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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매기삼거리에서 Sep 10. 2020

룸싸롱녀

영업의 원리


영업에 나는 없다.




여담.
비지니스 연속이라 딱딱해서요.ㅎㅎ


1990년.

미쓰비시상사 에구찌는 우리 둘을 2차 술 접대로 강남 룸싸롱에 데려간다.

쭉쭉빵빵 몸매 죽이다 못해 미스 코리아급. 얼굴은 죄다 탤런트. 20대 초중반.
세상에, 대한민국 최고 미녀는 여기 지하에 다 모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말 붙이기 수줍어 양주만 벌컥벌컥.
처음 간 강남 룸싸롱은 너무 신기했고 긴장되었다. 허나 대화는 저급했고 행동도 딱 그만큼이다. 값 비싼 양주에 흠뻑 취해 마이크 잡고 목 터져라 노래 부르고 잔잔한 음악이 깔리면 부르스 고. 허나 1차부터 너무 마셨다.  가누지 못하였으니.



ㅡㅡㅡ




몇 달 후 다시 술자리.


으레 그렇듯이 1차는 소주로 때운다.
또 강남 거기 룸싸롱 가자고.
올커니, 기다렸던 바.
저번엔 아무것도 몰라서 소주에 양주에 부어라 마셔라 술에 골은 데다 절정 미녀의 마약 같은 향기에 취해 인사불성.
이번엔 일부러 덜 마셨다.
소주잔을 얼른 덮고 냉큼 따라나선다.

이번에도 녀 넷.
그러니까 남 일 대 녀 일 짝지어서.
헌데 일본 맨과 나 대하는 게 다르다.
맨들에겐 온갖 교태에 귀에 대고 소곤소곤. 일어는 스미마센밖에 모르누만 한국말, 일본말 서로 알아듣기는 하는지.
나에겐 무덤덤 사무실서 업무 보듯이.

어랏, 이게 뭐 하는 거?
가만, 저번에도 이랬네?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일 상사맨들은 우리 말고도 접대가 일이고 돈도 그들이 낸다.
난 몇 달만에 나타나고 녀들 보기엔 뜨내기로 얻어먹는 처지.

암만 그래도 그렇지.

그들은 유부남 난 총각 아닌가. 철전지 원수 일본 놈 대 토종 한국산 아닌가. 논개는 못 될지언정 역차별이라니.
허나 내가 혼자서 열불 나면 뭐 하나.
돈 내는  건 그들이고 단골도 그들인걸.

암만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뭐야.

지들이 접대받는 거야. 우리 둘 접대하러 여기 데리고 온 거 아녀? 그럼 녀들에게 확실히 교육해야지. 녀는 내게 곁도 안 주고 말이야.

에라이, 술 기분 낼라고 먹지 잡치려고 먹나. 자리를 박차고 확 뛰쳐나가고 싶다.
그렇지만 나름 애쓰고 돈 써 마련한 귀한 자리다. 녀들도 그렇다고 모른 척하는 건 아니고 생글생글 웃기는 하고 돈 벌라고 험한 자리 뛰어든 동생뻘이다. 판 깨지 않으려고 치미는 부아를 애써 가만히 참는다.



ㅡㅡㅡ



몇 달 후 다시 술자리.


역시나 2차 강남 거기 가잔다.
단칼에 No!
내가 미쳤니 또 거기 가게.
녀가 절색이면 뭐해. 너들만 신경 쓰고 난 개털이구만.
그리고 우리 둘 맘대로 2차 맥주, 양주 그리고 나이트클럽 데려가서 땀 뻘뻘 흘리며 미친 듯이 뛰고 놀았다.

일 맨들은 맹숭맹숭.

그 후로 일 맨들은 다시는 룸싸롱 가자는 소리 안 한다.
고럼, 영업하는 니들이 내게 맞춰야지
바이어인 내가 너들 기분 맞추냐.ㅎㅎㅎ




ㅡ90년대 직장 얘기다. 시대가 그랬다. 여성 비하나 추켜세울 의도 손톱만큼도 없다. 실상이 그랬다는 거.



ㅡㅡ석유화학 원료 수급 시장은 일본 상사 독무대. 그들을 끼지 않고는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

거간꾼일 뿐이나 원료보다도 운반선을 꽉 움켜쥐어 공급자, 수요자 양측 모두 힘이 없다. 극일은커녕 따라가기도 어려운 처지.



ㅡ녀들 보기에 내가 친일파 같았으리라. 일본 놈한테 술 얻어 먹다니.

몰랐던 거 아니다. 일부러 민족 감정을 철저히 눌렀다. 거래는 거래다. 힘을 키워야 한다.



ㅡ녀들은 나름 영업에 나는 없다에 충실한 거다. 마담이 시켰겠지. 돈 내는 놈이 왕이라고. 다 떠나서 총각이 좋냐, 유부남이 좋냐. 그러면서 위안.ㅋㅋ


ㅡ강원도 촌놈에 최고급 룸싸롱은 첨 가봤고 그들과 술 할 때마다 술에 절었다. 다음날 술 깨면 이상하게 룸 가는 길, 룸서 나오는 길만 필름이 끊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두 번 갔던 거기가 어딘지 전혀 모른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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