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말참견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정말 피곤하지요. 더욱이 늘 얼굴을 맏대고 봐야 하는 사람이면 더욱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젊은 시절이라면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말 중에 헛점이나 모순을 찾아 논파(論破)하는 것이라면 일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조직 내에서 승진하겠다는 열망이나 학문적 성취를 위해 타인의 견해를 공격하는 것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직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노년 시대에 접어들면 그런 생각은 깡그리 벗어 던져야 합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입니다. 이젠 그런 것에서 한 발 멀찌감치 벗어나 세상을 객관적으로 여유있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그래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쇠가 다가오는 속도가 빠를 즈음인데, 쓸데없이 논쟁이나 해서 이겨본들 내 몸과 마음에 별로 덕도 도움도 안 되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 젊은이들을 가르치려하는 행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이라 해도 아주 미흡합니다.
제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니 마흔 한 살 때 직장 동료와 언쟁한 것을 끝으로 지금까지 누군가와 다툰 경험이 없습니다. 당시는 제가 분명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서 일명 '짤짤이'이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무리들 전원을 데리고 와서 판돈을 모두 압수했습니다. 그리 해봐야 일 인당 평균 동전으로 2천 원 쯤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선친께서 도박을 하여 우리집이 패가망신한 경험이 워낙 생생하여 죽을 때까지 도박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저로선 우리 학생들에게 강력하게 주의를 주려고 했지요. 그리고 압수한 판돈은 일과 후 돌려주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밖에서 그렇게 주의를 주고 자리에 돌아와 보니 세상에 동전 일부가 사라지고 없는 겁니다. 옆 동료가 가지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더라고요.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어서 그 동료에게 강력하게 따졌지요. 어떻게 아이들 동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냐고 말입니다. 그 사람도 상당히 당황했고, 전 더욱 몰아쳤지요. 아이들 집에 갈 때 차비라서 전액 돌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자칫하면 집까지 걸어가게 생겼기에 그 선배 동료의 행위는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습니다. 미안하단 말도 하지 않으면서 이런 말까지 하더군요.
"지나치게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못하고, 너무 깨끗한 사람 곁엔 사람이 없답니다. 장난삼아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것 가지고 너무 그러지 마소."
확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렀지요. 뭐 이런 사람이 있나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외면하고 말았던 것이 마흔 한 살 때 언쟁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누구와 심한 언쟁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제가 좀더 여유를 갖고 대처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 지나간 시절 에피소드로 기억에도 서서히 옅어져 갑니다. 그후론 사람들 사이에 말싸움이라도 일어나면 가운데 서서 말리기는 하지만 제 자신이 그곳에 얽혀 들어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덕에 지금껏 평화롭게 살아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주위 사람들과 불편한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도록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한창 흥분한 상태에선 오직 제 자신의 생각만 떠오르지 상대방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내 주장만 옳다는 아집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땐 한 발 뒤로 물러나서 세상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것도 삶의 지혜라른 생각이 듭니다. 그런 언쟁 이겨봐야 남는 것이 없다는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지요. 가정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끼리 말다툼이 일어나더라도 나이 많은 사람들은 아래 세대에 대하여 훈계 따위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괜히 한 마디 했다간 분위기만 싸하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 젊은 시절 당시 부모님들께서 자주 하신 말씀이 있지요. 우리가 뭔가 여쭈면,
"야~야, 나 많은 내가 뭐 알겠노. 느그들이 잘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겠지 뭐. 난 느그들 생각을 믿고 지켜 볼란다. 우리야 늙어서 뭐 알겠노. 느그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