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 같은 사랑을 받으면

웬만한 어려움은 이겨낼 수 있다. 회복탄력성

by 길엽

오랜만에 딸 아이와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남매 모두 한창 바쁘게 살아가고 있어서 여유롭게 담소를 나눌 시간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큰아들은 시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주말 숙박 아르바이트 하고 막내아들은 멀리 경기도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으니 오늘은 딸 아이만 집에 남았네요. 아내는 요즘 유난히 영국 프로축구 EPL에 푹 빠져서 하루 종일 TV에 연결된 유튜브 동영상을 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간간이 거실로 나와 저에게 심부름 시키는 것이 재미 있는 모양입니다.


딸 아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민학교 다닐 때 여동생과 얽힌 사연을 이야기하게 되었지요. 우리집 아이들도 3남매고 제 어린 시절 우리 형제도 3남매였습니다. 순서가 조금 달랐다고 할까요. 형님과 저 그리고 여동생인데, 고향 시골 마을 약 110 호 정도로 꽤 큰 동네였습니다. 그중에서 아마 가난하기론 우리집이 첫 번째였을 겁니다. 가난한 농가에서 자랐는데, 저만 대구 시내 일반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고, 다른 친구들은 절반 정도는 국졸, 몇 명은 중졸 그리고 세 명이 실업계 고교로 진학했는데, 한 명은 중도 자퇴했지요. 결과적으로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고 대학까지 간 경우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흔해 빠진 게 대학생이라 저의 인생 역정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단지 우리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에서 유일하게 일반계 고교 그리고 대학에 진학하였고, 대구 시내에서 하숙을 했다는 사실은 특별한 사례였지요.


딸 아이가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떻게 저만 집에서든 마을에서든 그렇게 혜택을 받았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아빠는 우리들에게 참 너그럽고, 잘 대해 주세요. 그리고 어머니도 케어 잘 하시고, 주위 사람들에게 좋게 대해 주셔서 보기 좋았습니다. 이웃 사람들도 아빠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아빠는 어리 시절 가난한 농가에서 자랐다고는 하시지만 제가 보기엔 그렇게 생각이 안 돼요. 아마 할머니께서 살아 계셨을 때 정말 희생과 헌신을 했던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맞죠?"


글쎄요. 갑자기 딸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까. 대답하기가 쉽지 않네요. 돌아가신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분명 인정하지만 제가 우리집 아이들이나 아내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갑게 대했을까는 의문입니다. 경상도 출신 특유의 투박한 면이 많았을 텐데 딸 아이가 그렇게 말해주니 괜히 으스대고 싶어집니다. ㅎㅎ. 그러면서 여동생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습니다. 결코 제 자랑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자랑이 되네요.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남을 사랑할 줄 안다. 특히 폭포수 같은 어머니 사랑을 받은 사람은 평생 삶이 힘들 수 없다. 회복성이 정말 강하니까."


제 여동생은 저와 두 살 차이인데, 형과 저처럼 체격이 크지 않고 아주 자그마했습니다. 그리고 시골 국민학교를 같이 다녔지요. 여동생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바로 가지 않고 일단 저희 반으로 와서 저를 찾았습니다. 저희 담임 선생님께서도 여동생 얼굴을 기억할 정도였지요. 제가 학급 임원을 늘 했었는데, 선생님께서 아이들 급식 소빵이 남은 것이 있으면 저를 챙겨주셨습니다. 저희 집이 가난한 것을 알고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빵을 챙겨놓았다가 여동생이 우리 교실에 오면 책보자기를 풀어 몇 개의 빵을 넣고 다시 다부지게 책보자기를 싸서 묶었습니다. 그리고 차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합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3km여 거리입니다. 비포장도로에 오가는 차량도 위험하였습니다. 여동생의 자그만 몸이 안쓰럽게 보입니다. 저와 형은 체격이 상당히 큰 편인데, 여동생은 왜 그리 작았을까요.


"00야, 이 빵 집에 바로 가지고 가서 엄마한테 조야 한다. 니도 혹시 배고프마 한 개는 먹어도 되지만, 나머지는 꼭 엄마 조야 한데이. 엄마 들에서 일한다꼬 하루 종일 제대로 밥도 못 묵었을 낀데. 니 반드시 가져가서 엄마 조야 한데이. 그칸다꼬 니 안 묵고 가라카는 거는 아이다. 차 조심해래이."


여동생의 자그마한 몸을 다시 한번 살피고 양 어깨를 단단히 잡아 줍니다. 당시 제가 보기엔 동생이 왜 그리 걱정스럽게 여겨졌는지 모릅니다. 여동생은 우리 동네 아이들하고 간다고 저만치 걸어가는데 아무리 봐도 너무 작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선 제가 학교 마치고 여동생을 데리고 오면 안 되느냐고 늘 물으셨지요. 학년이 다르면 수업 시간도 다르니 어쩔 수 없었지요. 여동생이 먼저 간다고 인사를 합니다.


"오빠~ 간데이 낭중에 저녁에 집에서 보재이. 내 간데이."


학교를 나와서 한참 걸어가면 높다란 고개가 보입니다. 오후에 해가 있어서 넓은 신작로롤 따라 마을 아이들과 걸어갑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에 참여하였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여동생 책보자기에 넣은 빵이 보통 3~4개였습니다. 정작 저는 안 먹었지요. 그런데도 특별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치곤 제가 상당히 걸망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효도의 마음에서 그랬을까요. 지금도 여동생은 저를 만나면 그 시절 자신에게 너무 잘 해주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동생에게 당연히 그래야 했을 뿐이라고 하지요. 동생의 딸 생질녀가 집안 여러 행사에서 만나면 저와 여동생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많이 들었다면서 "외삼촌이 우리 엄마한테 진짜 잘해 주셨다면서요. 엄마가 평소에 작은 외삼촌이 수호천사였다고 해요. 엄마는 공부를 못하고 작은 외삼촌은 덩치도 크고 공부도 잘 하니까 엄마한테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고 하대요."라고 말하더군요. 그 정도였을까요. ㅎㅎ.


동생을 먼저 보내고 수업에 들어간 뒤 저녁 무렵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식구가 함께 저녁 식사를 합니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저녁 식사는 다 함께 하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 같이 둘러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어머니가 해주신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지요. 밥을 먹고 나면 형이 기타로 '과수원길'을 연주하고 저는 따라 불렀습니다. 동네 아지매들이 저희 집 담 너머로 구경하고, 어머니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셨지요. 그 시절이 참 좋았습니다. 같이 저녁밥을 먹고 있는 중에 제가 어머니께 그랬지요.


"엄마~. 내 있제. 자~ 편으로 소빵 보냈는데 먹었나. 맛은 어떻더노."


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여동생은 밥 먹다 말고 숟가락을 놓더니 갑자기 방으로 뛰어갑니다. 아하! 제 혼자 다 먹었구나. 그 자그마한 체격에 소빵 세 개나 먹다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한 개는 엄마한테 전했으면 좋았을 낀데. 그래도 전 더 이상 여동생에게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어머니께서 드시지 못한 안타까움만 가득했지요. 어머니께서 한 마디 하셨지요.


"저거 분명히 고개 만데이 넘어오다가 배고프다고 혼자 다 뭈을 끼다. 즈그 오빠는 배고파도 참고 보냈을 낀데, 저거는 지 배만 채울라고 다 뭈을 끼다. 아이고."


우리 가족 모두 여동생에게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지요. 뒤에 들으니 여동생이 어머니께 주의는 들었다고 하더군요. 우리 가족 모두 여동생에겐 상당히 너그러웠었지요.


제가 지금 삶을 돌아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주신 폭포수 같은 사랑과 은혜 덕분에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어머니께선 살아 생전에 단 한 번도 우리 3남매에게 공부를 강요하시지 않았고, 질책도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시지 않았고, 글자도 모르셨지만 아이들 교육에 관해서는 정말 적극적이었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우등상이나 개근상, 반장 임명장 등을 받아 가져오면 어머니께선 너무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몇 번이라 꼭 안으셨습니다. 어머니가 기뻐하시기에 더욱 기뻐하시라고 제가 학교 생활에 더욱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해도 결핍을 전혀 느끼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낮에 김유원 장편소설 <미확인 홀>을 읽었는데, 등장인물 대부분 '결핍'을 안고 있더군요. 특히 의사 부인으로 남 부러울 것 없는 '희영'이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할지라도 가족 내 구성원끼리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이 세상 그렇게 힘든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어머니의 폭포수 같은 사랑을 받고 자란다면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래도 행복하게 살아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 아이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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