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솔솔 뿌린 토마토

(갱숙아 어여 먹어~할머니는 꿈속에서도 날 먹인다.)

by 동백이



할머니는 뜨끈뜨끈한 음식을 만들어서 날 먹인다.

오늘 음식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숙 같은데,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날 먹이려는 할머니의 정성이 느껴진다.


"갱숙아"

할머니는 늘 그랬다.

내가 힘들 때나 속상한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내 꿈에 나타나서 갱숙이를 부르시며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다.


어릴 때 할머니의 집은 좁고 군불을 때서 뜨끈뜨끈해서 장판이 까맣게 타 있었다. 부뚜막에 쭈그리고 앉아서 할머니가 주는 음식을 꿈속에서도 먹고 있었다.

그렇게 할머니가 주신 음식을 먹고 나면 풀리지 않던 일, 힘든 일이 해결되는 듯하다.

할머니는 하늘나라 가셨어도 늘 날 걱정해 주시고 날 사랑해 주시는구나.


신년이 되면 한 번씩 점집에 가서 신년 운세를 보고 싶어 진다.

요즘은 너무 점 값이 비싸서 가지 않는다.

그래 그 돈으로 고기나 사 먹자.

답답할 때 점을 보러 갔더니, 매년 갈 때마다 할머니가 늘 날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꿈을 잘 꾼다. 꿈이 잘 맞는다.

20년 동안 남편과 안 좋을 때마다 이혼이라는 큰 걱정거리가 있을 때마다 할머니가 꿈에서 나에게 음식을 해 줘서 먹고 나면 남편과의 불화는 조금씩 잠잠해졌다.

할머니가 꿈에 나와서 일이 잘됐다고 나의 믿음이었을 것이다.



아이들 아빠와 헤어진 후 이번에는 꿈에 단정하게 쪽 찐 머리 하얀 옷과 아이보리색 카디건을 입은 할머니가 날 챙겨 주는 게 아니라, 마트 카트 안의 세 아이를 밀고 있는 내 카트를 할머니가 밀어주고 아이들을 챙겨주면서 날 지그시 바라보신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이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할머니의 꿈속의 이야기인 것 같다.

할머니가 아이들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 같다.

할머니 저 걱정 안 해~걱정하지 마세요.



중학교 때 할머니 집에서 어렵게 학교 다닐 때, 난 늘 불퉁거렸던 기억이 난다.

세상사 무엇이 그리도 힘들었을까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사람들도 있고 부모님이 헤어질 수도 있었는데, 난 그 둘을 다 먼저 겪었기 때문에 세상 괴로움을 다 나만 가지고 사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그 시절 할머니에게 조금만 따뜻하게 대해 드릴 걸, 왜 할머니가 무슨 말만 하면 도끼눈을 뜨고 또박또박 대들었을까나?

늙으면 어린아이가 된다고 토마토에 설탕 안 뿌려주고 손주들만 뿌려줬다고 안 먹는다고 토마토를 밀어버리는 할머니에게 "안 먹으려면 말아"

그냥 잘라서 토마토에 설탕 몇 숟갈 뿌려 드릴걸. 할머니와 말다툼을 하다가

"내가 부모가 어디 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내 모습이 눈물에 흐려 어른거린다.

왜 그렇게 악을 쓰고 소리 지르면서 할머니하고 싸웠을까?

설탕 솔솔 뿌린 토마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은 하늘이 무너지고 다리에 힘이 풀려 어떻게 기차를 타고 내려왔는가를 모르겠다.


너무 많이 울어 온몸에 힘이 빠지고 손발에 쥐가 날 정도였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는 눈물은 의지하고 살아온 정일까? 속죄의 눈물일까?

꿈속에서라도 할머니에게 따뜻하게 대해 드리고 싶었는데, 할머니는 별말씀이 없이 먹이기만 한다.

지금은 나도 늙어가고 자리를 잡아가서 그런지 잘 나오시지 않는다.

"할머니 지금도 나 힘든데 한번 왔다 가시지~”



저번 추석 때는 할머니 시댁 조상 봉안당을 만들었다고 화장을 해서 다 그쪽으로 옮기셨다고 해서 찾아뵙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 나 잘살고 있어, 아무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셔”

요즘 우리 친척들과 가족 근황을 할머니 봉안당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하였다. 정말 듣지는 않겠지만, 난 그렇게 할머니에게 14살 손녀가 되어서 이야기를 한다.



둘째 이모하고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봉안당을 내려왔다.

산소에도 몇 번 안 찾아본 게 마음에 걸린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환타를 사 들고 갔다 왔는데, 할머니 다음에 환타 사 올게.

진작에 찾아뵐걸~


아이들이 설탕 뿌린 토마토를 좋아한다. 아이들을 보면서 할머니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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