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생애가 규격 봉투 몇 장에 담겨 폐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선배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확인했다."
며칠 전, 함께 택배 배달을 했던 옛 동료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 그의 목소리는 몹시 떨리고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안부 인사나 전하려 S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며칠째 받지 않아 직접 고시원을 찾아갔더니 이미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연고자가 없어 장례조차 치르기 막막하다는 통곡 섞인 말에 나는 홀린 듯 주소를 받아 적었다.
사실 나는 그 주소를 받아 적으며 죄책감이 들었다. S선배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매일 아침 화물 터미널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안부를 주고받던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배는 전화를 피했고, 가끔 연결되어도 "바쁘다, 나중에 통화하자"며 서둘러 끊곤 했다. 나 역시 내 삶의 무게를 핑계로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며 더 이상 번호를 누르지 않았다. 그 무심했던 1,000일의 시간이 오늘 비보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옛 동료와 함께 선배의 집에 도착했다. 도어락의 건전지가 방전되어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억지로 열어젖힌 현관. 그 틈으로 달려든 것은 마중 나온 주인의 인사가 아니라, 오랫동안 고여 있던 쿰쿰한 먼지와 부패가 섞인 '정지된 시간'의 냄새였다. 가장 빨리 상차를 마치고 도로를 달리던 베테랑, S 선배의 종착지라고는 믿기 힘든 초라한 공간이었다.
기억 속의 선배는 언제나 활기가 넘쳤다. 내가 택배 일을 시작하고 첫 명절 특송 기간, 쏟아지는 물량에 정신을 못 차리고 오배송을 연발하던 날이었다. 비까지 내려 젖은 박스들을 붙들고 길가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내 곁으로 익숙한 탑차가 급정거했다.
"넋 놓고 있으면 길바닥에서 밤샐 거야? 비 들이치기 전에 얼른 옮겨 타."
S 선배였다. 그는 땀에 젖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내 구역의 물량 절반을 자신의 차로 옮겨 실었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내게 그는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종이컵에 따르며 말했다.
"택배는 속도가 아니라 코스야. 내가 도와줄게. 힘들면 언제든 도와달라고 해. 함께 배달 하자. 그래야 내일 또 출근하지."
그날 빗소리를 들으며 트럭 안에서 마신 커피에서는 달콤한 설탕 향과 함께 든든한 '내 편'의 온기가 났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그의 방에서는 주인 잃은 옷가지들이 내뿜는 차가운 냉기와 곰팡내만이 진동한다. 나를 향해 "함께 하자고 " 했던 사람은, 왜 이 좁은 방 안에서 철저히 혼자였을까. 내가 먼저 그 침묵을 깨고 문을 두드렸다면, 선배의 마지막 코스는 조금 달라졌을까.
방 안을 정리하며 나는 선배가 왜 이토록 처절하게 고립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마주했다. 서랍 안쪽, 빛바랜 차용증과 법원에서 날아온 지급명령서들이 수북했다.
동료의 말을 들어보니 선배의 사정을 어렴풋이 나마 알 수 있었다. 믿었던 고향 지인의 보증을 섰던 것이 화근이었다. 지인은 야반도주했고, 그가 남긴 억대의 빚은 고스란히 선배의 탑차 위로 쏟아졌다. 밤낮없이 도로를 달렸지만 이자는 독초처럼 자라났고, 그 과정에서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견디다 못한 아내는 결국 선배를 등졌다.
그는 미안함과 수치심 때문에 우리에게서 스스로를 지웠던 것이다. 동료들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소리가 나올까 봐, 혹은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 그는 스스로 섬이 되기를 자처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옷장 구석에 걸린, 누렇게 빛바랜 택배사 유니폼이었다. 한때는 그 유니폼을 입고 빌딩 숲을 누비던 화이팅 넘치는 선배였으나, 배신이 남긴 상처와 그로 인한 고립은 그를 패잔병으로 만들었다. 수천 명의 문 앞을 두드리며 물건을 배달했지만, 정작 그가 쓰러졌을 때 그의 문을 두드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조차도 말이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것은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이었다.
"아빠가 미안해..."
편지 위로 번진 눈물 자국은 그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었을 미안함과 고독을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으며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짐이 빠져나간 방은 소름 끼칠 정도로 넓고, 또 적막했다. 반나절의 작업 끝에 선배의 50년 인생은 쓰레기봉투 열 개와 재활용 박스 세 개로 압축되었다. 바닥을 닦아내자 오후의 햇살이 창틀을 넘어 텅 빈 방 안으로 길게 누웠다.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을, 혹은 누군가를 그토록 기다렸을 그 공간에 이제야 따스한 볕이 든다.
마지막 점검을 마치고 문을 닫기 전, 나는 빈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이번 배송지는 누구의 배신도, 갚아야 할 빚도 없는 곳이길 바랍니다. 거기선 좀 편안히 쉬세요."
옛 동료와 함께 S선배의 유품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퇴근길 인파와 택배 차량들이 분주하게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며 웃고, 누군가는 짐을 싣고 바삐 움직인다. 저 수많은 흐름 속에 섞여 치열하게 달렸던 S 선배.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며 배달하고 쌓아 올리는 것들 중, 마지막 문턱까지 쥐고 갈 수 있는 건 대체 무엇일까.
내 손에는 선배가 남긴 먼지 냄새뿐이지만, 마음 한구석엔 그 옛날 비 오던 날 트럭 안에서 마셨던 커피 향이 희미하게 겹쳐진다. 연락이 끊겼던 3년의 공백이 못내 아리지만, 이제야 나는 선배의 마지막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와 다시 연결된 기분이 들었다. 지는 해를 등지고 걷는 나의 그림자가, 오늘따라 유독 선배의 뒷모습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