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 詩 ), 카타르시스 -
" K가 물었다. 선배, 남들은 시를 읽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어요. "
학창 시절 이 어려운 단어를 처음 만났다. 사전적 정의를 간단히 알아본다. 정화(淨化)·배설(排泄)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좀 더 쉽게 풀어보자면 우리가 어떤 감정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는 걸 의미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풀꽃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행복 >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시인은 세상과 사람을 향해 무엇을 말 하는 것인가. 나는 나태주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좋아한다. 또한 그가 쓰는 언어는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의 단어들이다.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 삶에 마음의 그림을 그려준다. 첫 번째 카타르시스다.
마경덕 시인의 시를 소개한다.
<신발論>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처음 이 시를 만났을 때 나는 여러 번 읽었다. 시인은 신발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마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대하는 듯하다. 한참을 곱씹어 보다가 아! 그렇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린 것이다. 나는 짐이었고 신발은 배였다. 비유를 통한 '발상의 전환'이 참 대단하다. 시의 해석은 읽는 이에게 맡긴다.
적어도 독자로 하여금 뭔가 깨달음을 주었다면 나는 그 시가 마음의 울림을 줌으로써 보다 풍부한 정서를 나누어 준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카타르시스다. 이 시는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시를 소개한다
<그런 사람>
언제든 만나 밥 한 끼 할 수 있고 허물없이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 비 오는 날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음악을 들으며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술은 잘못 해도 분위기 맞춰주고 맥주 컵 한잔에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좋다 / 같은 곳을 바라보며 공감해 주고 언제나 편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좋다/ 당신이 또는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친구, 연인 또는 내 모습의 바램을 그런 사람을 통해 빌려 본 시다. 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시 한 편은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시는 결코 까다롭지도 어렵지도 않다.
출근길 파란 가을 하늘의 설렘, 햇살을 받아 하얗게 부서지는 동해바다의 파도, 은은하게 물들어가는 도시의 노을, 타워 크레인 꼭대기의 둥근 보름달.
일과를 마친 아버지의 허름한 장갑, 반쯤 남은 아이스크림이 녹아 홀랑 길거리에 떨어졌을 때 아이의 아쉬운 표정, 숨 막히게 더운 여름날 나무
그늘 아래 요구르트 아줌마의 휴식에는 시 (詩)
가 있고 카타르시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