합니다. 청소기로 제 발을 밀면서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그것도 참 고마운 일입니다. 딸 아이는 늘 귀가 시간이 규칙적인 반면에 큰아들은 요즘따라 유난히 바쁩니다. 그래도 아들의 삶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하겠지요. 뭐라고 따진다고 아들의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확인하면 아들의 마음은 더욱 편하지 않을 터지요. 부모 마음을 헤아려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큰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오히려 별일이 없기를 빌 뿐입니다. 부모 자식 사이에도 간섭하지 않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 자식들에게도 여유롭고 너그럽게 대해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