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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카페에 들어서고

by 길엽

최근 들어선 최신식 카페 이야기를 들었다. 달밤에 그곳에 가서 잠시 앉아 옛날 음악을 들으며 추억에 젖고 싶었다. 이런 시골에 무슨 대형 고급 카페가 있으며, 있다 한들 사람들이 이렇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로 놀러 오기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가보기로 했다. 마을 사람 중 누군가 동행하면 좋겠지만 어린 시절 함께 지낸 형님들은 이제 심신이 쇠약해 밤에 어디 마실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 시골은 밤 9시가 핵심 수면 시간대고 그 시간이 넘어셔면 마을 골목길엔 인적이 드물어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제 낙향한 지 1년밖에 안 된 내 입장에선 이런 시간에 집안에 그냥 틀어박혀 TV나 유튜브 동영상만 주구장창 보내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깝기만 하다. 그래서 혼자서라도 저녁 석양길을 따라 걸었던 길 건너 강마을에 새로 생긴 퀄리티 높은 카페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은근히 기대도 된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유년 시절의 추억이 가득 서린 여기 시골 마을로 낙향하여 은거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말렸지.


도시에 살고 있는, 특히나 시골 출신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현역에서 물러나 언젠가 조용한 시골마을로 들어가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이나 가꾸면서 노후를 즐기는 로망이 있다. 하기야 어디 시골 출신만 그러하랴. 하지만 시골에서 자란 나는 노후에 텃밭이니 농사를 짓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다. 농사 그거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시골로 어느 선배 부부가 동시 명예퇴직하여 전원주택을 짓고 2천 평 농토와 과수원을 구입하여 수익도 내는 전원생활을 시작했지. 그렇게 큰 꿈에 부풀어 시골로 들어간 그 선배 부부는 2천 평 정도 농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만만해했다. 도시 생활을 마치고 낙향하는 이를 위해 모욨다. 그들의 장도를 기원하는 자리에서 우리 건배하면서 선배 부부의 행복한 전원생활을 빌었지.


어린 시절 시골에서 고생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자신만만한 그 선배 부부가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그 정도 토지를 구입할 자금 동원력도 부럽고, 그곳에서 생산한 것을 로칼푸드로 해서 판매선까지 확보했다며 자신의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프리미엄을 자랑했었지. 어린 시절 농사를 지었다곤 하지만 도시에서 교직을 35년 정도하면서 도시 생활에 젖어 있는 그 선배가 전원으로 들아가 맞닥뜨린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달 만에 선배 부인으 도시 아파트로 돌아오고, 그 선배는 1년 정도는 버텼다. 이혼도 할 뻔했단다. 그곳 전원생활의 낭만은 첫날부터 어그러지기 시직했단다. 첫날 전원주택 마당 평상에 부부가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도시에선 잘 보이지 않던 별들이 바로 눈앞에서 쏟아내리더란다. 평상에서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젊은 시절 연애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즐거운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가면서 모기떼들이 들이닥쳤다. 모깃불을 피우고 향도 피웠지만 시골 들판 모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선배 부인은 이불을 둘둘 말아 방으로 들어와 모기장 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 모기뿐이랴. 마당에도 논밭에도 과수원에도 무슨 잡초가 그리 빨리 자라는지, 집 테라스에 앉아 내리는 비를 보는 흥에 젖었늗데, 비가 그치고 다음 날 들에 가보니 세상에 풀도 풀도 뭐 그리 커 있던지 무성했다. 풀을 제거하는 일도 만만찮았다. 유기농을 하겠노라고 생각하여 농약을 쓰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결국은 독한 제초제를 사정없이 뿌렸다. 하루 하루 잡초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전원을 누린다는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는 시간이 겹쳐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이 나 후회했다. 아내가 한 달 만에 이곳 생활을 포기하고 도시로 돌아간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래도 선배는 자신이 낙향과 은거를 오매불망 기대하여 결국 성사시킨 탓에 오기로도 버티려 했었다. 시골 생활의 장점을 떠올리면서 언젠가는 이 고비가 넘어갈 것이라는 희망을 억지로 품었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것이 겨우 1년이었다.


전원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아내가 있는 도시 아파트 아늑한 공간으로 돌아오던 날 일년 농사 결산을 하는데 이건 정말 '허파 뒤집어 지는' 정도였다. 총수입액에서 인건비 농약대 각종 물품 비용 등을 제하고 나니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냥 온몸이 골병들었다는 것만 남았다. 다른 이들은 얼마나 어떻게 준비를 해서 시골로 들어가 수입도 많이 올리며 전원 생활을 넉넉하게 누린다는데 선배의 심정은 참으로 비참했다. 농토와 과수원 구입에 들어간 돈이며 전원주택을 관리하는데 들어간 비용은 또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시간이요, 경험이었지. 거액을 들여 지은 전원주택은 매물로 내놓은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없고 그냥 을씨년스런 겨울바람을 맞으여 활량한 시골 그곳에 홀로 지키고 있다. 하기야 4억 가까이 되는 전원주택을 누가 거액을 그런 곳에 묻어가면서까지 사러 올까. 그리고 그 선배가 다시 도시로 돌아온 지 꽤 지났을 때 우리와 만났다. 이때 선배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느그들 촌에 함부로 들어가지 마라이. 그날부터 고난의 행군이다. 낭만! 그딴 거 없다. 절대 없다이. 농사짓고 수익올린다 그런 거 없다. 그냥 골빙든다. 내 장담코 말하는데 시골에서 딱 두 평만 넘으면 노동이다. 그냥 도시 여기서 욕심 조금 덜 내고 편하게 살으시오들."


한 사람의 사례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난 애초부터 그런 생각은 접었더랬다. 방 하나 빌려서 월세 주고 작은 공간에 최소한 살림살이를 옮겨 놓고 생활하려 마음 먹었다. 이부자리와 노트북 그리고 읽고 싶은 책 열 권 정도를 생각했지. 막상 이곳으로 오던 날에 책이 조금 늘긴 했지만 정말 단촐했다. 책이 추가로 필요하면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대출하든가 아니면 인터넷으로 구매하면 되는 것이지. 이젠 책 구입도 자제할 생각이다. 그렇게 사들이는 책들이 오롯이 짐이 되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서니 예상 외로 사람들이 가득하다. 주말에 도시에서 몰려 온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꽉 찼다. 무대에선 그룹사운드가 내 젊은 시절 추억이 가득한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카페에 들어온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굼베이 댄스의 'The sun of Jamaica'는 처음 독백 부분이 인상적인데 이곳 무대 가수가 함께 불러주면서 그룹사운드 연주까지 곁들이니 분위기가 금방 고조된다. 조용히 살려고 들어온 전원생활인데도 오늘 밤처럼 이렇게 분위가기가 살아 있는 공간에 들어와 사람들의 밝고 활기찬 얼굴을 접하니 이것도 괜찮은 것 같다. DJ가 신청곡들을 아주 재미있게 설명하고 분위기를 한층 들뜨께 하는 것을 보니 옛날 대학 다니던 시절 시내 DJ 다방에서 신청곡을 써서 내던 기억도 떠오른다.


네 명이 앉는 자리에 혼자 있었는데, 조금 있으니 어디선가 1차를 하고 온 듯한 사람들 셋이 합석하고 가볍게 미소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그중에 한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셋 모두 머리에 하얀 세월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이곳 지역 사람들인가 보다. 저 앞쪽 테이블엔 도시에서 승용차를 몰고 와서 시골 저녁 카페를 즐기는 분위기가 보이는데 뒤쪽은 조금 연로하고 입성도 약간은 촌스러운 감이 든다. 한 사람이 자신들이 주문한 맥주 한 잔을 내게 권하면서 말을 걸었다. 어디 사는지,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등이 대화로 오간다. 내 어린 시절 고향 마을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던 강마을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을 평생 본 적은 없다. 그런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우리 마을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00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 마을 세 살 위의 형님이다. 알고 보니 강마을 그 사람과 우리 마을 형님과 친척간이고 어렸을 때 친척집에 와서 놀았던 추억을 들려준다. 그때 나도 함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기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합석하여 노래도 함께 듣고 부르면서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요즘은 나이가 들어도 옛날처럼 술에 취해 흥청망청대면서 주사를 부리는 사람들이 확연하게 줄었다. 술이 입에 들어가면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던 사람들이 꽤 보였는데, 많이 사라진 듯하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은 기성 세대인 노년세대와 달리 술마시는 것이 아주 담백하고 깔끔하다. 언젠가 우리집 큰아들이 들려준 적이 있다. 그들은 술값을 철저하게 더치페이한다고. 나만 해도 지인들 만나면 아직도 더치페이가 어색하다. 그래서 나도 가끔 번개를 치면 그날 전체 금액을 계산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했다. 더치페이가 훨씬 현명하고 부담이 적으니 바람직한 방식인데, 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이 문제일 뿐!


팝송에서 댄스곡으로 넘어가고 영화 주제곡과 DJ가 선곡한 명곡 다섯 곡이 연이어 대형화면에 흘러 나온다. 그룹 사운드는 세 곡 정도 감상했다. 맥주 두어 잔이 들어가니 무슨 음악이든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사람들 표정은 매우 행복하게 보였다. 테이블마다 술잔과 담소가 떠돌아 다녔고, 그중 상당수는 행복한 기운으로 실내를 가득 가득 채우고 있다. 살면서 안면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맥주를 가볍게 마시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다음에 기회를 잡아 또 와야지. 나의 거처를 챙겨주는 파파 할머니가 된 집안 형수님도 모시고 올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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