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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니 우리 둘만 남았네"

by 길엽

거실에서 원고 작업한다고 바쁘게 워드를 치고 있는데, 아내가 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어슬렁 어슬렁합니다. 이 시간엔 TV 보느라 정신없는 사람인데, 무슨 이유로 그럴까 하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지요.


"와. 뭐 필요한 거 있나. 내가 원고 작업한다고 당신 부르는 거도 몬 들었네. 미안. 그래 필요한 기 뭐꼬? 어디 마트에 가서 사올 끼라도 있나?"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저의 경상도 사투리가 정말 심하고 투박하네요. 어쨌든 아내가 방안에서 저를 부르다가 제가 못 들으니 나와서 뭔가 부탁하려나 했지요. 지레짐작일까요. 아내가 말합니다.


"아니, 그기 아니고. 막내가 금요일 밤에 왔다가 오늘 오후에 경기도가 쌩 가버리고, 큰아들과 딸도 집에 없으니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 나이가 드니 진짜 우리 둘만 남았네. 안 그래. 방안에서 당신을 부르지도 않았고, 당신이 안 들은 것도 아니고."


아내가 저를 부르면 가장 먼저 냉장고에 든 접은 타월을 꺼내 수돗물로 해동시킵니다. 머리 부분에 열기가 오면 핑핑 돌아가서 제대로 서 있기 어려운 증상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어느 의사도 그 원인을 잘 모르네요. 그래서 우선 그 순간을 넘기는 대증적인 효과밖에 없을 듯하지만, 타월을 냉동한 것을 수돗물로 해동하면 상당히 차갑습니다. 꽉 짜서 아내 머리에 꼭 매어주면 상당히 시원해합니다. 어지러운 증상은 사라지지요. 더 급하면 119라도 부를 텐데 요즘은 그 정도는 아나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2021년 10월 15일 코로나 2차 접종 후유증으로 갑자기 쓰러지고 119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간 이래 만 2년을 넘겼네요. 이젠 이런 일도 습관이 되다시피하네요. 그때보다 아내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기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곁에서 어설프게 간병을 하면서 보니, 아내가 저에 대해 상당히 의존적이 되었습니다. 급하면 저를 부릅니다. 제가 대답을 조금이라도 늦게 하면 갑자기 급해집니다. 전화를 걸어 제가 금방 답하지 않으면 몇 번이나 전화를 걸더군요. 잠시도 못 기다립니다. 그래도 요즘엔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먹는 약도 대폭 줄였지요.


코로나 기간에 크고 작은 증상으로 사망에서 가벼운 증상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례가 있었기에 저도 두려움이 컸지요. 그래서 수시로 아내를 안심시키고, 가끔은 제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어설픈 유머로 웃기기도 했습니다. 제 모자란 유머 실력은 결혼 전 연애 기간에 많이 보여줬기에 아내가 썩 그리 재미있어 하진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제가 거실에 앉아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쓸 때는 머릿속은 여기에 귀는 안방을 예민하게 살핍니다. 작은 소리로 부를 때는 잘 안 들리거든요. 그래도 요즘엔 급하게 부르는 비율이 많이 줄었습니다. 아이들에겐 제가 책임질 테니 당분간은 걱정하지 말라고 해두었습니다. 저에게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습니다. 아내도 아이들이 좋지만 저에게 부탁을 많이 합니다. 약값이나 병원비가 많이 들어간다고 은근히 걱정을 합니다. 제 연금의 상당 부분이 아내 병원비에 들어간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그건 그렇지 않아. 지금 들어가는 비용은 훗날 진짜 아파서 큰돈도 소용없을 때 비하면 다행이라 생각해야 돼. 지금 들어가는 비용은 금액도 크지 않을 뿐더러 그것이 훗날에 대비한 치료 비용으로 생각하면 된다. 너무 신경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한의원에서 처방해주는 약들은 보강제라고 생각하거든. 당신이 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둘이서 예전처럼 '무목적, 무계획, 무방향 여행'을 무작정 떠나고 싶어."


솔직히 말하면 아내와 저와 둘이 있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가면 누군가는 먼저 가서 혼자가 될 것이고 그 혼자도 시간이 가면 세상을 떠나야 하지요. 아직은 그런 것을 생각할 나이가 아닐지 모르지만 그건 신(神)만 아는 영역이니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도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둘이 함께 있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요.


지난 주에 지역의 노인 시설을 방문해서 어느 분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그분께서 저에게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샘예! 이렇게 늘 오시니 참말로 고맙심더. 샘께서 제 말을 잘 들어주시니 저도 마음이 기쁘고 좋아예. 그런데 이럴 때마다 먼저 간 영감이 참 그립네예. 둘이 살 때 그렇게 저한테 잘 해주지도 않았고, 날마다 뭐라 카기만 하던 영감인데 막상 먼저 세상을 버리고 나 혼자 이리 남아 있으이 참말로 허전합니더. 아~들도 다 모두 시집 장가가서 잘 살고 있으이 고맙기는 한데 널쩍한 방에 혼자 누워 밤을 보낼라 카이 먼저 간 영감이라도 옆에 있으마 얼마나 좋을까 싶네예. 샘도 사모님캉 둘이 있을 때 재미나게 사이소. 시간 지나뿌마 진짜 후회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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