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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안개 Feb 27. 2021

강아지의 매력에 눈을 뜨다

친구네 강아지, 스피케와의 일화

2018년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당시 친구가 해외 여행간 동안 친구네 강아지 스피케를 일주일동안 우리집에 데리고 있었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스피케 이전에는 강아지를 직접 만져본 일도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그런 내가 스피케를 돌봐주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날 이전에 스피케를 여러 차례 만났었고, 친구네 여행을 앞두고서는 강아지 데이케어처럼 스피케를 데려와 하루종일 데리고 있어보는 연습도 며칠이나 했었다. 하지만 우리집에 재우는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다음은 그런 스피케와 보냈던 날의 기록이다. 이 기간 스피케와 함께 한 것을 계기로 이후 2년 동안, 나는 나의 강아지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강아지에게 화해의 개념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샤워를 싫어한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긴 산책을 하지 못했고 자기 전에 볼일도 보게 할 겸 한 번은 나가서 걸어야 했으며, 비 내린 길을 걷고 돌아와선 씻지 않으면 잘 수 없었다. 내 침대에 같이 올라와서 잘 테니까. 샤워를 시키고 나선 강아지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헤어드라이어를 가져다 댔다. 털을 말리지 않으면 감기 걸릴 수도 있고 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마룻바닥을 다니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드라이어 소리와 바람이 싫어서 화장실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는 스피케를 붙잡고 털을 말려주었다. 그러고 났더니 화장실을 나와선 마치 삐친 것처럼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 자기 침대로 곧장 들어가 버렸다. 손을 가져다 대면 만지지 말라는 듯 몸을 뒤로 빼는 걸 보면서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고 느꼈다. 나도 또 오지 말라면 가는 사람은 아니어서, 내 옷을 챙겨 샤워하러 화장실로 갔다. 내가 곁을 떠나자 궁금해졌는지 자기 침대를 빠져나와 몇 발짝 뒤쫓아오는 너를 곁눈으로 볼 수 있었지만, 스피케가 보는 앞에서 말없이 화장실 문을 닫았다.



샤워를 마친 후 책상 앞에 돌아와 아이패드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멀찌감치 내가 뭐 하고 있는지 확인하러 온 시선이 느껴진다 싶더니, 어느새 스피케는 내 발 밑에 와서 발가락을 핥기 시작했다. 마치, "Are we okay now? 나 사실 그렇게 화 많이 난 건 아니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내 입장에선 한 번 거절당한 게 있으니 만질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것인데... 그렇게 스피케가 옆에서 자꾸 낑낑대었으므로 용기 내어 손을 가져가 대 보았다. 그랬더니 스피케는 기다렸다는 듯 내 손 안으로 파고들었다. 강아지란, 어마어마하구나, 사람과 소통하는 같아..

 


얘기 나온 김에 방금 한 비오는 밤 산책 말인데, 셋이서 북쪽 언덕길을 걸었다. 북쪽 언덕길은 우리 집 뒤편에 난 길로, 주로 내가 혼자 걷던 길. 스피케랑 같이 걸었던 적도 있고 파트너와 둘이 걸은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셋이 걸어본 건 처음이었다.
 


오늘 밤 그 까만 길을 셋이서 나란히 걷는데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다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런 날씨, 이런 어두움 속에서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다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자기네 강아지와 우리 스피케가 코를 맞대거나 엉덩이 냄새를 맡도록 기다려주었고, 강아지들이 그러고 있는 동안 우리도 둥그렇게 마주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땅은 젖고 바람은 스산하게 부는 이 까만 가을 밤, 뜻밖의 웃음과 여유를 선물로 받은 느낌이었다. 그 길을 걷고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정말이네, 강아지의 존재만으로 단숨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스피케를 며칠 데리고 있으면서 사실은 누가 나를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불편하기도 했었다. 내가 뭘 먹고 어느 방에 들어가고 뭘 꺼내는지 다 쫓아와서 확인하는 존재가 낯설었었다. 그래서 오늘 낮에만 해도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혼자 낮잠을 청했다. 근데 그랬더니만 얘가 자꾸 밖에서 문 틈에 콧바람을 휭휭 불어 넣으면서 주변을 맴돌고 심지어 낑낑 소리를 내는 바람에 30분도 못 머물고 거실로 나와야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내 품 안에 파고들고는 배를 하늘로 향하게 하고 사람처럼 누워서 낮잠을 자는 너. 며칠 같이 있었다고, 너네 엄마 아빠 알면 섭섭하겠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내게 기대 오는 존재가 사랑스러운 한편, 그 무게가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지난 몇 주간 우리에게도 강아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줄곧 상상해봤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정말 엄청난 일이 될 거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기가 하나 생기는 것과 다름없을 것 같다. 한 생명과 그 삶을 온전히 사랑하고 마지막 길까지 챙겨주는 일이라는 것에 대해 곱씹어 보고 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사랑과 책임을 마주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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