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이 섬긴 첫 번째 군주 제장공이 용력을 자랑했다는데, 제장공의 성격은 시호에서도 추측해 볼 수 있다.『일주서(逸周書)』「시법해(諡法解)」에 군주 사후에 시호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나온다. 제장공의 장(莊)을 시호로 선정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여기에선 대표적인 세 가지만 제시한다. ‘군대를 자주 일으키는 것, 자주 정벌하는 것, 무(武)를 높이 받들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는 것’ 등이다. 군주 사후에 그의 생전 행적을 평가하여 위 세 가지에 해당하는 인물에게 시호로 장(莊)을 사용한다. 따라서 제장공의 인생 역정이 상세하게 제시되지 않아 우리가 잘 몰라도 그의 사후에 결정된 시호를 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제장공의 통치 상황을 살펴 보자.
제장공이 용력을 중시하면서 정작 의를 행하지 않자, 측근 무리들이 나라 안을 마구 휘젓고 다니는 풍조가 생기게 된다. 군주가 의나 예를 소홀히 하고 용맹을 자랑하니 귀족이나 종친들이 훌륭한 인재를 천거하지 않았고, 나아가 신하들도 복지부동하며 책임질 일은 아예 하지 않으려 했다. 군주가 용력을 앞세워 정치를 전횡하니, 측근 세력들 또한 군주의 권력을 믿고 횡행하게 되어 당시 조정의 신료들이 두려움에 떨며 말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장공이 득의양양하여 재상 안영에게 용력으로 세상에 우뚝 섰던 자의 사례를 물었다. 재상 안영에게 용력만으로 세상을 지배한 자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액면 그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강력한 용력이 있으니 이쯤 되면 세상에 우뚝 설 만하지 않겠느냐는 강력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힘센 자가 천하를 다스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군주의 자신만만한 언급에 대해 신하가 간언하다가, 군주의 심기를 건드려 자칫하면 목숨마저 구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에 안영이 제장공에 직간하게 된다. 진정한 용기는 죽음까지 가볍게 여기면서 예를 행하는 것이고, 그 실행 과정에서 어떤 강자도 피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힘[力]이다. 따라서 용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예와 의를 행한다는 뜻이 된다. 하나라를 건국한 탕 임금과 주 나라의 무왕은 비록 군주를 시해하는 무력을 썼지만 그 누구도 두 임금에게 반역이란 악명을 덧씌우지 않았고, 다른 나라를 정벌하여 병탄해도 그들을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두 임금 모두 인의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의에 바탕한 무력 행사였기 때문에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공께서 용력을 떨치면서 정작 인의를 행하지 않으려 하니 이 나라가 어찌될 것이며, 측근들의 횡포 또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조정의 대소 신료들이나 종친들이 자신의 몸을 사리고 신하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니 이렇게 훌륭한 성왕의 치세는 따르지 않고 망국을 초래했던 군주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하고도 나라를 유지한 자는 결코 없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지적했다. 안영이 보기에 군주 제장공의 용력 과시는 인의(仁義)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힘자랑에 지나지 않았다.
용력을 자랑하는 군주 앞에 이렇게 강력하게 간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당장이라도 제장공이 군사를 시켜 안영을 체포하여 죽이라고 명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안자춘추』에선 안영의 이 간언에 대해 제장공이 어떻게 했다는 기록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용력만 믿고 으스대는 군주 앞에서 문제점을 조목 조목 지적하고 있는 것이 대담하다. 인의에 바탕하지 않고 용력만 믿고 국정을 수행하면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다. 군주가 용력만 믿고 있고, 그 측근들이 그러한 군주를 배경삼아 국정을 농단하면, 조정의 대소 신료들이 몸을 사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안영의 눈에는 용력만 믿고 설치는 군주 제장공에게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고 이렇게 직언을 쏟아내는 안영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안영은 재상으로서 3대에 걸친 군주를 섬기면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충정 가득한 심정으로 간언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그런데 세 군주 모두 안영의 간언을 수용하면서 제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끌었다. 역사적으로 안영이 보좌한 세 군주는 역량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 군주 모두 무작정 평범했다고 폄하할 수 없다. 아무리 안영이 뛰어나다고 해도 세 군주가 안영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제나라를 천하의 강국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안영의 탁월한 역량 덕에 제나라가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안영은 선군(先君) 제환공을 패자로 만들었던 명 재상 관중에 이어 제나라를 다시 한번 천하의 강국으로 끌어올린다. 앞에서 언급한 제장공에 대한 간언을 보아도 안영이 결코 군주의 눈치만 보는 인물이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고 간언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군주 세 사람을 보좌하면서 국정을 장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랴!
아버지 그리고 지게 작대기
내 어린 시절 아버지 살아 생전 대들었다가 지게 작대기로 무지막지하게 맞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아버지께 대든 적이 그때 외에도 몇 번 있었지만 그 일만은 지금도 잊혀지 않는다. 들판에서 어머니와 하루 종일 일하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양복 차림에 구두를 신은 채 들에 오셨다. 시골 이장을 오래 하셨기 때문에 아마도 면사무소까지 볼일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들에 오셨을 터였다. 나는 늘상 들일을 하시면서 온몸이 햇빛에 탄 어머니가 안타깝게 보여 대구에서 공부하던 고교나 대학 시절에도 주말엔 집안 농삿일을 도왔다.
그날도 하루 종일 들일을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집에 들어서는데 아버지가 구두에 걸레질을 하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가 삶은 빨래를 하여 곱게 접어 놓은 수건으로 당신의 구두 광을 내신다고 열심히 닦고 계셨다. 어머니와 내가 집으로 들어서는데 아는 척도 아니하고 그냥 구두만 닦고 계셨으니. 당시 형도 다른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내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당신의 구두에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고 욱하는 마음에 아버지께 대들었다.
“아버지, 남자 맞습니꺼?”
저녁에 집에 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 마디 한다는 것이 아버지를 극단적으로 자극했을 것이다.
“니 지금 뭐라 캤노? 다시 한번 말해 봐라.”
“남자 맞습니까 하고 물었심더 와예. 아버지로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할 수 있습니꺼? 엄마와 히야는 하루 종일 들일한다고 온통 시커머이 해가꼬 쌩고생하는데 가장이 되가꼬 들에 와~가 휭 둘러보고 수고한다는 말도 한 마디 안 하고 수건으로 구두 딲고 있으니 카는 거 아입니꺼?”
“이노무 새끼, 저거 공부 시켜봐야 아무 짝에도 몬 씬다. 저리 내한테 빠락빠락 달 드는 새끼 키워봐야 천하에 씰데 없다. 이노무 새끼 내가 버릇을 고쳐 놀끼다. 이노무 새끼”
아버지는 대번에 격노하여 마당에서 끝 모양이 V자형인 지게 작대기를 들고 와서 나의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작대기가 구불구불하여 잘못 맞으면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 있는데, 작대기에 맞으면서도 아픈 것도 못 느끼고 아버지께 박박 기어들었다. 아버지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꼭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적절한 행위였냐고. 나라면 절대 그리 할 수 없노라면서 아버지 작대기에 맞으면서도 버티고 섰다.
아무리 맞아도 대답은 듣겠노라고 버티고 있으니 아버지도 더욱 화가 나서 내 양쪽 어깨에 작대기 세례를 안겼다. 그렇게 몇 대 맞고 있는데, 마침 들일을 하고 들어오던 형이 아버지의 허리를 끌어안고 아버지를 말렸다. 형은 아버지를 안으며 나에게 눈짓으로 빨리 도망가라 하고. 큰아들에게 허리가 잡힌 채로 아버지는 더욱 분노의 호통과 몸짓을 보이면서 지게 작대기를 연신 허공에 휘둘렀다.
“저 노무 새끼가 공부 좀 한다고 배웠다고 애비한테 저리 빡빡 기어들다니. 내가 저 노무 새끼를 왜 낳았는지 몰라”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내가 다시
“누가 저를 낳으라 캤습니까?”
대문이 없던 우리 집 담벼락 너머 나란히 서서 우리집 마당을 내려다보던 동네 아지매들의 안타까운 표정들이 지금도 선하다.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내가 아버지에게 대드는 패륜아적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실망하고, 집안 망했다고 뒤돌아서서 얼마나 수군댔을까. 그 뒤에 어떻게 끝났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가 몇 대 맞다가 한 동네 같이 살던 작은 이모네 집으로 도망갔다. 피난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장남인 형은 나와 달리 아버지의 말에 별로 거역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달랐다. 그렇다고 형이 나를 질타한 적도 거의 없다. 흔한 형제 간의 다툼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대들다 몽둥이 뜸질을 당하겠다 싶으면 곧장 이모네로 달렸다. 한 마을에 살면서도 유난히 인정이 많았던 외삼촌이나 이모는 필시 나를 끌어안고 어디 다친 데 없냐고 확인했을 것이고 그날은 그곳에서 잠을 잤을 것이다. 정확하게 그날의 나의 행적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시엔 어머니를 위한다는 마음에 거세게 항의한 것인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간언하는 방식이 매우 격했고 세련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무작정 지게 작대기를 휘두르지 않았을까. 아버지도 아들의 말에 마음이 찔려 그 말의 내용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기 전에 아들의 격한 말에 흥분하여 앞뒤 재지 않고 그러시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흑기사인양 그렇게 나섰지만, 지금 나의 아들이 그 옛날 나에게 했던 것처럼 직선적으로 따지고 들어오면 난 참을 수 있을까.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간언한다는 것 그 방법에 특별히 좋은 방법이 있을까. 기적이라도 일어나 돌아가신 부모님이 다시 살아 돌아와 그날 그곳에 앉아 계시고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을 때, 좀더 현명한 간언을 올릴 수가 있을까. 아버지도 나도 서로 정신적 상처를 입지 않고 상황을 수습할 훌륭한 간언이 존재할까. 좋게 좋게 말씀드려 아버지를 설득하고, 아버지는 나의 간언이나 건의를 칭찬하시고 난 그 순간 기뻐서 웃을 수 있는 그런 간언 말이다.
아하 그래서 공자는 말했다.
子曰 事父母 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부모를 섬김에 조심해서 간하고, 뜻이 따르지 않는 것을 보면 더욱 공경하여 어기지 말고, 수고로워도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