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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Aug 04. 2024

(우화 2) 기적의 멧돼지

172화. 대한민국 출산혁명

덫에 걸렸어요. 쇠 덫. 상어 입을 쏙 빼닮았어요. 아가리 양쪽으로 예리한 톱니 가지런. 쇠 사슬 줄에 달렸고 끝을 땅에 깊이 박아 고정했어요. 숲속에 100미터 달리기 시합. 8개 주로. 각각 110미터 지점에 덫이 있었죠. 잎 무성한 나뭇가지, 그 위로 풀을 덮어 위장했어요. 앞서서 결승선을 통과한 동물들이 먼저 덫을 밟았어요. 속도를 늦추고 걸었다면 발견하고 피하거나 치웠을 거예요. 그러지 않았고 덜컥 덜컥 덜컥.


곰은 좌로 뱅글뱅글 돌았어요. 여우는 우로, 멧돼지는 직진 습성으로 앞으로 달렸어요. 철커덩 철커덩. 쇠줄 팽팽 당길 뿐 덫을 빠져나가진 못 했죠. 커녕 움직이니까 덫이 살을 파고 들었어요. 피가 흘렀어요. 이로 줄을 끊으려 해도, 박힌 줄을 땅에서 빼내려 해도 도무지 통하지 않았어요. 전부 쇠라서 이빨만 부서졌어요. 그럴수록 덫은 더 죄였어요. 좌로, 우로 돌던 곰, 여우는 멈추어 서서 덫에 걸린 발목에 상처를 혀로 핥았어요. 숨 고르며 어떻게 하나 고민했어요. 멧돼지는 앞으로 달렸어요. 곰과 여우를 앞지를 찬스였거든요. 태어나 처음 기회가 왔거든요. 덫 따위야 빠지는 거, 뽑히는 거. 그 덫이 얼마나 무서운 덫인지 몰랐어요. 피 철철 흘렀어요. 그래도 머리 길게 내밀어 앞으로 직진하려고 발버둥. 덜컥. 이번엔 목이 앞쪽에 놓인 덫에 걸렸어요. 숨통을 조였어요. 그래도 가만있지 못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니 목에서도 피 철철. 이대로면 과다 출혈로 곧 혼절, 쇼크사. 약은 곰과 여우는 멧돼지가 어찌 지켜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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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미터 완주 했으니 일단 전속력 달리기를 멈추어야 했어요. 속도를 늦추고 걸으면서 숨을 고르며 앞길을 살펴야 했어요. 덫에 걸렸으면 움직이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탈출 방법을 찾아야 해요. 덫이라는 게 움직일수록 상처가 깊어지니까요. 그렇다고 오래면 피가 계속 흐르면서 굶어 죽는 건 매한가지. 빨리 덫을 빠져나가야만 살 수 있어요. 숲에서 덫이라는 건 처음이었어요. 어느 동물도 본 적 없어요. 먼 조상 때 그런 있었다고 들었지만 전설일 뿐. 이런 무서운 일이 있을 줄은 꿈에몰랐어요. 숲의 끝에 100미터를 지나면 더 커다란 숲이 있을 거 같았어요. 맛난 거 먹고 더 편하게 살 거 같았어요. 출발이 한참 가장 늦은 멧돼지는 앞선 동물보다 더 열심히 죽을 힘을 다해 달렸어요. 직진 습성에 맞았고 곰, 여우보다 늦었지만 결승선을 통과했어요.


뒤로 나머지 5개 주로에 선 동물들. 덩치 큰 코끼리는 중간에서 덫을 밟았어요. 결승선과 달리 도중에 덫은 숨겨지지 않았어요. 뻔히 다 보였지만 코끼리는 덩치가 커서 피할 수 없었어요. 걸음이 늦어 덫을 치울 시간조차 없었어요. 코끼리는 늘 배가 많이 고팠어요. 백 미터만 뛰면 배불리 먹을 수 있으리라. 작정하고 느린 걸음 재촉하다가 덫에 걸린 거였어요. 힘이 장사라서 덫이 땅에서 뽑혔어요. 덫에 물린 다리에서 피가 흘렀지만 쇠줄과 덫을 끌고 뒤뚱뒤뚱 잰 걸음을 멈추지 않았어요. 나머지 주로 넷에 동물 넷은 앞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 내 길에는 덫이 없나 살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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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 올림픽이었어요. 백 미터 달리기. 최고 인기죠. 참여 않은 동물들 모두가 경기를 보고 있었어요. 특히 맨앞에 멧돼지. 기적을 일으켰어요. 새끼 때는 여우가 데리고 논 장난감이었거든요. 꼬맹이 때 곰이 먼저  대 선빵 날렸어요. 생각이 다르다고요. 대차게 싸웠어요. 어린 멧돼지 발톱에 온몸 찢기고 척추  부러지고 동맥 혈관 터지고. 동물들은 죽을 거라 믿었어요. 다시는 걷지도 못 할 거라 했어요. 웬걸, 코로 땅 파서 약초 뿌리 캐 먹었어요. 큰 동물은 풀 먹는 동물을 잡아먹지 식물을 먹지 않아요. 초식동물은 풀을 뜯지 흙 묻어 더러운 뿌리를 캐먹지 않아요. 더욱이 약초는 독초인 것을. 더욱이 발 아니고 코로 단단한 땅을 파다니. 숲에 동물들이 보기에 기괴했어요. 그뿐 아니었어요. 독이 있어 다들 무서워하는 뱀을 잡아 먹었어요. 코를 내밀어요. 뱀이 코를 감도록 두어요. 쓱쓱 땅에 세게 문대요. 우두둑 동강난 뱀을 우적우적 씹어 먹어요. 숲의 괴물이었어요. 남들은 안 먹는 거, 피하는 거를 골라서 먹었어요. 그 덕에 곰과 혈투에서 입은 부상이 회복 되었어요.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고 덩치가 숲속의 왕 호랑이만큼 컸어요. 왕은 올림픽을 주관했고 백 미터 경기의 심판을 보았지요. 마침내 멧돼지는 올림픽 결승에 나섰제일 나중에 출발했어. 직진 습성 하나로 다 제끼고 맨 앞에 섰어요.


동물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랐어요. 아니, 멧돼지가 저런 동물이었어? 어릴적 여우가 가지 놀던 걸 떠올리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기적을 일구어 낸 거였어요. 경기장에 서지도 못 한 약한 동물들은 다들 엄청 부러워 했어요. 그리고 따라했어요. 그래, 우리가 그걸 몰랐던 거야. 땅 파서 약초, 뱀, 닥치는 대로 먹고 체력을 키우는 거야. 그리고 직진. 그럼 우리도 언젠가 멧돼지처럼 선수가 될 수 있어. 주로에서 먼저 출발한 동물들은 더욱 놀랐어요. 아니, 쟤가 미쳤나? 어떻게 우리를 쫓아온 거? 게다가 추월이라니? 노리개였구만. 맞기만 하던 찌질이였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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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니 확연히 다른 게 있었어요. 온힘 몰빵 직진. 오직 앞만 보고 달리기. 한 눈 안 팔고 지가 잘하는 달리기에만 몰두. 그래, 저건 우리도 배워야 해. 우리가 나태했어. 돌이켜 보니 녀석은 노래도 참 잘했어. 숲이 녀석 따라 떼창으로 떠들석 했어.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다 따라했어. 꽤액 꽥 꽤애액 꽥. 새로운 가락에 흥이 절로 났어. 녀석들 꺾고 뒤집고 흔드는 날랜 춤이 신나서 숲에 춤판이 벌어졌어. 꽤액 꽤애액이 무슨 뜻인가 궁금해서 녀석 말 배우느라 숲에 예서제서 학원도 생겼어.


그런 신비의 멧돼지가 맨앞에서 속절없이 죽어가다니. 숲속 동물들 모두가 충격 받을 수밖에. 뭔가 잘못 되었구나. 직진이 답 아니구나. 잘 뛰고 잘 놀면 뭐 해. 올림픽 백 미터 선수 되면 뭐 해. 기적이면 뭐 해. 결국 피 철철 흘리고 죽는 것을. 잘 살기 위해 죽어라고 뛰는 거지 죽으려고 죽어라고 뛰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오랜 세월 들입다 뛰기만 하더니 덫에 걸리니 꼼짝 못 하고 금새 죽어가잖아. 봐 봐.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앞으로만 향하고 있잖아. 피 쏟는데도 계속 덫을 바짝 당기고 있잖아. 그럼 상어 이빨이 뼈까지 파고 들고 동맥 끊을 거고, 그럼 쇼크로 죽을 게 뻔한데 쟤는 왜 저러고만 있을까. 숲에 모든 동물이 다 아는 걸 정작 멧돼지만 모르고 있었습니다.




ㅡㅡㅡ




멧돼지가 살려면 일단 직진 멈추어야 합니다. 지혈부터해야 합니다. 그리고 덫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미 피 너무 흘려서 쇼크사 직전. 바로 뒤에서 덫 탈출하려고 별짓 다 했지만 덫은 요지부동. 헛짓거리 하느라 허비할 시간 없습니다. 목과 다리를 문 덫을 단박에 벗어던져야 합니다. 그러고나서 다시 뛰든지 걷든지 하면 됩니다. 좀 쉬어도 괜찮습니다. 이미 선두니까요. 곰, 여우, 코끼리 덫에 걸려 옴쭉달싹 못 하고 있습니다. 어느 동물이든 선수 되면 110미터에 덫을 통과해야 합니다. 멧돼지는 여유 있게 체력 길러서 다시 뛰어도 하나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걷기만 해도 넉넉합니다.


여기 늙은 멧돼지 한 마리. 생애 덫에 여러번 걸렸습니다. 험 삼아 일부러 걸려 보기도 했지요. 요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덫을 직접 놓고 실험 중입니다. 덫의 원리를 훤히 꿰고 있습니다. 탈출법 당연히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올림픽 열기가 뜨겁습니다. 금메달 아니어도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https://brunch.co.kr/@sknohs/1542




♤ 출산혁명 대한민국



1권~5권ㅡ혁명의 이론

6권ㅡ혁명의 실행


(공약), (핵심), (중요)부터 보세요.

의문은 제목 찾아서 확인.




덫 탈출법


https://brunch.co.kr/@sknohs/1299


https://brunch.co.kr/@sknohs/1531



● 출산혁명 대한민국 1권~6권


https://brunch.co.kr/@sknohs/1551



● 대통의 자격


https://brunch.co.kr/@sknohs/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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