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마음이 괜히 설렙니다.
석양이 내리는 저녁 무렵 온 세상이 빨간 노을로 물들고
그리움의 조각들이 강변에도 강둑에도
수양버들 늘어진 잎사귀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 위 물비늘에도
오늘따라 저리 아름답게 빛이 나고.
고향 마을 들판 언덕에 올라서서 오실쟈 고개 넘어 가는 그
아득한 추억의 길에서 서녘 봉래산 빗기 내린 햇빛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리움이 가슴 속에 밀려옵니다.
문득 단풍 떨어지는 가을 풍경을 바라보면서 추억의 그 시절로 빠르게 달려갑니다. 우리 세대에게 추억의 공간에 각자 한 가지는 사연이 있을 듯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시절 그때가 정말 좋았다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기도 하지요. 그렇게 같은 마을에서 학교를 다니고, 강물로 늪(호소)으로 몰려 다니며 멱을 감기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우리 마을 끝 무렵에 있는 과수원 자두나무에 올라가서 정신없이 자두를 따다가 주인네 일명 스기야마 상이 휘젓는 장대에 엉덩이를 사정없이 찔려 떨어지고 도망도 쳤지요. 참 그집 무남독녀 외동딸은 시골 아이와는 너무도 댜르게 정말 이쁜 얼굴에 피부도 뽀얀 것이 길가다 미소만 지어도 우리 모두 쓰러지고. 거의 아이들급이었다고나 할까요.
겨울 농한기엔 집집마다 평균 한 명씩 지게를 지고 산고개를 두어 개 넘어가서 열심히 나무를 하는데. 여름 내내 풍성하게 자랐다가 가을에 마른 풀잎들을 낫으로 베서 지겟짐을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새끼줄로 세 줄로 종으로 묶은 뒤 지게를 적당하게 꽂으면 어엿한 나뭇짐이 되었지요. 다시 그것을 지고 산길로 나란히 걸으면 사막의 낙타 행렬과 떠나는 상단과 유사하게 구불구불 그렇게 걸었습니다. 그렇게 지겟짐을 지고 하염없이 걸어가다가 저 멀리 일망무제 펼쳐진 들판엔 가을걷이가 끝나 황량한 늦가을 바람이 몰려가고 있었고, 단풍 물든 산구릉이 눈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오전엔 나무를 하고 오후엔 마을 뒤 벌거숭이 산에 모여 해가 질 때까지 새카맣게 몰려 닭싸움, 자치기 등을 하였과 기마전을 격하게 하다 다친 아이는 아프다고 울었고 그집 아지매는 누가 그랬냐고 소리 소리 지르고 그랬지요. 집집마다 앞산을 향해 "밤 먹으로 오라."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는 추억의 그때가 그리워집니다. 저녁밥을 먹는 집집마다 방안에 둘러앉아 나누는 담소가 마을 안에 가득 가득 울려 퍼졌지요. 가난해도 참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저녁밥을 서둘러 먹고 다시 마을 가운데 있는 넓은 마당에 모입니다. 달이라도 뜨는 날에 온 세상이 밝으며 정신없이 뛰어다닙니다. 당시엔 놀이 종류도 많았습니다. 비사치기가 많았고, 다망구, 닭싸움 고무줄놀이 등이 기억에 떠오릅니다. 겨울이라도 밤엔 그렇게 어울려 놀았습니다. 밤이 깊어가면서 누구의 허락도 받을 필요 없이 잠이 오면 각자 알아서 집으로 갑니다.
저도 그렇게 열심히 놀고 집으로 들어오면 어머니께서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놓고 얼굴도 씻어 주시고, 하얀 앞치마 한 쪽을 잡아 닦아 주십니다. 늦게 온다고 타박도 하지 않으시고, 어디 다친 데는 없었나만 확인하셨습니다. 지금 추측해 보면 귀가 시간이 한 10시 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작은 방에 들어가 책상에 앉아 읽고 싶은 책을 펼칩니다. 잠이 쏟아져 금방 잠든 날도 있었지만 책이 재미라도 있는 날이면 깊은 밤까지 책상에 앉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간식을 가져오셔서 방 벽쪽에 기대 앉아 저를 지켜보시던 날들도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