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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너무 심심해요

노후 세대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by 길엽

봄이 오고 나뭇잎이 새로 나오면 저렇게 호젓한 길을 홀로 걷고 싶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어도 걷는 순간 정말 행복할 듯합니다. 현직에 있울 때 책 읽을 시간이 충분하지 못해 아쉬웠기에 퇴직하면 진짜 책을 마음껏 읽고 싶었습니다. 막상 퇴직하고 노년 세대의 삶에 접어드니까 생각처럼 책 읽는 여유가 잘 없네요. 그래도 책상 위에 읽을 책을 가득 쌓아놓고 혼자 책 읽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이 나이가 주는 커다란 행복입니다. 요즘엔 최봉원 교수의 중국선진우언(中國先秦寓言)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이솝우화와 비슷한 성격의 글이라 보면 됩니다. 중국 선진시대의 우언이라 해서 뭔가에 빗대어 교훈을 주는 그런 내용이지요. 하나 예를 들어 볼까요.



장자 소요유 편에 나오는 '곤붕여척안(鯤鵬與斥鴳)'으로 곤붕과 메추라기라는 뜻입니다. 붕(崩)은 크기가 등은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은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 높이의 상공에 올라 푸른 하늘을 등지고 남쪽 바다를 향해 날아갑니다. 그에 반해 메추라기는 펄쩍 뛰어 날아 보았자, 불과 몇 길도 못 오르고 내려와 쑥대 사이를 이리저리 날아 다니느 것이 고작입니다. 그런데도 메추라기는 하늘 높고 땅 넓은 줄 모르고 자신의 활동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붕새를 비웃는다는 것이지요. 결국 이 우언을 통해 식견이 좁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원대한 포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것이랍니다.


중국 선진우언 표지.jpg

한문 원문이 짤막하여 부담도 적고 느끼는 바감 많아서 읽기가 편하네요. 대신에 해당 텍스트를 놓고 사람들이 둘러 앉아 토론을 한다면 아주 풍부한 내용이 줄줄 나올 것 같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출근하고 집안은 텅 비어 조용합니다. 오후 4시 30분이 되면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춰 승용차를 운행하게 되겠지요. 그때까지 이 책을 여유롭게 읽으려 합니다. 폼 잡는다고 옆에는 차 한 잔을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에 뭔가 두고 온 것이 생각나서 잠깐 현관문을 나서서 주차장에 내렸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주민 분께서 반갑게 인사를 하십니다. 이분은 서울 지역 국립대학 공대 줄신의 엔지니어로 현직에서 40년 가까이 일하다가 퇴직하여 본격적인 노후 생활을 보내고 계신 분입니다.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살짝 부럽기도 했지요. 그런데 제가 지금 어딜 가시냐고 말했더니,


"오늘도 목욕탕에 갑니다. 아침에 안 가고 지금 이 시간에 가야 그래도 또래 친구들이 탕 안에 여럿 있으니까. 지금 가야 합니다. 목욕하고 같이 점심 식사를 한 다음에 집에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지요. 이거라도 없었으면 그 많은 긴긴 시간 지루해서 어쩔 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데요. 나이가 들어 보이 진짜 하루 하루 뭘 하면서 보내야 될지 막막하고 도무지 알 수가 없더라꼬요. 오후에 집에 오면 집에 아무도 없고 혼자서 TV나 보다가 그만 잠이들어 버립니다. 그러다가 새벽 1시 2시에 눈이 떠지고 아침까지 잠을 설칩니다. 그라고 다시 아침까지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밤을 보내지요. 진짜 할 일이 없어 미칠 정도랍니다." 라고 하시네요.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그 연세에 서울지역의 국립대학 공대 출신이면 공부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집에 책도 많다면 책 읽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물론 나이가 들어 책 읽는 것에도 체력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 제 말씀을 듣더니 손사래를 크게 치십니다. 현직에 있을 때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답니다. 지금도 책 읽는 것은 진짜 싫답니다. 책 읽는 것도 실력과 경험이 필요하다는군요. 저는 동의할 수 없는 말씀이지만, 그 분께서는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저녁에 부인과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고 과일이라도 나눠 먹으며 담소하면 좋을 듯하다고 권했더니, 이번에 더 큰 몸동작을 보이시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것처럼.


부인께선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여러 가지 모임, 활동을 하시다가 집에 늦게 오신답니다. 어디 봉사활동도 많이 다니시는가 봅니다. 노부부가 한 공간에 있어도 서로 말이 별로 없다고 하네요. 정년이 지난 노후 세대 노부부의 처지에서 부인은 더 이상 남편에게 매이지 않고 밖으로 나가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어지고, 반면에 남편은 집안으로 돌아와 편안한 분위기를 누리고 싶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던가요. 제 같은 경우는 아내아 아이들이 없는 집안에서 빨래도 하고 청소도, 쓰레기 분리수거도, 밥과 국도 준비하는 등 제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합니다. 그리고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놓고 책 읽는 시간을 누립니다. 책 읽다가 슬슬 지루해지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동서양 고전 강의를 듣는 것이 요즘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가끔 집을 나서서 아파트 뒤 산길도 걸어봅니다. 아무도 없는 낮에 홀로 걷는 것도 괜찮더군요.


노년에 심심히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본인 탓입니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심심하다면 진짜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할 일이 천지입니다. 하다 못해 지역 종합 사회복지관에 가면 자원봉사자가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아니면 사회복지관에서 개설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노후 세대의 삶에서 '심심해서 미치겠다.'는 분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이 어떻게 노후를 즐겁게 보낼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이젠 내가 봉사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현명한 사고 방식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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