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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아이의 순수를 되찾다

시균아 안녕

by 가매기삼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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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에게 노년의 답이 있다.

아이에게 노년의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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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명제 한 바 있다

5년 전경

근래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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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이면 장난을 알고

중학생이면 위계를 알고

고교생이면 생계를 알고

성인이면 처세를 알고

노인이면 세상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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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순수를 잃는 과정이다

생존경쟁 서바이벌에서 순수는 방해물일 뿐

그따위는 개나 줘버려

인생 한 바퀴 60쯤 되면 순수 완전 실종

심지어 그게 옳다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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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쯤 아이의 순수를 되찾고 싶었다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사념한다. 글을 쓴다. 도움이 조금 된다.

하지만 너무나 멀다. 너무 멀리 와서다

순수는 잠깐이었고 오염은 반백년 찌든 때

어떡해야 순수를 되찾지?


문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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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귀한 시대

아이는 우리 모두의 희망

우리 모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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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즈음 7년여 전

알바하면서, 부업으로 매장하면서 외치길 수 천 번

아이 데려온 부모들에게

진심입니다 덧붙여서


다른 문구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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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가 최고란다

나도 엄마 (아빠)가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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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희망과 미래와 섞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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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가려운데 어깨 긁기

어떡하지? 어떡해야 순수를 되찾지?

아니, 닮기라도

너무 어렵다

찌든 때 아니라 오염 용접 된 거다


2023년 5월

무인 매장 오픈 4개월차

초등학생 고객이 엄청 많다

아, 이 아이들과 친구해 보자

어떻게?

시균아 안녕 그리고 서로 말 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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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여

오오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나는 아이들과 진짜 친구가 되었다

수 백 명


이제 이름과 반말은 기본

시균아, 이거 가격 좀 내리면 안 될까?

시균아, 내가 좋아하는 거 이거 좀 들여 놔

시균아, 오늘 피구대회서 우리팀이 이겼다!

시균아 나 밥 안 먹었어 배고파

시균아, 나 오늘 남친하고 헤어졌어


전화도 한다

시균아, 언제 와?

시균아, 방금 수상한 사람 봤어


문자도 보낸다

시균아, 우리동네 직업 알아보기 과제가 있어. 질문할테니까 답해줄래

시균아, 봄이 언제 와?


심지어 짜증

속으로. 니 일을 왜 내게 짜증이야? 옳지. 나를 진정 친구로 여기는군

이런 건 친구로서 들어주면 된다

과연 그렇다


매장 포스트잇 붙임판

시균아, 시균아, 시균아.....


소행사

생일 축하, 운동회 우승 축하...

좋은 일, 칭찬할 일 있으면 작지만 축하 선물

같이 온 친구들과 함께 생일 축가

어떤 아이는 부끄러워 달아나기도

대개는 좋아라고


엄마나 아빠가 미안해 하면

뭐 어때. 내 친구 시균이야

소개도 해준다

이젠 다들 그러려니

부모들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는다

고마워한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걸 아는 거


출퇴근길이 등하교길과 동일

등교, 하교 시간이면 예서제서 시균아 안녕

엊그제는 야외 학습인지 길에서 조우

30여 명 남자 아이들 중 반 가량이 시균아 안녕, 시균아 어디 가

인솔 젊은 남 선생님 날 보면서 이게 뭔 시츄에이션이냐는 표정


조기 위암 시술 받느라 4일 입원

아내가 대신 매장 청결, 정돈

시균아, 그 여자 누구야?

시균아, 무슨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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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친구 하니 나도 마침내 아이가 되었다

그만큼 순수를 되찾은 거

은퇴 후 내가 가장 잘 한 거

아이들과 친구하기다

아니, 생애 가장 잘한 결정 셋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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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아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거야말로 순수 순도 98%인데

아가와 친구할 수도 없고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이거도 방법이 있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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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전 절친 둘과 함께 술자리

이 이야기 하니까 한 친구

세상에 이런 일이 테레비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다른 친구

그래. 세상에 이런 일이 되고도 남아

그러게. 기자들은 이런 거 취재 안 하고 뭐 하냐. 함께 테레비 나오면 아이들이 엄청 좋아할 걸. 그리고 나 테레비 한 번 나오는 게 꿈이였어. 잘하면 아이 친구들 덕에 소원 성취하게 생겼네.ㅎㅎㅎ


브런치북 '시균아 안녕'에 스토리 써두었소

누가 이거 제보 좀 해주소.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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