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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영업의 원리

by 가매기삼거리에서


영업에 나는 없다.




1990년.

LG 쌍둥이 빌딩에서 근무할 때다.

나는 석유화학 원료 수입 담당이다.


거래선은 아닌데 거래를 트려고 하는 한국 상사가 둘 있다.


하나는 삼성물산.

거래가 없었지만 한 달에 한 번쯤 영업맨이 찾아온다.

꼭 둘이서 한 조다.

꼭 감색 정장에 머릿 기름 바르고 넥타이 곧게 매고 구두는 반짝반짝 금방 닦은 거다.

한 번도 약속 시간 어긴 적 없다.

내게 정보를 주고, 내가 정보를 주면 메모한다.

미팅할 가치가 있다.


하나는 LG상사. 같은 그룹사다.

첫 거래 트자며 수시로 찾아온다.

꼭 혼자서 온다.

늘 후즐그레하다. 전날 술 먹었다는 걸 안다. 재킷은 벗고, 넥타이는 풀리고, 구두는 닦기나 하는지 모를 정도.

아무 때나 찾아온다. 때로 약속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그가 주는 정보가 없다. 내가 정보를 줘도 관심 없다.

미팅할 가치를 못 느낀다.

세 번째 오더니 같은 그룹인데 너무 한 거 아니냐며 짜증을 낸다.

비싸서 안 된다고 했더니 그룹 돈이지 니 돈이냐며 화를 낸다.

네 번째 오더니 이번에 거래 안 하면 신상에 안 좋다고 협박한다.

비싸서 안된다고 했더니 쌍욕 하면서 주먹질할 태세다. 이 정도면 깡패다.


삼성이나 LG나 같이 술 먹은 적은 없다.

삼성은 술 한 잔 하자고 여러 번 청했지만 정중히 거절했고, LG는 후환이 걱정돼서 안 먹었다.


30여 년 전 얘기지만 원리는 같을 거.

영업에 나는 없다.





* 배경




내가 맡은 석유화학 원료의 수입은 전량 수입이고 우리 회사가 첫 수입이다. 삼성과 LG는 그 원료의 국제 거래에 문외한이다.


석유화학 원료의 수입은 주로 롱텀 베이스 계약으로 거래한다. 미쓰비시 상사, 옥시덴탈이 롱텀 계약자다.

롱텀은 가격보다 안정적인 물량이 우선이다. 롱텀 물량 계약은 사장, 전무, 나 셋이 결정했다.


스팟은 누구와든 수시로 거래한다. 가격이 우선이다. 롱텀이든 스팟이든 가격은 전무, 나 둘이서 결정한다.

일본이 싫지만 감정으로 거래하진 않는다.


LG 상사는 스팟이었고 늘 가격이 비쌌다.

그룹사건 뭐건 회장 일이고 내 일은 양질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경쟁적인 가격으로 공장에 공급하는 것이다. 그룹 회장이 직접 와도 비싸게 사라 하면 안 할 판이구만.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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