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요일을 뒤로 하고 나는 눈을 떴다. 일요일이었다. 날씨는 생각보다 추웠고 나는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면서 일어났다. 여러가지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과 마음이 둘 다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유튜브를 멍하니 보기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유튜브라니 사실 최악이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
2. 별의별 괴담과 영화 정리본, 프로게이머들의 인게임 보이스와 게임 스토리 등등을 정주행해버린뒤 이러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일어나서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해장 할 겸 뼈해장국이 먹고 싶어져서 어은동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하지만 뼈해장국은 팔지 않았고, 나는 그래서 있다가 여자친구 줄 빵을 샀다. 어은동에 꼴마르 라는 빵집인데 나름 이 동네에서 상당히 유명하고 내가 알기론 하레하레, 슬로우 브레드, 그리고 이 꼴마르 아저씨들이 제빵월드컵에 나가서 상을 받은 것으로 안다.
3. 여자친구와 오랜만에 만나고, 대파우동이 먹고 싶어서 학교 근처에 있는 일식집"요시다"를 갔다. 구운 대파 우동은 상당히 맛있었다. 자주 올 것 같다. 대파가 이렇게 맛있으면 스페인의 칼솟타다는 얼마나 맛있을까 생각했다. 일본이 간장과 무,양파를 잘 쓴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파도 야무지게 잘했다. 여자친구와 만나고 여자친구에게 서울에서 사온 노티드 도넛을 받았고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콜드브루와 슈크림라떼를 테이크아웃해서 날씨도 화창해서 산책을 했다. 천변을 따라 걷는데, 날씨가 화창하고 분위기가 너무 봄이었다. 그래서 잠깐 앉아서 쉬려고 하는데 여자친구가 벌벌 떨길래 내 코트를 벗어서 입혀줬다.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바람을 맞다보니 생각보다 추웠다. 아직 봄은 아직인가 보다.
4. 집에 다시 돌아가서는 내일 퀴즈 준비를 하고 나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그래서 유튜브나 SNS만 멍하게 보길래 이럴바엔 제대로 쉬어야지 하면서 웹툰을 셀렉했다. 월요일에 '꼬리잡기'라는 웹툰이 있는데, 너무 좋았다. 내가 그동안 제대로 된 추리물에 목 말라있었다. 소설, 영화, 드라마, 웹툰 중에서 요근래 최고의 추리물을 발견했다. 그대로 쭉 정주행하고 자기까지 시간이 남은 나는 넷플릭스를 켰다. 왕가위 감독이 넷플릭스에 입성했다. 저번에 화양연화를 봐서 너무 대단하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예전에 봤던 중경삼림을 다시 보기로 했다. 20살인가 21살때 본 기억이 있고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가 너무 좋아서. 시티팝을 좋아하던 이유가 마냥 긍정, 마냥 부정도 아닌 이 회색의 감정이 좋다고 했는데 다시 본 중경삼림도 그렇다. 회색빛의 도시와 그에 어울리는 회색빛의 사람.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들. 아름다운 미장셴과 아직도 기억에 남는 노래들. 걸작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명대사는 "만약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한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한다면 만년으로 하고싶다.". 그리고 자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인생시인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를 다시 다이어리에 필사했다. 현실은 고난이지만 그걸 이겨내고자하는 의지가 담긴 시로 늘 마음에 외우고 다닌 시이다. 이렇게 문화로 가득찬 일요일이 저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