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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5. 2023

갑자기 떠오른 에피소드 하나
"정화교육"

어린 시절 내륙인 달성군 논공면 위천1동(우나리)120번지에서 성장한 탓인지 바다 하면 맹목적인 로망이 있었습니다. 태어나고 처음으로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집단 가출하여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저 혼자만 대학생이고 나머지 전원은 농사꾼들이었지요. 차비를 아낀다고 비둘기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정말 가슴 부풀게 즐거웠습니다. 제일 마지막 객차 뒷문에 서서 멀어져 가는 레일을 정말 오랫동안 바라보았지요. 한창 농사철일 때 우리 동네 친구들이 동시에 가출해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부모님 모르게 가출한 벌을 정말 혹하게 받았습니다. 


부산역에 내렸을 때, 우리 또래들보다 도시 물을 조금 먹었던 친구가 부산역 광장으로 내려가며 "야 저기 뭔지 아나 바로 코모도 호텔이다. 잘 봐 나라이."라고 하기에 동시에 전통 건축 빛깔이 찬연한 코모도 호텔 처마를 바라보며 감탄했지요. 그것도 잠시 저 밑에서 큰소리가 들려옵니다. 


"야이 새끼들 너희들 바로 튀어 와. 뭐해."


우린 당연히 딴 사람들 보고 그러는 줄 알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우리들 말고는 부를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1980년 8월 8일 당시 부산역 광장에는 파출소 같은 것이 하나 있어서 부산역을 나오는 사람들을 검문하거나 파출소에 끌고 들어가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서 끌려 간 것이 아니 그냥 호출을 당한 것이지요.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경찰과 군인 몇 명이 몰려와 우리 아랫배를 무차별 가격합니다. 우린 영문도 모르고 우르르 쓰러졌습니다. 다들 무슨 이유인지 모르고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위를 구둣발로 마구 걸어다닙다. 비명소리고 곳곳에서 들리고. 유일한 대학생인 저라도 나서서 왜 그런지 이유를 물어보려 했지만, 5.18 광주민주항쟁으로 전국 대학이 전면 휴교하고 있는 상태에서 대학생임을 밝히면 오히려 곤란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그냥 맞았습니다. 


"야 너 뭐 하는 놈이야?" 


모두 시골 농사짓는 친구들이라 당연히 농사꾼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그렇게 답을 하면서 슬쩍 저를 쳐다 봅니다. 저도 이 상태에서 대학생임을 밝혀 좋을 것이 없어서 


"예 농사짓다가 왔습니다."


하기야 농사짓다 왔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니지요. 대학생이지민 고졸처럼 말하고 농사꾼임을 밝혔는데, 군인이 별다른 말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제가 대학생이 아닌 농사꾼으로 보였겠지요. 그리고 후에 알았지만 그곳의 군인은 실제로 방위병들이었다고 하더군요. ㅎㅎ. 


부산역 파출소에서 혼쭐이 났지만 그래도 부산까지 와서 구경은 하고 가야 한다기에 남포동으로 태종대로 바쁘게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2인 1조 형사들에게 심문을 받았습니다. 결국 대구로 가는 길에 친구 하나가 시내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어 인근 월배 경찰서로 모두 끌려가 "정화교육"을 받았습니다. 


경찰서 안마당에 나란히 엎드려 뻗쳐와 동시에 푸시업을 합니다. 밑도 끝도 없는 형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정신 자세가 아주 불량한 사람들입니다. 그 정신 자세를 똑바로 고치기 위해서 지금부터 따라합니다. 하나에 내려 가면서 '정화!' 그리고 올라오면서 '교육!' 알겠습니까?"


"예!!!!!!"


전원 머리 한 부분씩 바리깡으로 밀려 우스꽝스런 상황에서 우린 열심히 푸시업을 했지요. 그런데 한쪽에서 자꾸만 정화 대신에 "점화"라고 하는 바람에 그 친구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복부를 맞고 쓰러지고 우린 다시 계속했습니다. 그 친구는 후에 솔직하게 밝혔습니다. 정화가 무슨 말인지 무슨 뜻인지 몰랐고 '점화'로 들었다고. 식자우환(識者憂患)이라 하며 아는 것이 병이란 말은 들었지만 무식하다고 그렇게 얻어 터질 줄이야. 


하루를 그렇게 혹하게 보내고 밤늦게 시골 마을 동구를 걸었습니다. 새벽에 가출했던 기억은 모조리 잊었는지 오로지 집에만 가고 싶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동네 곳곳에서 심야에 욕설과 호통 체벌 소리가 골목 골목에 울려 퍼졌습니다. 아내가 이 에피소드를 듣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도 그날 맞았나?"


저라고 무슨 통뼈라고 그 바쁜 농사철에 하루 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심야에 돌아왔으니 무사하길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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