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관계’가 힘들어 용기 내어 ‘퇴사’를 하였다.
퇴사 후 심신의 안정을 찾아가고 건강을 찾아가고 있으면서 마음의 양식 독서를 많이 하고 있다. 두 달 동안 그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고, 책 욕심이 많아 사놓고 읽지 못한 책들을 순서대로 읽어보고 읽는 중이다. 그중에서 내 마음에 상처를 감싸주었던 감사한 마음을 전해준 직장 선생님이 전해 준 책 한 권을 다시 꺼내 본다.
작년 1월 관계에 지쳐 숨이 안 쉬어질 만큼 힘들어서 허덕이고 있을 때 사무실 내 책상 위에 메모와 함께 올려놓고 갔던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황선우’ 책 [경숙 쌤 ~ 무슨 일인지 제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일과 관련된 거라면 도움이 될까 하여 사 봤어용, 응원해요!]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에게는 눈물주머니가 하나씩 가지고 있다. 누구든지 살짝 건드려주면 예민한 사람들은 감동해서 터져버린다. 난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참고 곰처럼 일만 하는 스타일 간지럽게 건드려줬던 것이다. 누가 써줬는지 글씨의 메모 주인을 찾으러 다녔다. 한참 어린 선생님. 나와 같이 글 쓰고 책을 좋아하는 감성이 통하는 선생이었다. 어리지만, 참 고마운 선생님이었다. 그 당시에는 고맙다는 생각과 그 책을 읽어도 잠시 감동이 왔어도 일이 너무 바쁠 때고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책만으로 나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었다.
작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같은 업무를 하는 직원끼리는 미묘한 감정이 있는가 보다. 거기에 많이 차이도 없는 겨우 6개월밖에 차이도 안나는 선임이라는 사람이 일을 다하는 것 같이 뭔가 일을 계속하는 것 같은데, 자기한테는 업무 공유는 안 해주는 것 같지 많이 바쁜 척만 하지 꼴사나웠을 것이다.
선임인 나는 업무전달 할 시간이 부족해서 간단하게 전달하고 메일 오면 복사해서 후임 책상에 복사해서 놔주고 똑같은 최저임금에 더 많은 업무분장에 일이 더 많고 주말까지 집에 가서 일을 할 때가 더 많아도 말 않고 일해서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보고하고 또 보고하고 예산업무를 보고하는 가운데, 대상자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람은 미웁게 보려고 하면 다 미웁게 보인다.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그 사람의 바라보는 눈이다.
일에 지쳐 도와달라고 손 내미는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선생님 업무잖아요.”
또 어떨 때는 “도와줄 일 있으면 시키세요” 조심스럽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일이라서 황선우 작가도 늘 혼자 하는 일을 택하고 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늘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나도 불편한 관계의 사람에게 시키는 게 싫어서 혼자 하고 말았던 것이다. 큰소리 나는 게 싫었다. 같이 하는 것도 배웠어야 했다. 힘들어도 같이 힘들었어야 했고, 누구나 에게 의지하는 법도 배우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법이다. 누군가에게 손 내미는 것도 용기이다. 꺼끄러운 관계였어도 그 관계 속에서 싫었어도 손 내밀 수 있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내 몸은 지쳐가고 아팠던 것이다. 그 당시 너무 힘들어서 대상포진까진 걸렸던 것이다. 마음의 병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이제 다시 읽으니 이제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가장 큰 상처는 이 선생님과의 관계보다 그 선생님이 내가 너무 힘들고 지쳐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날 깎아 내리는 이야기를 상사에게 전달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그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받고 그것을 믿고 그 당시는 날 필요해서 붙잡고 며칠 후 나에게 쏘아붙이는 상사의 소나기를 난 우산도 없이 영문도 모르고 다 맞고 그 자리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들어야 했던 것이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머리가 아프다고 했고 상사 앞에서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고 한소리 더 들어야 했고, 정말 머리가 하얘졌다.
내가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알지도 못한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나?
(난 업무 공유를 안 한 직원, 대상자 방치, 총괄로써 후임과 융합이 안 된 책임, 상사에게 보고 시 전달을 못 한 부하직원(머리 아프다고, 얼마나 친하면, 표정으로 말하지 말고, 말로 하라고), 행정 서류보다 대상자가 우선 등 등) 많기도 하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는데, 영혼을 팔아가면서 일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저런 것이구나, 저렇게 다 쏘아붙이고 나보고 상처받지 말란다. 난 상처받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난 우리 팀 작은 회의, 대화라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치사하지만, 나도 적었다가 나중에 말할 일이 생기면 다 말할 것이다. 이것도 할 수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다, ) 내가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고 할 수도 있으니 꼭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동안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잠을 못 잔다. 억울하고 상사가 직원들의 마음을 그렇게 못 헤아릴까? 저녁마다 쓴 소주로 달랬다. 늘어나는 것은 몸무게이다.
그래서 난 50이 넘은 이 나이에 어렵게 퇴사를 결정하였다. 어디서 날 써줄지 불안감에도 이 불편한 관계보다 났다고 생각하고 퇴사를 결정했다. 그 불편한 선생님은 내가 다 잊은 줄 아나 보다 내가 사직서를 다시 내니 팀원은 놀랐지만, 그 상사는 “많이 힘들었죠” 눈물이 핑 돌았다. 난 살면서 동료를 헐뜯는 사람을 처음 겪어봐서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도 문제는 있었을 것이니 반성 중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다시 읽으면서 감사하고 관계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떤 관계이든 쉬운 관계이든 어려운 관계이든 나에게 거름이 되는 관계가 될 것이다. 관계의 어려움을 50이 넘어서 다시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