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불맛이 빚어낸 두 그릇의 위로


가끔은 자장면과 짬뽕이 생각날 때가 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삶의 맛이 너무 달거나 혹은 너무 매워 어디론가 그 마음을 쏟아내고 싶을 때 말이다.

아내와 중국집에 들렀다. 녹슬고 낡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주방에서 터져 나오는 웍 소리가 우리를 생(生)의 활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무거운 무쇠 솥이 빨간 불길 위에서 식재료와 부딪히며 내는 그 소란함은, 우리가 건너온 세월의 거친 숨소리를 닮았다.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수저통에서 숟가락 하나를 꺼내 아내 앞에 놓는다. 주방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수증기와 낡은 환풍기가 뱉어내는 기름진 냄새가 식당 안을 채운다. 우리는 그렇게 붉고 검은, 대조적인 두 그릇 앞에 마주 앉는다. 이것은 배를 채우는 끼니를 넘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 평화로운 합일점을 찾아가는 담백한 일상이다.

25년 전, 서울 변두리의 작고 허름한 중국집이 우리의 데이트 장소였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막 내디뎌 주머니 사정이 얄팍했던 내게, 아내는 "자장면이 제일 좋다"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날 아내는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붉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낡은 테이블에 앉아, 나는 아내의 옷에 춘장이 튈까 봐 전전긍긍했다.

식탁에는 노란 단무지 접시가 놓여 있었다. 단맛을 좋아하는 나와 매운맛을 즐기는 아내. 시작부터 우리는 극과 극의 취향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내 자장면 위에 노란 단무지를 살포시 얹어주었고, 나는 아내의 매운 입술을 달래주려 사탕을 미리 챙기곤 했다.

서로의 맛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그 맛이 낼 수 있는 최선을 서로를 통해 완성하던 시절이었다. 자장면의 달콤함이 사랑의 시작이었다면, 짬뽕의 매운맛은 우리가 앞으로 견뎌야 할 세상의 거친 풍파를 일러주는 예고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연애의 달콤함이 생의 고단함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울 신길동의 작은 2층 집에 첫 보금자리를 틀던 날, 창밖 풍경은 낯설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낡은 집들 사이로, 녹슬어가는 가로등이 비스듬히 서서 지는 해를 배웅하고 있었다. 길가에 흩어진 깨진 연탄재와 담벼락의 시멘트 자국은 우리가 이곳에서 견뎌내야 할 현실의 두께처럼 느껴졌다.

이삿짐을 대강 들여놓은 뒤, 먼지가 채 가라앉지 않은 텅 빈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미리 주문한 자장면 두 그릇이 도착했다. 아내가 나무젓가락을 쪼개며 건넸다. 툭, 소리를 내며 갈라진 젓가락 끝에는 미세한 가시들이 돋아 있었다. 신문지 위에는 춘장이 묻은 랩이 아무렇게나 굴러다녔고, 그 옆으로는 이사하며 끈에 묶여온 낡은 책상다리의 흠집이 보였다. 우리는 말없이 면을 비볐다. 불어 터진 면발이 춘장과 엉겨 붙어 뻑뻑했지만, 그 한 입이 주는 안도감은 무엇보다 컸다.

창밖 낡은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자 거실 안으로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자장면을 들이켜다 아내를 보았다. 아내의 하얗던 얼굴에는 이삿짐을 나르다 묻은 듯한 검은 얼룩이 가늘게 그어져 있었고, 아내의 발 옆에는 먼지 묻은 낡은 운동화가 힘없이 놓여 있었다.

"미안해, 좋은 집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날 우리가 먹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서로의 불안을 잠재우는 동질감이었다. 검은 춘장은 가난했지만 뜨거웠던 우리 청춘의 가장 정직한 기록이었다.

인생은 늘 자장면처럼 달콤할 수만은 없었다. 때로는 아내의 짬뽕 국물처럼 목이 턱 막히는 매운 순간들이 찾아왔다. 11년 동안 아내는 아울렛 매장의 형광등 아래에서 온종일 서 있어야 했다. 할인 행사가 시작되면 세일 정보를 묻는 목소리와 상자를 뜯는 소리가 아내의 귓가를 쉴 새 없이 울렸을 것이다.

아내와 함께 하는 퇴근길, 인파에 밀려나듯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아내의 뒷모습은 한껏 내려앉아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는 아내의 발밑을 보았을 때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아내의 검은 구두 뒷굽은 바깥쪽으로 심하게 닳아 있었고, 인조가죽은 군데군데 벗겨져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닳은 구두 굽이 아내가 견뎌온 하루의 무게임을 나는 알았다. 유난히 지쳐 보이던 어느 날, 아내는 짬뽕 국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조용히 말했다.

"오늘 정말 그만두고 싶었어."

아내의 목소리는 뜨거운 국물보다 더 위태롭게 들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장으로서 내가 짊어진 무게만큼, 아내가 감당해 온 삶의 무게도 짬뽕 국물처럼 붉고 선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내 자장면 그릇에 담긴 완두콩 몇 알을 아내의 숟가락 위에 얹어주었다. 아내의 손가락 끝에는 박스 테이프를 뜯느라 생긴 잔상처들이 밴드 아래 숨겨져 있었다.

"당신 고생 많은 거 알아. 그래도 우리 애들 생각해서 조금만 더 힘내자."

내 서툰 위로에 아내는 코끝을 찡긋하며 다시 국물을 들이켰다. 아내는 짬뽕 속 홍합을 일일이 까서 내 자장면 그릇 위에 올려두었다. 그것은 아내가 내게 건네는 무언의 응원이었다. 삶의 불맛은 짬뽕의 그것과 닮아있다. 재료의 숨을 완전히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진한 육수가 우러나오듯, 우리의 생도 그렇게 뜨겁고 매운 시간들을 통과하며 비로소 깊은 맛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짬짜면'이라는 합리적인 발명품을 다시금 돌아본다. 선택의 고통을 줄여주는 영리한 대안이지만, 그것은 결핍이 주는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맛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짬뽕을 택하면 자장면의 감칠맛을 그리워해야 하고, 자장면을 택하면 짬뽕의 개운함을 포기해야 한다. 그 포기와 그리움이 있기에 우리는 다음 식사를 기약하며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어쩌면 우리는 짬뽕을 포기함으로써 비로소 자장면의 온전한 한 그릇을 얻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와 나의 삶도 그렇다. 서로의 취향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며 25년을 버틸 수 있었다.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고 양손에 다 쥐려 할 때, 정작 본연의 맛은 희석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 좁고 낡은 식탁에서 배웠다. 식당 구석에서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의 누런 날개조차 우리의 이 투박한 조화를 알아주는 듯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선 길, 가게 문에 달린 작은 종소리가 등 뒤에서 짤랑거리며 멀어진다. 25년 전 그날처럼 아내의 옷에 춘장이 튈까 전전긍긍하던 서툰 청년은 이제 없지만, 대신 아내의 굽은 어깨와 거칠어진 손마디를 가만히 짚어줄 줄 아는 노련한 반려자가 그 자리에 서 있다.

나는 슬며시 아내의 손을 잡는다. 매장 일을 견디느라 예전보다 마디가 굵어지고 거칠어진 손이다. 아내는 이내 내 손에 자신의 손을 꼭 맞춘다. 자장면과 짬뽕이 한 상 위에서 어우러지듯, 우리의 깍지 낀 손 위로 밤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알고 있다. 내일의 월요일이 여전히 맵고 칼칼한 짬뽕 국물처럼 우리의 목을 태울지라도, 서로의 곁에서 자장면의 단맛 같은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그 어떤 풍파도 결국은 지나갈 '한 끼의 허기'일뿐이라는 것을. 어둠이 내린 골목길, 나란히 걷는 우리의 발걸음 뒤로 길게 늘어진 두 그림자가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풍경이 되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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