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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 삼거리에서 Aug 10. 2020

장마철엔 호박부치기

웅답하라 1968 - 먹거리 편

장맛비가 내리면 웬만하면 호박 부치기다. 종일 내리니 밖에 나가봐야 동네 어른은 일거리가 마땅찮고, 애는 놀 게 없다.


애호박.


엄마는 집 앞 신작로 옆 비탈진 둔덕 아래에 호미로 흙을 파내고 호박씨를 몇 개씩 일렬로 듬성듬성 묻는다.여름이면 호박꽃이 핀다. 꽃 중 젤 크나 젤 못났다. 거인족 여자처럼. 꽃이 지면  콩알같이 조막만하고 동그란 호박이 열린다. 장마철되면 애호박으로 성큼 자란다. 어떤 건 길쭘 미끈하고 어떤 건 둥글 넙적. 몇 개 따면 며칠이면 또 몇 개가 . 여름 내내 호박이 닭 알 낳  열린다.


장마가 지나면, 애호박때 따지 않으면 껍질이 두터워지고 씨가 굵어져 먹기에 적당하지 않다. 엄마의 눈길을 피해 살아남은 호박은 가을이면 늙은 호박이 되고 서리 내릴 즈음이면 겉과 안이 다 단단해진다. 호박범벅으로 먹거나 이듬해 심을 요량으로 속을 숟가락으로 긁어내 씨만 발라  말려서 보관해 둔다. 몰래 호박씨 까먹기도.


장마철이면 엄마는 뽐뿌 올린 물에 밀가루를 조금씩 넣으면서 휘저어서 물에 녹인다. 질척 걸죽. 간은 왕소금으로 맞춘다. 애호박은 부엌칼로 얇게 토막내고 토막들을 가지런히 모아 옆으로 비스듬히 누인다. 무우채 같이 다시 칼로 잘게 썬다. 그리고 그걸 밀가루 반죽에 넉넉히 넣고 섞는다. 식구가 여덟이라 양을 늘리는 거.


아궁이


아부지가 황토흙을 앞산서 퍼온다. 엄마는 벽돌을 둥글게 쌓고 사이 사이를 물에 갠 황토로 채우고 벽돌 위를 황토로 둥그렇게 쌓아 바른다. 앞은 불 넣는 구멍, 뒤는 연기 빠지는 구멍으로 남긴다. 후라이팬 하나 얹을 정도로 낮고 아담한 아궁이 뚝딱 완성. 두어 해 쓰면 황토가 터져 팬이 기울고 바람이 숭숭 뚫리니 다시 만든다.


불피우기.


엄마는 아궁이에 마른 나무가지나 나무 판때기 쪼갠 걸 얼기설기 쌓는다. 잔챙이가 아래, 위로 갈수록 굵어진다.


성냥곽에서 성냥을 하나 꺼낸다. 성냥곽은 사각 또는 팔각형에 공기밥 그릇 크기. 옆면은 붉은 기가 도는 한 밤색. 위를 뜯으면 몇 쯤 되는 성냥이 촘촘하게 꽉 차 있다. 성냥은 사각 나무로 어른 새끼손가락 길이에 쇠젓가락 끝부분 정도 굵기. 끝은 곽 옆면과 비슷한 색의 유황이 덩어리로 물방울 모냥 들러붙어 있다.   


왼손으로 성냥곽의 옆면을 몸쪽으로 비스듬이 향하게 하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성냥의 몸통 즉 나무를 잡는다. 머리 즉 유황 덩어리를 곽 옆 밤색 종이에 대고 살짝 누르듯이 몸 바깥 쪽으로 빠르게 죽 긋는다. 유황에 불이 붙고 순식간에 유황 덩어리 전체로 화라락 번진다. 불은 몸통의 목에서부터 아래로 타들어 간다. 


성냥불을 성냥 두어 배 길이, 대여섯 배 굵기로 쪼개둔 관솔로 옮긴다. 성냥과 달리 관솔은 송진을 듬뿍 머금어 불이 오래가고 기름 성분이라 검은 그을음이 꼬리를 친다. 관솔 불을 아궁이 입구 불구멍에 넣어두면 미리 쌓아둔 나뭇가지에 불이 붙는다. 후라이팬을 아궁이 위에 얹고 달군다.




----- ㅇ ----




돼지기름


아부지가 푸줏간에서 값싼 돼지비개를 덩어리로 사온다. 살코기는 비싸서 엄두도  다. 큰누나는 좁은 부엌에서 비개덩어리를 깍두기 크기로 뭉텅뭉텅 썬다. 돼지비개 조각을 달군 후라이팬에 얹고 연탄불 위에 놓으면 지글지글 녹으면서 기름이 된다.


기름은 뜨겁고 물처럼 팬에 고인다. 다 녹으면 비개 껍데기가 꺼멓게 튀겨져 콩알만해져서 기름 위에 동동 떠다닌다. 큰누나는 그걸 건져내 옆에서 구경하며 기다리던 내게 먹으라고 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씹히면서 고소한 게 맛나다. 기름은 커다란 미제 깡통에  붓고 부엌 구석에 두면 빠다처럼 굳는다. 색도 빠다 빛.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금방 한 뜨거운 밥에다가  돼기기름을 두어 숟가락 크게 떼어내 얹고 왜간장을 넣고 썩썩 비빈다. 밥은 기름 범벅으로 번질번질하고 간장으로 검붉은 색을 띠어 먹음직스럽다. 숟가락에 듬뿍 담아 입에 쑤셔 넣으면 고소하고 짭조름하며 밥알마다 기름이 묻었으니 목구멍으로 미끌미끌 잘 넘어간다 .


부치기


엄마가 돼지기름을  숟가락 떠서 달구어진 팬에 올리면 지글지글 눈 녹듯이 녹는다.

호박 밀가루 반죽을 한 국자 담뿍 떠서 달구어진 팬 바닥에 골고루 붓는다.

국자 아래 쪽 둥근 부분으로 누르고 밀면서 팬 바닥이 가득차게 넓게 얇게 펴준다.


지글지글.


질은 밀가루 반죽이 굳으면서 아래가 익으면 호박도 반쯤 익는다.

뒤집개를 밑으로 밀어 넣고 떠서 원판을 뒤집는다.

거의 다 익으면 다시 뒤집는다.

다 익으면 또 한번 뒤집는다.

마지막엔 폼 나게 한 번 더 뒤집어 팬 바닥을 탕 치며 내려놓는다.

부치기가 다 된 .


부치기를 후라이팬에서 양은 냄비 뚜껑을 거꾸로 평평한 면이나 무쇠 솥뚜껑 위에 얹는다. 기다리던 식구들이 제각기 젓가락으로 찢어서 엄마가 담근 조선 간장에 찍어 먹는다. 맛있다. 왜간장에 먹으면 단맛까지 돌으니 더 맛나다.


이렇게 한 장, 두 장,  장.....이삼십 


옹기종기 둘러앉아 기다리던 아부지와 6형제. 한 장 나올 때마다 먹어 치우니 쌓을 새는 없다. 뜨끈한 부치기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비로 쌀쌀한 기운을 떨쳐낸다. 끼니 대신이다. 일곱 식구 허기가 가셔 하나 둘 젓가락을 놓기 시작할 때쯤 그제서야 엄마 먹을 차례.


호박 제철예서제서 주렁주렁. 호박을 동그랗게 토막낸 채로 밀가루 반죽을 둘러서 부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잘게 썰어서 한다. 기다리는 식구는 많은데 채와 달리 토막은 익는데 시간이 걸려서.


부치기나 된장찌개 해 먹다 남는 애호박은 아침 일찍 시장 상인에게 내다 판다. 밀가루든 쌀이든 보리든 사는 데 보태야 하니까.


엄마는 아궁이에 타고 남은 재를 따로 모았다. 엄마는 한여름에도 변소를 안 가고 오강에다 오줌을 모았다. 그걸 재에 뿌려 묵혔다가 호박 줄기가 나온 땅 주변에 퇴비로 주었다.


해 쨍쨍 뜨고 무더운 날엔 연한 호박 잎을 골라 따다 밥물에 쪄서 쌈으로 싸먹는다.


해마다 엄마는 신작로에 붙은 작은 비탈에 호박을 넉넉히 심었다.


1968년 꼬맹이때. 그땐 그랬다.





세대 통역




뽐뿌 = 펌프.  pump.  수도 이전 첫 기계ㆍ수동 채수 시설. 그전은 우물, 샘물을 길어다 먹었다. 전문 장비 업자를 고용해 쇠파이프를 쾅쾅 내리쳐  지하수까지 박는다. 자상에서 파이프에 펌프 장치  연결. 마중물 붓고 지렛대식 손잡이를 상하로 움직이면 지하수가 올라와 몸통과 주둥이를 통과해 아래로 쏟아진다. 뽐뿌 물이다. 식수, 등목 등 모든 생활용수는 뽐뿌 물.


빠다 = 버터. butter. 미군 부대에서 야매로 민간에 나온다.

야매. 뒷거래의 비표준어.






그때는




굵은 소금 즉 천일염밖에 없었다. 갈아서 설탕처럼 부드러운 소금은 한참 후다.

설탕도 흑설탕 즉 갈색으로 알갱이가 굵었다. 흰설탕 역시 오래 지나서 나왔다.


돼지기름은 훌륭한 지방 섭취원.

참기름, 들깨기름이 있었지만 조리용이고 식물성.

생선은 육고기에 비해 흔했지만 주로 단백질이지 지방은 아니다.

그러니 돼지기름은 유일하다시피 동물성 기름.

그 외는 토끼, 꿩, 참새 등 사냥한 동물들이나

잡기가 어려우니.


세 끼 밥은 맛보다 배 채우기고, 쌀밥 구경하기 힘들고, 보리밥, 옥수수밥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반찬이라곤 김치나 채소류, 고추장, 된장, 조선 간장이고 왜간장이 별미이던 시절,

고기라곤 일년에 두 번 설날, 추석, 그리고 생일. 그것도 미역국에 보이는 손톱만한 조각이 전부이던 시절,

다들 기름기 하나 없이 깡말랐고, 어쩌다 배 나온 아저씨 보면 부자라며 배 나온 걸 부러워하던 시절,

몸에 지방이 턱없이 부족하니 돼지 기름이 입에  당길 수밖에.


돼지기름 이후에 한참 지나서 콩기름 즉  식용유가 나왔다. 콩은 콩밥으로 해먹는 식량, 된장 담는 메주, 반찬인 콩장으로 먹었다. 기름으로 짜먹을 만한 양은 없었다.


접시는 없다.






지금은




삼겹살 구울 때 줄줄 흘러서 종지에 받아내는 기름이 돼지기름이다. 음식물 쓰레기로 버린다. 돼지기름을 굳혀서 밥에다 비벼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80년대인가 식용유가 나오면서 닭을 튀기기 시작. 근자엔 올리브유, 카놀라유, 포도씨유 등 벼라별 거로 다 기름을 내어 먹는다.


예전에는 돼지비개와 건축할 때 임시로 설치하는 구조물은 비계라고 하여 구분했던 거 같다. 국어 시험에도 나왔던 거 같은데 지금은 어학사전 검색하니 돼지 비계, 임시 설치 구조물도 비계라 한다.





어학사전



비계


(1)  (기본 의미) 짐승, 특히 돼지의 가죽 안쪽에 붙은 두꺼운 지방 부위

(2)  높은 건물을 지을 때 디디고 서도록 긴 나무 따위를 종횡으로 엮어 다리처럼 걸쳐 놓은 설치물




잊혀지기 전에, 더 늦기 전에 1968년 전후 생활상을 서투나마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국민학교 입학 전후 꼬맹이 눈으로, 가급적 그때 언어로. 저물어 가는 저와 새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한때는 이런 시절이 있었노라고.




2017. 07.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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