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영종도, 물류센터의 하루는
우~웅 하는 우편 구 분기의 울림으로 시작한다. 그 위로 국경을 넘어온 수만 개의 소포들이 일정한 속도로 쏟아진다. 이곳의 공기는 늘 먼지로 가득하다. 바코드 스캐너의 날카로운 '삑' 소리가 초 단위로 들리고, 인간의 근육과 관절은 '시간당 처리량'이라는 차가운 수치 앞에 바쳐진 부속품처럼 정교하게 소모된다.
그 숨 가쁜 흐름 속에서 나는 선배를 보았다. 선배라는 직함 뒤에 숨겨진 그의 느릿한 손놀림. 무거운 상자가 다가올 때마다 아주 미세하게 주춤거리는 그 0.5밀리미터의 망설임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이곳의 불문율을 어기는 행위였다. 누군가의 느림은 반드시 다른 누군가의 과적으로 전이된다. 나는 내 어깨를 짓누르는 물리적인 무게를 그의 '태만' 탓으로 돌리며, 마음속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세웠다.
어느 날 오후, 컨베이어가 과부하가 걸려서 멈췄을 때였다. 그가 분류하던 무거운 소포 하나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다가가 그 소포를 함께 맞들었다. 그때 내 손등 위로 겹쳐진 그의 손을 보았다. 거칠게 일어난 각질 사이로 깊게 파인 흉터와, 힘을 줄 때마다 미세하게 떨리는 근육의 진동이 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그것은 세월이 남긴 훈장이 아니었다. 무너진 뼈마디를 기어이 일으켜 세워 다시금 생의 현장으로 밀어 넣은 한 인간의 처절한 자국이었으며, 아픈 허리를 달래 가며 오늘 하루의 밥벌이를 완수하려는 가장의 묵직한 떨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떨림을 '노련한 엄살'이라 치부하며, 차가운 목례와 함께 자리를 떴다. 내 안의 엄격한 저울은 이미 그를 '함량 미달'로 판정 내린 뒤였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구원처럼 사내에 울렸다. 적막을 깨고 그가 다가왔다.
"식사하고 뭐 해요? 산책 같이 갈래요?"
의외의 제안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영종도의 가을 하늘은 지나치게 푸르러 도리어 비현실적이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가냘픈 목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다. 그리고 그는 8년 전의 기억을 꺼냈다.
그의 이야기는 나를 소독약 냄새 진동하는 하얀 병동으로 끌고 들어갔다. 교통사고로 인한 8시간의 수술. 그것은 척추를 고치는 시간이 아니라, 한 남자의 세계가 해체되고 재조립되는 고통의 연대기였다. 수술 후의 병동은 정적마저도 날카로웠다. 침상에 누운 그는 자신의 하반신을 타인의 유령처럼 느꼈다. 손끝으로 허벅지를 쓸어내려도 아무런 감각이 되돌아오지 않을 때, 그는 자신이 영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고장 난 가구에 불과하다는 비참한 깨달음에 직면했다.
휠체어 바퀴가 병원 복도의 타일 바닥을 구를 때마다 '드르륵'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그가 쌓아온 평온한 삶을 무너뜨리는 소리 같았다. 그의 아내가 울음을 터뜨렸던 병원 비상구 계단 옆의 작은 공간, 그곳의 공기는 서러웠다.
"나도 너무 힘들어, 당신만 아파? 나도 죽을 것 같아."
아내의 그 말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벽을 보았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베갯잇에 스며든 눈물은 그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어 결코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되었다.
산책로의 낙엽은 발밑에서 바스러졌다. 그 소리는 마치 내가 가졌던 확신들이 부서지는 소리 같았다. 문득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겹쳐졌다.
20대 후반, 밀가루 포대를 짊어지고 빵 반죽을 치대던 시절. 새벽 5시의 오븐 앞은 커다란 입처럼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발효되는 빵 냄새가 온몸에 배어들 때, 사람들은 나를 '기술을 배우는 청년'으로만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 뜨거운 증기 사이에서 책 속의 문장들을 구웠다. 반죽을 치대는 규칙적인 타격음 속에서 시의 운율을 찾았고, 오븐 앞에서 땀방울이 떨어질 때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꼈다. 세상의 시선은 내 하얀 위생복에 묻은 밀가루 먼지 이상을 보려 하지 않았으나, 내 안에서는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문학의 꿈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후 10년, 길 위에서 속도와 싸우던 배달직 시절은 더욱 시리고 외로웠다. 비가 쏟아지는 날, 헬멧의 실드 너머로 번지는 가로등 불빛을 보며 나는 시속의 시어 들을 떠올렸다. 축축하게 젖은 장갑을 끼고 핸들을 잡을 때, 자동차 창문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시선들은 대개 '서둘러야 할 하찮은 존재'라는 낙인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나는 사색하는 인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안에 물건을 배달해야 하는 기능적 도구일 뿐이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한낱 '기능공'이나 '배달부'라는 단어로 축약되어 판단되었으면서, 왜 나는 그에게 똑같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던가. 타인의 삶이라는 거대한 빙하 중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 10%의 얼음 조각만을 보고 그 무게와 깊이를 가늠하려 들었던 나의 오만함이 가을볕 아래 낱낱이 해부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 아내에게 물었다.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져본 적이 있어?" "응. 대부분 내가 생각했던 게 맞던데."
라는 아내의 답은 우리가 얼마나 견고한 '생각의 감옥'에 갇혀 사는지를 증명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진실로 채택한다.
이제 나는 물류센터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더 이상 시계를 보지 않는다. 대신 선배의 굽은 등을 본다. 그의 등이 그리는 곡선은 절망을 이겨내고 수직으로 서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시간의 궤적이다. 선배는 각고의 눈물 나는 노력 끝에 결국 재활에 성공했다. 그는 비겁한 도망자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일터를 떠나지 않는 가장 숭고한 보초병이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심연을 품고 있다. 내가 아는 것은 그의 이름과 직급뿐, 그의 삶이 통과해 온 어두운 터널의 길이를 나는 결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 뒤처질 때, 그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며 제 안의 무너진 조각들을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 세상의 모든 '그럴만한 이유' 앞에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가장 고결한 예의는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침묵'과, 그가 서 있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기다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