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매기 삼거리에서 Jan 05. 2020

야간 장년 우대 편의점

편의점 알바 합격하기


-- 하지만 나는 페이스업을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 첫 째, 상품명을 익혀야 했고, 둘째, 최고인 전임자를 넘는 최고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





큰일이다. 큰 맘먹고 어렵게 구한 편의점 알바를 그깟 검수를 못해 스스로 그만두다니. 이 나이에 편의점 알바도 못 하면 할 게 마땅치 않다. 일자리가 없는 건 아니나 그래도 내겐 편의점만 한 건 드물다.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안이될방. 안 되는 이유보다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자. 검수를 빨리 하려면 상품명을 알아야. 그러려면 고객이 한가한 야간에 상품을 하나씩 만져가며 익히면 되지 않을까? 가만, 야간이면 물류 입고도 안 하지 않나? 헌데 야간을 버틸 수 있나? 군대서 GOP 철책서 야간 근무해봤잖아. 주야가 바뀌면 건강에 안 좋은데? 일단 몇 달 해보자. 밤새 상품을 만져보고 장표에서 상품명 익히고 진열 위치까지 하나하나 배우는 거야. 상품이 2천여 가지니까 차근차근하면 세 달이면 충분할 거고. 그러면 주간으로 갈아탈 수 . 


다시 알바몬 방문해 편의점 야간 구인을 찾는다. 장년 우대가 눈에 띈다. 장년 우대라니? 이런 도 있어? 우대는커녕 죄다 장년 대인데? 잘못 본 거 아녀? 다시 봐도 맞고 봐도 틀림없다. 시간대는 00시~09시에 주 3일 근무. 그래, 야간 3일이면 상품 배울 시간 충분해. 나머지 4일은 주간에 휴식하면 건강 악영향 줄일 수 있고.


한번 합격해 본 경험을 살린다. 수순대로 합격을 부르는 자기소개서를 문자 넣고, 먼저 전화해서 적극적으로 대시하니 역시나 바로 면접 보잔다.


점장:밤새는데 하실 수 있겠어요.

나:군 시절 최전방 철책에서 밤새도록 야간 근무 선 경험이 있습니다. 밤샘 근무 문제없습니다. 체력도 좋습니다. 혹시 야간에 물류 들어오나요? 


점장:저희 매장은 밤에는 물류가 안 들어옵니다.

나:아, 그러면 제게 딱 맞습니다. 검수만 없으면 포스, 친절, 청소 이런 건 누구보다 잘할 자신 있습니다. 


점장:잘 됐네요. 다른 편의점은 밤에도 물류 들어와요.

나:밤에는 다 안 들어오는 거 아닌가요?


점장:편의점마다 배송 시간이 달라요. 우린 밤에는 안 들어와요. 저희는  시급 얼마입니다.

나:알겠습니다. 근데 장년 우대는 뭐지요?


점장:이번에 야간 그만둔 분이 장년이세요. 일 년 는데 지금까지 알바 중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장년을 우선 뽑으려고요.

나:그렇군요. 전임자가 최고라 부담되네요. 최고를 넘는 최고가 되어 보겠습니다.


점장:기간은 얼마나 근무할 수 있나요?

나:야간이라 해봐야 알 거 같습니다. 주야가 바뀌는 게 쉽지 않겠지만 하다 보면 적응되겠지요. 일단 3개월 정도 근무해 보겠습니다. 그때 다시 상의하시지요.


점장:언제부터 출근하실 수 있으시죠?

나:아무 때나 가능합니다.


점장:그럼 이번 주부터 출근하시죠.

나:예. 일자리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두 번째 편의점도 합격!


00시부터 03시까지는 손님이 많다. 손님이 끊기기 시작하는 03시부터 04시까지 청소하고 상품 채우고. 그러고 나서 상품 전체를 하나하나 만져가며 일일이 페이스업. 


face up이란 뒷 상품을 앞으로 당겨 상품 전면이 보이도록 하고, 상품명이 비뚤어지거나 거꾸로 뒤집힌 건 바로 세우는 일을 말한다. 점장님이 내게 페이스업을 지시한  아니다. 진열 상태로 보아 전에도 지금도 페이스업을 관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페이스업을 꼭 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 첫 째, 상품명을 익혀야 했고, 둘째, 최고인 전임자를 넘는 최고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품을 판매하면서 바코드 찍을 때마다 상품명 크게 복창하기. 이러면 상품명이 절로 익숙해진다. 이건 모든 손님에게 적용.


페이스업과 복창 외에 청결, 인사, 친절 등 제반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 하는 건 당연지사. 그렇게 하니 점장님 대만족. 점장 어머니까지 오셔서 매장이 너무 깨끗해졌다고 칭찬해 주신다.

 

그렇게 두 달 지났다. 밤에 일하는 건 문제없다. 9시간 동안 한순간도 졸지 않고 손님 보거나 일한다. 새벽에 한두 시간 한산한 시간대에 잠깐잠깐 의자에 앉을 뿐 가능한 앉는 걸 피한다. 졸기 싫고 나태해 보일까 봐. 근데 이상하게 퇴근 후 주간에 수면은 점점 더 어렵다. 뭐든 할수록 익숙해지고 몸이 적응하는데 주야가 바뀐 수면은 갈수록 힘들다. 09시 일 끝나고 퇴근해 아침 먹고 바로 자면 한두 시간 후 13시경 잠이 깬다. 그때부터 잠이 안 와 헤맨다. 다시 잠드는 시간이 16시, 18시 점점 늦어진다. 어떤 때는 오전 잠도 못 자고 18시 넘어서 간신히 잠이 든다. 억지로라도 자야 하니 안 먹던 술을 먹게 되고. 막걸리 먹다가 고량주로 도수가 세지고. 배 고프면 잠 안 오니 배불리 먹자마자 잠 청하고, 깨면 먹고 잠 청하고. 그래도 잠이 오고.


도저히 안 되겠어서 점장님께 사정을 말하고 건의드렸다.


나:혹시 주간 자리가 나게 되면 주간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점장:검수가 안 된다고 했잖아요.


나:밤에 페이스업하면서 상품 히나 하나 익혔습니다. 첫날부터 매일 해서 이제 검수 문제없습니다.

점장:어려울 걸요. 입고량이 많아 경력자도 쉽지 않아서 양 많은 날은 물류 도착하면 제가 도와줘야 해요.


나:처음엔 조금 늦어도 금방 빨라질 겁니다. 현재 근무자 대신 제가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혹시 주간에 언제든 자리가 비게 되면 저를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점장:어렵습니다.


나를 야간 고정으로 맡기고 싶은 거다. 그리고 3주 더 일하니 면접 때 약속한 3개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열심히 해도 시급이 오르거나 주간이 비어도 야간에서 갈아탈 희망이 없었다. 새 사람 뽑아달라 하고 사람 뽑힐 때까지 근무하겠다고 했다. 인수인계했다. 새 알바 채용했다. 그렇게 3개월 야간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


퇴직 의사를 일주일 전에 말한 거다. 한 달 시간은 줘야 한다며 언짢아했다. 개학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알바 구하기 어렵다고. 몰랐다. 죄송하다고 했다. 앞으로 그만두게 되면 한 달 전에 말해야겠다.


장년 우대 편의점은 장년은 야간에 지원하란 뜻이. 드물지만 장년 우대라고 광고하는 편의점이 있다. 야간이 주간보다 뽑기 어렵고, 주간은 젊은이나 주부만으로도 수월하게 채우기 때문. 장년을 써 본 사람은 안다. 장년이 책임감이 강하다는 걸.



2019년.




















이전 23화 대망의 첫 편의점 출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