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출퇴근하는 편의점 알바
professional 편의점 알바
-- 차가 있으면 편의점 알바 구하기가 엄청 유리하다. 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
운전대를 잡는다. 인구 33만 도시를 북에서 남으로 12킬로 가로지른다. 편의점 도착. 9시간 근무하고 다시 차 몰고 퇴근한다..
차가 있으면 편의점 알바 구하기가 엄청 유리하다. 어디든 출퇴근 가능하니까 시 전체가 내 구역. 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다. 편의점 알바 대다수는 집 근처에서 구한다.
기름값은 좀 들지만 어디든 멀어봐야 25분. 출퇴근하는 기분이 난다. 집 인근이라면 가까운 건 좋지만 집과 직장이 구분이 안 되는 느낌. 면도, 머리 감으면서 세면, 옷 갈아입고 나서 운전대를 잡으면 매일 출발이 새롭다.
차는 BMW.
BMW래야 별 거 아니다. 20만 키로 넘었고 13년째니 중고 시세 700만 원이나 되려나 모르겠다. 소형차 새 차 반 값 정도. 꼴에 외제차라고 오래되니 수리비가 엄청 든다. 물어보니 매년 300만 원가량. 휘발유 값도 제법 든다. 출퇴근용 왕복 12킬로 주 5일 뛰는데 월 10만 원.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주 4일 알바 수입 월 130만 원에 비하면 세다.
근데 왜 몰고 있냐고?
첫 째, 팔 타임을 놓쳤다. 아껴 타다가 2년 전 치킨 배달하느라 한동안 차를 험하게 몰았다. 특히 과속방지턱을 쿵하고 부딪히길 수십 번. 심지어 차가 붕 떴다가 쾅한 적도 몇 번. 미션 경고등 떠서 수리하고 엔진 경고등 떠서 또 수리하니 뜨아악 천만 원.
둘째, 정이 들었다. 첫 차 엑셀 중고, 그다음 프린스 중고, 스타렉스 중고, 쫄딱 망해서 아내가 처제에게서 얻은 조그만 차 슈마. 그러다 형편이 풀렸다. 이러다 평생 중고차만 몰겠다 싶어 난생처음 새 차 사기로.
제네시스가 출시되던 해였다. 풀 옵션이 6천만 원대. 가족회의. 이 차 사자 하니 다들 화들짝 놀랐고 아들 둘이 BMW는 얼마냐고 묻는다. 가격은 비슷하다고 하니 같은 가격이면 무조건 BMW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가족회의 며칠 전.
현대차에 들렀었다. 제네시스 시승할 수 있냐니까 안 된다고, 6천짜리를 시승도 안 해보고 사냐니까 구입 대기자가 많다고. 말투나 본새 보니 배짱 장사. 실망해서 전시장을 나선다. 근데 바로 옆에 빈대 붙은 듯 낮은 건물에 BMW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엉거주춤 들어서니 영업맨이 바짝 따라붙는다. 친절하다. 제네시스 시승 안 돼서 옆에 있길래 들렀다니 제네시스 살 돈이면 BMW 가능하단다. 난 차에 관심 없다. 더구나 외제차는 문외한. BMW가 명차라는 거 외에는 아는 게 없다. BMW가 제네시스 값이라고? 그게 말이 돼? 얼마냐니까 6천만 원대. 좀 작은 차는 4천만 원대. 시승되냐니까 예약하면 언제든지 오케이. 그렇다면 BMW가 제네시스보다 좋은 점 세 가지만 말해보라 하니 일단 운전석에 앉아보시란다.
시동 켜라고. 정면 유리를 보라고. 뭐야? 뭔데? 유리 앞쪽에 담벼락만 보이는구먼. 아래쪽을 보라 해 보니 무슨 노란색 숫자가 허공에 떠 있다. 이게 뭐요? 속도계란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라고 한단다. 비행기 조종석에 있는 거라고. 비행, 운전 중에 계기판을 내려다보면 전방 시야를 놓쳐 사고 위험이 크다고. 맞아. 계기판 볼 때마다 늘 불안했었어. 전방을 보면서 속도를 같이 본단다. BMW는 운전자의 안전을 우선 생각한단다. 신기하다. 인정.
그럼 두 번째는 뭐요? 차에서 내리란다. 바퀴를 보라고. 런플랫 타이어란다. 펑크 나도 80킬로 속도로 100킬로 간다나. 미쳤군. 그게 말이 돼요? 타이어를 두텁게 만들어서 공기가 빠져나가도 찌그러지지 않는다고. BMW는 운전자의 안전을 우선 생각한다고. 말 되네. 인정.
그럼 세 번째는? 이번에는 차 안쪽 측면을 가리키며 여기에 측면 에어백이 있다나. 그런 건 비싼 차에 다 있는 거 아니냐니까 BMW는 1초 후에 터진다나. 왜? 에어백은 즉각 터져야지 하니까 측면 충돌은 통계상 전복 사고가 많고 중상이나 사망이란다. 구를 때 바로 터지면 에어백 의미가 없다고. 차가 구르는 시간이 있어서 탑승자를 보호하려면 구를 때 터지고 나서 1초인가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BMW는 운전자의 안전을 우선 생각한다고.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 인정.
안 돼, 그래도 안 돼! 한국 사람이 국산차 사야지 수입차를 살 순 없어. 속으로 굳게 다지고 겉으론 차 좋네요 하고 BMW 전시장을 나온다.
다시 가족회의로 돌아와서.
아들 둘과 아내에게 현대차와 BMW 전시장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니 아들 둘은 거 봐요 하면서 역시 BMW란다. 의견 통일이 안 된다. 시승해 보고 결정하기로.
시승 날.
가족 넷이 타고 부르릉 출발.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 톨게이트 지나자마자 진입 차로. 여기선 급가속하면서 잽싸게 고속도로로 들어서야. 슈마 몰던 습관대로 악세레타를 꾹 밟는다. 부아앙 굉음과 동시에 몸이 뒤로 확 젖혀지며 순간 시트 등받이에 내 체중이 실리는 게 느껴진다. 비행기 이륙할 때 느낌과 같다. 깜짝 놀라 악세례타서 발 떼고 조심조심 주행. 악세레타 살짝 밟으면 부웅 가속 좋고, 브레이크 살짝 밟아도 제동이 훌륭하다. 시승 내내 그리고 집에 와서 BMW 책자를 보면서 급가속에 온몸이 제쳐지는 여운이 잠들 때까지 지속된다.
다음날.
처제 차 슈마에 아들 태우고 시내 주행. 전날 BMW 시승 탓에 브레이크 살살. 멀리 앞 차가 금방 가까워진다. 어어 추돌하겠어. 브레이크 있는 힘 다해 꾸욱 밟으니 앞 차 뒤에 추돌 1cm 남기고 가까스로 멈춘다. 이번엔 회전 구간. 이것도 전날 시승 탓인가 아무 생각 없이 핸들 돌리니 몸이 홱 돌아 운전대 놓칠 뻔. 전날 책자에서 본 차세 제어 장치가 있고 없고 차이다.
시승 후 제네시스냐 BMW냐 마지막 가족회의.
아들 둘 BMW, 난 급가속에 확 제쳐지는 맛에 꽂혀서 BMW. 아내는 어떤 차든 오케이니까 빼고. 3:0으로 BMW 결정. 차종 528i.
그렇게 국산 중고차만 네 대 몰다가 처음 산 새 차가 BMW다. 그 후 13년. 이제 20만 키로가 넘었다. 잘 풀릴 때 그 차 사서 그런가 그 차 사니까 잘 풀리는 건가 차 산 후로 사업도 잘 되고 아들 둘도 잘 자라주었다. 난 처음 시승에 홀딱 반했고 13년 타면서 정이 듬뿍 들었다.
허나 현재는 진퇴양난. 팔고 새 차 사자니 차 수리비로 들어간 천만 원이 아깝고, 소형차 사도 천 몇 백은 줘야 하니 주저하고. 수리비가 년 300 들지만 4, 5년 타도 천 몇 백가량 소형차 값과 비슷하니 망설이고, 중고 시세가 7백이니 감가상각은 거의 끝났고 소형차는 감가상각이 되니 헷갈린다. 기름값은 장거리 안 뛰니까, 보험료, 자동차세도 중고차 기준이니까 큰 문제없고. 여하튼 지금도 여전히 210 마력에 잘 달리고 잘 서니 드라이빙의 매력이 나를 붙든다.
게다가 나 한창때 새 차로 만나서 같이 잘 나가다가 지금 난 편의점 알바로 반년 급여가 천만 원이 안 되고 녀석 몸값도 그렇고. 이제는 60 환갑이 턱 밑이라 몸 여기저기 돌아가며 고장 나서 고쳐 쓰고, 녀석도 마찬가지. 내가 녀석인 양 녀석이 나인 양 공감 가고 애처롭다. 그러니 똥차지만 여즉 몰 수밖에.
그래서 어쭙잖게 BMW 몰고 출근하는 편의점 알바가 된 거다.
2020. 01.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