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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Oct 17. 2022

황천에서 만날 때까지 어머니 다시 보지 않겠다.

굴지견모(掘地见母) 땅을 파서 어머니를 만나다


 


신하의 간언을 잘 받아들여 부모 자식 간의 감정적인 난제를 잘 해결한 사례로 정장공(鄭莊公)의 굴지견모(掘地见母)가 있다. 그 뜻은 ‘땅을 파 어머니를 만나다’인데, 좀더 세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정장공을 둘러싼 사건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군주 정장공의 어머니가 극단적으로 편애하는 바람에 형제간의 불화가 극단적으로 전개된다. 그 와중에 정장공이        

   

 “황천(黃泉)에서 만나기 전에는 어머니를 다시 보지 않겠다. 不及黃泉 無相見也”      

     

라고 극언한다. 그 사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볼까 한다. 천륜(天倫)인 모자(母子) 간에 한 나라 군주가 이러한 극언을 하다니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정장공의 부친은 무공(武公)이고 모친은 무강(武姜)이었다. 무강은 아들 둘을 낳았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은 오생(寤生)이고 둘째를 단(段)이다. 장공이 태어날 때 거꾸로 나와서 난산이었기 때문에 장공의 이름을 역산(逆産)을 의미하는 오생으로 지었다. 무강이 자고 나니 아이가 태어나 있어서 오생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반면 둘째 단은 순조롭게 태어났다. 기골이 장대하고 활도 잘 쏘는데다 인물도 빼어났다. 무강은 큰아들 오생을 고통스럽게 낳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오생을 극도로 미워했다.   

             

반면에 둘째 단을 편애하여 남편 무공에게 오생 대신 단을 후계로 삼을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였다. 둘 모두 자신이 낳은 자식인데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둘 다 같은 자식이고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장자가 후사로 결정되었는데, 굳이 둘째로 바꾸려고 남편에게 계속 요구한다. 하지만 남편 무공은 장자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거절한다. 그쯤에서 그쳤으면 좋으련만.  

              

우리네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에는 어렵게 낳은 아이에게 더 애착이 가고 짠하게 느꼈을 것 같은데 무강은 큰아들 오생보다 둘째 공숙 단을 유난히 편애했다. 어릴 때는 둘째에 대한 애정이 좀더 많았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생이 군주의 자리에 올랐을 때도 무강은 노골적으로 둘째 아들 단을 사주하여 역모까지 저질렀으니 큰 문제가 된다. 군주의 지위는 엄중하여 사사로이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바꾸려하면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겠는가.        

        

동생 공숙 단이 반란을 일으키기 전까지 오생 즉, 장공은 어머니 무강의 무리한 요구도 가급적 다 들어주었다. 심지어 봉읍을 정할 때도 측근들의 강력한 제지도 무릅쓰고 무강의 요구대로 공숙 단에게 경(京)이라는 큰 성을 주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무강이 도성에서 내응하기로 하고 둘째 아들 공숙단과 함께 모의하여 역모를 일으켰지만 결국 장남인 장공의 치밀한 대비책에 역으로 당하고 만다. 그 흐름을 미리 간파한 장공이 은밀하게 대비책을 세워 놓고 있었다. 장공이 정교한 대응으로 동생 공숙 단의 역모를 진압하여 나라의 안정을 가져왔지만, 어머니 무강에 대한 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장공은 자신을 그렇게도 미워하는 친어머니 무강에게 자식된 도리를 다하려고 무강의 무리한 요구도 웬만하면 다 들어주었다. 그런데도 자신을 몰아내고 동생을 제위에 올리기 위해 역모까지 일으킨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장공이 선제적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동생 공숙 단 세력을 공격하여 일망타진하고, 단도 결국 죽게 된다.   

             

장공으로선 어머니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이젠 그것도 물거품이 되었다. 그때까지 꾹꾹 눌러왔던 장공이 화를 터뜨리며 말했다. “황천에서 뵙기 전에는 어머니를 다시 보지 않겠다.” 그리고는 어머니 무강을 영(穎)이라는 변두리 성읍에 유폐시켰다. 역모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였지만, 결국 모자 관계가 이렇게 파탄이 나고 만 것이다.  

              


영고숙이 새를 바치면서 효를 말하다. 정장공 굴지견모



영고숙(潁考叔)               


어머니에 대한 분노의 감정 때문에 장공이 일시적으로 어머니를 유폐하긴 하였지만 마음 속까지 편할 리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황천에 갈 때까지 절대로 만나지 않겠다.’는 맹세를 후회하기 시작한다. 군주로서 강력하게 맹세를 한 터라 그것을 물리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이대로 어머니를 만나지 않는 것도 영 마뜩지 않았다. 한 나라의 군주 이전에 한 어머니의 자식임에랴. 장공이 어머니 무강을 유폐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영읍의 고숙이란 사람이 장공을 찾아와 올빼미를 바친다. 


그 숱한 새 중에서 왜 하필이면 올빼미였을까. 장공이 의아하게 생각하여 물으니 영고숙은,           

“올빼미라는 새이옵니다. 올빼미는 낮에는 태산도 분간 못하나 밤에는 터럭 끝까지도 살핍니다. 사소한 일에는 밝으나 큰일에는 어둡습니다. 올빼미는 어릴 때 어미가 먹여주는 먹이를 먹고 자랍니다. 그렇지만 다 자란 뒤에는 제 어미를 쪼아 먹으므로 매우 불효한 새라고 하옵니다.”        

       

영고숙의 그 말이 장공의 가슴 속을 강하게 찔렀다. 올빼미가 누굴 가리키는지 영고숙이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바로 정장공 자신을 가리키는 것임을 바로 알아챘다. 낮에는 태산도 분간 못하지만 캄캄한 밤에는 터럭 끝이라도 살필 수 있다. 그런데 사소한 일에는 밝지만 큰일에는 어둡다는 올빼미를 영고숙이 왜 굳이 들먹였을까. 동양에서 예로부터 올빼미가 집에 와서 울면 그 집 주인이 죽고 그 집에 재앙이 드는 아주 불길한 흉조로 알려져 왔다. 단순히 흉조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제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이미지가 강한 흉조 중에 흉조가 아닌가. 실제로 올빼미 사진을 보면 공포스럽다.    

           

 『시경(詩經)』에 「치효(鴟鴞)」편이 있다. 치효가 바로 올빼미를 뜻한다.           

올빼미야 올빼미야!                鴟鴞鴟梟
 내 자식을 이미 잡아먹었으니  旣取我子
 내 집은 헐지 말아다오.          無毁我室 
           

여기서 올빼미는 다른 새의 새끼를 잡아먹고 그 집까지 차지해버리는 못된 새로 그려져 있다. 중국 사서 삼경 중의 하나인 시경에 실릴 정도로 올빼미는 흉조의 이미지가 강하다. 단순히 재앙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낳고 길러준 어미까지 잡아먹는다는 끔찍한 새로 인식되어 왔다. 실제로는 올빼미가 흉조라든가 어미까지 잡아먹는다는 것 등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런 오명을 덮어 썼으니 올빼미 입장에서 매우 억울한 일이다. 그리고 괴복(怪鵩) 또는 ‘휴류(鵂鶹)’라고도 한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괴조(怪鳥)라고 부른다. 울음소리를 들으면 재앙이 많이 생기므로 사람들이 이를 미워하여 귀를 막곤 한다는 기록도 있다. 올빼미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경우가 거의 없다. 한 마디로 화조(禍鳥)라는 것이다.  


하긴 조선왕조실록에도 부엉이에 관한 유사한 기록이 나온다. 물론 부엉이와 올빼미는 다르다. 우리에게 부엉이가 흉조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태종 11년 신묘(1411) 2월 16일(정미) 기사에           

부엉이가 창덕궁 인정전에서 우니, 해괴제(解怪祭)를 행하라고 명하였다. 

鵂鶹鳴于昌德宮 仁政殿, 命行解怪祭.      

     

해괴제란 괴변을 막고 괴이한 일을 풀어주는 제사를 가리킨다. 일상적이지 않은 자연 현상은 큰일의 전조(前兆)로 간주되어 백성들을 동요시키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원인을 잘 파악하여 불행을 예방하고 물리치는 것이 중요하였다. 부엉이가 궁전에서 운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길한 징조로 여겼으니 앞에서 언급한 올빼미처럼 조선 사회에서는 부엉이를 불길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엉이와 올빼미는 전혀 다른 새이지만 흡사한 면도 좀 있다. 부엉이의 울음을 물리친다는 수단의 하나로 치러진 해괴제는 재난의 전조를 불식시키는 기양의례(祈禳儀禮)였다. 기양의례는 가뭄과 홍수, 전염병 같은 자연재해와 개인의 질병,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 치르는 주술적이고 비정기적인 국가 의례를 일컫는다. 실록에 해괴제에 관한 기록은 천여 건 이상 실려 있다. 부엉이가 운다고 해서 나라에 재앙이나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 다만 조선 시대 조야를 막론하고 그렇게 인식했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다. 위 내용처럼 조선에서는 부엉이를 괴조로 인식할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매우 강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영고숙의 올빼미 언급은 장공의 현재 처지를 부드럽게 풍자하여 장공이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의도였다. 영고숙의 말이 자신의 현재 상황이나 처지에 딱 부합하니 장공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동생을 사주한 어머니에 대한 분노의 감정에 치우쳐 어머니와 척지고 살아가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극도의 분노에 휩싸여 죽을 때까지 어머니 얼굴을 안 보겠다고 했던 정장공의 극언은 만인의 군주 입장에서도 적절하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간이 흘러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앞의 모든 것들이 부질없음을 실감하는 경우가 많다. 부부 싸움도 그 순간엔 얼마나 절박하고 심각하던가.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면 괜히 미안하고 얼굴 보기 쑥스럽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장공도 어머니에 대한 극도의 분노 때문에 황천 가기 전에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어디 천륜인 모자 관계에서 그것이 지속될 수 있겠는가. 날마다 후회 속에 살았을 것이다. 때마침 찾아온 영고숙이 절묘한 비유로 장공의 마음을 흔들었다. 풍간(諷諫)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때 영고숙이 정장공의 마음을 흔든 것이 또 있다. 장공과 함께 식사하는데 영고숙은 음식을 먹으면서 고기는 먹지 않고 옆에 따로 놓아두는 것이었다. 장공이 그 까닭을 묻자 영고숙이 대답하였다. 어머니가 계신데, 지금까지 이 나라 임금 음식은 맛보지 못하셔서 이 음식을 가져다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고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장공의 심정은 어땠을까. 어쩌면 영공이 장공의 현재 심리를 감안하여 말을 건넨 것이 아닐까. 영고숙의 말을 듣고 장공이 말하였다.  

          

 “그대는 음식을 싸가지고 가서 드릴 어머니가 있지만 과인은 제후이면서 그대와 같지 못하여 한스럽소.”           

그러자 영고숙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냐 물었더니, 장공은 자신이 어머니를 두고 했던 맹세를 말해주고 또 이렇게 한 것을 후회한다고 대답하였다. 어머니 무강과 동생 단에 관한 사건, 그리고 황천에 가기 전에는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영고숙이 특별한 제안을 한다. 동생 단은 이미 죽었지만, 무강은 살아계시니 만약 무강을 봉양하지 않으면 장공이 올빼미와 같게 된다. 그래서 황천(黃泉)이 저승만이 아니고 지하의 샘 또한 황천이다. 따라서 땅을 깊이 파서 샘이 솟으면 방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서 서로 만나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 누가 맹세를 어겼다고 비난하겠느냐고. 장공이 그 말대로 따라 행하니 마침내 정장공과 어머니 무강이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렇게 모자 사이가 옛날과 같이 되었다. 저승의 황천과 황토물이 나오는 지하 황천이 유사한 점을 적절하게 활용한 간언이었다. 어쩌면 단순한 말장난으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영고숙이 직간이 아닌 풍간으로 정장공과 어머니 무강 사이의 극단적인 갈등을 해소한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참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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