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날, 포스, 판매, 청소, 친절 등 제반 업무는 하면 되는데 검수가 문제였습니다. --
첫 편의점 근로 조건은 주 5일 18시부터 22시까지 4시간, 최저 시급 8,350원, 정식 출근은 다음 주 일주일 후고 내일부터 이틀간 두 시간씩 네 시간 교육받기로.
첫 출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31년 전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첫 직장에 첫 출근했었지요. 그땐 대기업 여의도 63 빌딩, 지금은 지방 소재 편의점. 여전히 첫 출근은 설레었습니다. 새로운 생활의 시작이니까요. 97년 퇴직 후에도 출근은 계속했지만 사장으로서 직원들 월급 주는 입장이었고 이번은 급여를 받는 입장이니 같은 출근이라도 느낌은 달랐습니다.
첫날. 포스, 판매, 청소, 친절 등 제반 업무는 하면 되는데 검수가 문제였습니다. 처음 도착한 우유, 발효유, 커피 등 수십 가지 상품을 검수하는데 상품도, 상품명도, 진열 위치도 모르니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반도 못 했는데 아이스크림류 도착. 녹으니까 이거부터 검수를 서두르고 다시 처음 상품으로 돌아가 검수하는 중에 이번엔 도시락, 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등 도착. 검수만 하면 빨리 익힐 수 있는데 손님 올 때 다 카운터로 달려가서 계산하니 더뎠습니다. 점장님과 다음 근무자가 포스 계산을 일부 맡아줘도 손님이 가장 붐비는 저녁 시간대라 더 늦어졌습니다.
자발적으로 교육 시간을 두 시간 늘리고 그것도 모자라 더 연장하고, 교육일을 2일 더 연장해도 무리가 컸습니다. 이래서는 검수로 인해 포스 재고 관리는 물론 판매까지 문제가 번질 상황. 근무일은 이틀 후로 다가오는데 그 사이에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사장님께 사실대로 말하고 바로 사람 뽑을 수 있는지 정중히 양해를 구했습니다. 있다 하였고, 검수 제대로 익혀서 다시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죄송한 마음에 교육 기간 시급은 안 주셔도 된다고 말했고, 마지막 날 오피스 청소를 구석구석 한 시간 가량 깔끔하게 해 드렸습니다. 그전 삼 일도 검수로 헤매었을지언정 청소만큼은 출근해서 한 번, 퇴근 직전 한 번 꼬박꼬박 했습니다.
이거 하나 제대로 못 하나 크게 낙담되었습니다. 60세 가까우니 치매끼가 있나 걱정도 되고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교대 근무자들에게 편의점 초짜 때 어땠냐고 물으니 둘은 배우는데 일주일도 더 걸렸다고, 다른 한 명은 단 한 시간 교육받고 실전 투입됐다고 자랑하는데 믿기지 안 않습니다. 정말이냐고 재차, 삼 차 물어도 그렇다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검수 생략하고 바로 진열하면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이렇게 대망의 첫 편의점 출근은 검수의 벽에 막혀 허망하게 끝났습니다.
2019년.
참고.
검수기 사용하면 상품명을 몰라도 검수를 신속하게 할 수 있다. 이 편의점은 검수기 없이 검수. 편의점마다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