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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Apr 27. 2023

아프지만 않으면 나이 들어도 괜찮은데

비오는 날 참으로 오랜만에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번개를 쳤으니 이날은 제가 대접해야 하겠지요. 부평동 야시장 바로 앞에 있는 빈대떡집이었습니다. 평일 저녁인데도 가게 안에 사람이 꽉 찼습니다. 우린 평소처럼 그냥 가서 자리에 앉으로 생각했기에 예약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알았지만 비오는 날은 가게 전체가 비상이 걸리고 예약은 안 받는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 빈대떡 파전 막걸리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한 달 전부터 얼굴 한번 보자, 네 얼굴 보려면 대통령보다 더 힘든 것 같다, 볼 수 있을 때 자주 보자 등등 전화로 문자로 그렇게 연락을 주었는데, 딱 저 한 사람만 바쁘다는 핑계로 못 만났지요. 막상 만나니까 저녁을 쏘는 저는 제쳐놓고 자기들끼리 신나게 대화를 합니다. ㅎㅎ. 그래서 저를 빼고 선배들이 만나면 안 되느냐고 물었더니, 


"야~야, 그런데 니 말고 우리들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없더라. 전부 지 이야기만 한다고 시끄럽기만 하지. 그래도 니는 우리들과 함께 있어도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리엑션도 크게 해주니까 말하는 사람이 괜히 즐겁다 아이가."



세상에! 제가 그들에게 그런 존재였을까요.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리엑션 크게 하는 것은 저의 특징이자 장점이 될 수 있겠지만 사실 알고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천성적으로 잘 웃는 편입니다. 별일 아닌데도 잘 웃으니까 상대방이 재미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ㅎㅎ. 

빈대떡과 파전을 앞에 놓고 막걸리 잔을 몇 잔 나누니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됩니다. 


가져간 양말을 꺼내 한 켤레씩 선물 합니다. 지인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 만나면 가는 길에 난전에서 양말을 열 켤레 정도 묶어서 사서 선물을 합니다. 모두 여성용 양말이기 때문에 집에 가서 형수님 드리라고 강조하지요. 정말 값싼 양말 한 켤레를 받으면서 선배들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가끔은 양말 선물을 자주 하는 저를 보고


"혹시 집에서 양말 장사 하는 거 아이가. 우쨌든 이리 주이 고맙다. 집사람한테 꼭 전해주께."


그러면 제가 한 마디 농담을 건넵니다. 


"오늘 밤 다른 거는 몰라도 양말 이 거는 잊아뿌만 곤란해요. 알았지요. "


모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품속으로 양말을 넣습니다. 집에 가서 두 분이서 따뜻한 대화를 많이 나누었으면 하고 빌어 봅니다. 하기야 예전 아주 오래 전에 이 선배들하고 소속된 남자들만의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데 선배 한 분이 비싼 아이스크림과 빵을 사서 저에게 주면서


"집에 가져 가서 제수씨께 전해 줘. 우리가 밤늦게까지 잡아 놓고 미안해서."


술 마시는 거 좋아하는 제가 그분들과 밤늦게까지 함께 했는데, 그분들의 잘못이 결코 아닌데도 그렇게 챙겨주어 참으로 고마웠던 기억이 있었지요. 그후로 우리 몇이서 번개 모임을 꽤 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현직에 오래 남아 있어서 바쁜 일이 많아 자주 만나지는 못 했습니다. 


2차에선 어느 선배님 단골집이라고 장어구이를 상추에 싸먹는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흔히 여자들이 수다를 많이 떠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이 든 남자들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행히도 이 선배님들은 형수님들에 관한 불평 불만은 거의 털어놓지 않더군요. 실제로 여행을 갈 때도 반드시 부부가 함께 간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선배님께서 


"야~야, 내가 이렇게 지내보니 몸만 안 아프다 카면 나이가 들어도 사는 기 괜찮은 것 같아. 아이들 다 성인이 되고 집사람하고 딱 둘이 집에 남았지. 2박이나 3박으로 차에 먹을 거 가득 싣고 무작정 떠나니 그것이 그렇게 행복하더라. 부부가 함께 어딜 가는데 시골 농촌 정자에 비오는 날 내가 라면을 끓여 집사람을 주는 순간 집사람이 진짜 좋아하더라. 꼭 비싼 밥만 좋은 기 아니더라. 그라고 둘이서 시골 냇가나 강변을 걸어가니 그것도 행복이더라."


그 선배는 자녀가 1남 2녀인데, 딸 하나는 항공회사 승무원 또 하나는 우체국 공무원 아들은 실용음악을 하여 밴드 공연을 다니며 인생 행복을 만끽하고 산다네요. 이 선배님은 한 6년 정도 집에서 지내다가 최근 재취업하여 감리회사에 다시 근무하게 되어 7월부터 월급 받게 되었답니다. 그때는 자기가 반드시 저녁을 다 사겠다고 약속했지요. 


그 선배님 말씀처럼 나이가 들어도 몸만 아프지 않다고 노후도 즐길 만한 것 같습니다. 하기야 어디 노후만 그런가요. 우리네 인생은 노소를 막론하고 몸이 아프지 않다면 삶의 기회는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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