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프레임 속에서 한 여인이 고함을 지른다. 분을 참지 못한 손길이 상대의 서류 뭉치를 낚아채 허공으로 뿌린다. 하얀 종이들이 바람의 결을 따라 무력하게 흩어진다. 아나운서는 '사회 지도층의 부적절한 처신'이라며 건조한 말을 보탠다. 나는 그 '지도층'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대기업 회장의 아내, 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이 인품의 깊이를 증명하는 보증수표가 될 수 있을까. 진정한 권위는 스스로 쌓은 성벽 안이 아니라, 타인에게 내어주는 낮은 자리에서 비로소 빛이 난다.
사회생활에 첫 발을 디딜 무렵 30여 년 전의 일이다. 이른 아침, 배달 가방에 짐을 꾸리던 중 상급자의 호출을 받았다. 먹통이 된 컴퓨터를 살피려 무심코 그의 의자에 앉아 마우스를 잡았다. 그 순간, 등 뒤로 날카로운 호통이 꽂혔다.
“어딜 앉아! 옛날 같으면 워커로 정강이를 차였을 텐데.”
그 찰나, 내가 몸을 기댄 의자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침범해서는 안 될 ‘성역’으로 돌변했다. 그는 책상 너머의 글자를 다루고, 나는 길 위의 물건을 나른다. 그 짧은 외침에 담긴 선민의식은 나를 한순간에 갈아 끼울 수 있는 부속품으로 밀어냈다. 모욕감을 삼키며 구부정한 자세로 본체를 만지고 돌아 나오던 길, 낡은 군대 문화가 '직위'라는 옷을 갈아입고 여전히 누군가의 정강이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차갑게 살갗을 스쳤다.
서재 한쪽을 지키던 책 한 권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채소 장사로 자수성가한 청년의 성공담은 한때 내게도 푸른 희망이었다. 그러나 화면 뒤편에서 들려온 그의 오만한 행적은 책 속의 유려한 문장들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부와 명예가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기는커녕, ‘너는 내 아래’라는 견고한 벽을 세운 모양이다. 진정성 없는 사과문 앞에서 한때의 공감은 서글픈 배신감이 되었다. 그가 쓴 수천 개의 단어보다, 그가 삶으로 보여준 단 한 번의 몸짓이 더 진실에 가까웠다.
햇살이 정수리를 누르는 오후였다. 건널목 앞에 서자 커다란 파라솔 같은 차양막이 시원한 그늘을 펼쳐주었다. 예전엔 아스팔트의 열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신호를 기다려야 했던 곳이다. 누군가의 다정한 관찰을 행정이 귀담아들은 결과다. 만약 ‘높은 곳’에 있는 이가 ‘낮은 곳’의 제안을 효율이나 예산의 잣대로만 쟀다면, 시민의 굽은 허리를 펴주는 이 따뜻한 배려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그늘 밑에서 초록 불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내가 앉았던 차가운 의자와 지금 나를 감싸는 다정한 그늘의 거리를 생각했다.
타인의 고통을 풍경 삼아 웃으며 사진을 찍는 이들의 무신경함, 제자를 소모품으로 여기는 교수, 경비원을 무릎 꿇린 주민들. 이들은 모두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잃어버린 채, 영혼이 마모된 껍데기뿐인 삶을 살고 있다. 인간의 도덕이 증발한 자리에는 오직 ‘나’라는 거대한 욕망만이 남는다.
우리에게도 300년 동안 곳간을 열어 이웃의 허기를 살핀 경주 최부자 가문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높은 곳에 머물면서도 시선을 낮출 줄 알았고, ‘주변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약속을 삶의 궤적으로 증명했다.
한자 사전에서 ‘갑(甲)’과 ‘을(乙)’은 단지 계약 당사자를 지칭하는 무색무취한 기호일 뿐이다. 언제부터 이 메마른 글자들이 권력의 흉기가 되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존중이 먼저인 사회는 정녕 불가능한 꿈일까.
때로는 누군가의 갑이 되고, 때로는 누군가의 을이 되는 일상의 연속이다. 나는 내가 가진 의자를 누구에게 내어줄 수 있을지, 혹은 누군가의 뜨거운 일상에 어떤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을지 조용히 되짚어본다. 자유란 결국, 갑과 을이라는 허상에서 내려와 오롯이 ‘사람’의 무게로 서로를 마주 볼 때 얻어지는 것임을 믿는다. 나는 다시 길 위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