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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엽 May 02. 2023

다 환자더라

5월 1일 저녁 모임 있다고 아내가 모임 장소까지 좀 태워달라고 했습니다. 코로나로 몇 년 간 못 만난 사람들과 집 근처에서 만나기도 하였답니다. 막내아들 초등학교 때 학부모 모임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아내를 태우고 가는데 전화가 걸려오고 두 사람이 들뜬 대화를 이어갑니다. 상대방 말은 제대로 안 들리지만 아내의 말을 듣고 추측해 보니 최초 만남 약속 장소가 노동절이라고 휴무라네요. 같은 건물 내에 영업하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변경했다고 하면서 그 건물 앞에 내려 달라고 합니다. 


제 차 뒤에 택시 두 대가 있어서 아내가 조바심을 냅니다. 좁은 길에 남의 눈총을 받지 않기 위해 빨리 내리려 하네요. 하지만 아내의 몸 상태로 빨리 빨리 움직이기가 쉽지 않지요. 


"천천히 천천히 뒤 택시 신경쓰지 말고, 어차피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못 지나간다. 천천히 내려라 욕을 얻어 먹어도 내가 먹으면 되니 알았제. 다리 하나씩 천천히 내리고 정 불편하면 내가 내려줄까. 괜찮겠나."


다행히도 뒤 택시 기사들이 조용히 기다려줍니다. 아내가 내리는 것을 보고 제가

"당신 모임 끝날 때까지 집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해래이. 당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는데 너무 좋아하다가 지금 몸 상태 잊아뿔지 모른다."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건물 안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뒤 택시를 향해 죄송하다는 신호를 보낸 뒤에 곧장 집으로 돌아옵니다. 도중에 졸업생이 운영하는 마트에 들어섰습니다. 아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바나나와 참외를 샀습니다. 집에 있을 때도 문득 문득 바나나와 참외를 찾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아내 모임 시간부터 집에서 대기하면 행여 전화가 올까 기다렸지요. 


책도 읽고 전자책 원고 수정 작업도 하면서 기다리는데 3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몇 시간이고 걱정하지 않지만 지금 아내 몸 상태를 잘 아는 저로선 걱정이 될 수밖에 없지요. 전화라도 해볼까 하려다가 모임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걸지 않았습니다. 아무 일이 없다면 다행이지요. 


큰아들과 딸 아이는 저에게 와서 

"어머니 괜찮으시겠어요? 한번쯤 전화해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라고 걱정합니다. 아이들에게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제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밤 9시쯤 되어 현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아이들과 제가 동시에 현관을 바라봅니다. 환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아내 얼굴이 발갛습니다. 코로나 2차 접종 후유증입니다. 모임 시간 내내 찬물로 적신 수건으로 목과 머리 부분을 마사지했다면서 발간 얼굴을 저에게 쏙 내밉니다. 저녁 식사로 나온 요리도 입에 맞지 않았답니다. 아내가 워낙 좋아하는 사람들과 오랜만에 만난 편한 자리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고 합니다. 그건 극히 좋은 일이지요. 일요일엔 처음으로 저와 손잡고 산행을 하였고 이번엔 처음으로 사람들을 만났으니 다행이지요. 


"00엄마, 00엄마 .. 오랜만에 만나 정말 반갑고 좋았는데, 전부 나를 걱정해주대. 그리고 마치고 나오는데 00집 딸래미가 여~까지 태워주더라. 당신 집에서 걱정 마이 했제.  당신 신경쓸 것 같아서 그냥 타고 왔다."


그리고 모임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을 죽 들려 줍니다. 즐거웠지만 목 쪽에 열이 올라와서 애를 먹었다고 실토합니다. 00엄마에게 부탁하여 찬물로 적신 물수건으로 연신 마사지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네요. 그래도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이젠 그렇게 외출도 산행도 자꾸 시도해보겠다고 합니다. 제 입장에선 정말 고맙지요.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종종 아내에게 했던 말이 있습니다. 퇴직하면 외국에 있는 한국학교에서 강의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도 따놓고, TOEIC공부도 짬짬이 했습니다. 매일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LC문장도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실제로 10여 년 간 교류해온 일본 오이타 현 분고오노 시 미에마치 거주 코지나 오사무 님은 자신의 시골 마을에 빈 농가와 전답을 거의 공짜로 판매할 테니 한번 고민해 보라는 제의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우리나라 농촌도 사람이 없어 걱정인데, 굳이 일본 산골까지 가서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망설였지요. 그곳에서 거주하며 한국어 수업도 할 수 있도록 제안도 받았지요. KOICA 한국어 봉사도 생각하고 그랬는데, 결정적으로 아내가 2년 전에 코로나 2차 후유증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을 아예 접었습니다. 집안에 환자가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내가 중환자인데 외국으로 나가 생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지요. 아내가 조금 미안해하기에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했었습니다.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스쳐 갑니다. 제가 집에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부터 아내의 불안심리가 얼마나 커졌을까 등등 말입니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를 세워놓고 한참이나 말을 이어가던 아내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합니다. 


"있잖아, 오늘 만난 사람들 다 환자더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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