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티움 (마음의 휴식처)

by 임세규

*새로 발행하는 글과 함께 아래에 있는 글들 중 일부를 재발행합니다.*


ótĭum 은 라틴어다. 사전적 정의를 찾아본다. 한가(閑暇), 틈, 겨를, 여가, 휴식, 한산. 지난날 내 안에 있는 '오티움'은 무엇이었던가.


마음의 '창(窓)'을 열어 본다.

1975년. 시흥시 소하리에서 살던 시절이다. 낮잠에서 깬 나는 누이와 함께 어머니가 일하는 밭으로 갔다.


어머니는 내 팔뚝보다 큰 '무' 하나를 뽑아 흙을 털어냈다.


''집에 가져다 놓고 오렴."


어머니가 주신 '무' 하나를 들고 누이와 함께 둑 길을 걸었다. 강바람이 코끝으로 '흙 내음'을 실어다 줬다.


기분 좋은 공기를 한껏 마시며 집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 오티움이다.

1982년 가을 운동회 날이다. 출발선 앞에 서자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일곱 명의 아이들은 달렸다.


1등 상품이 받아쓰기 공책 10권에 연필, 지우개 세트였다. 나는 힘껏 달렸다.


"저~런.. 우~ "


안타까움의 함성이 들렸다. 결승점을 눈 앞에 두고 신발이 벗겨졌다. 넘어졌다. 무릎에는 빨간 피가 흘렀다.


손등에 찍혀야 할 파란색 '1등 스탬프 ' 가 날아가 버렸다. 울음을 꾹 참았다가 그날 저녁 너무 억울해하며 '엉엉' 울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어머니가 사다 놓은 학용품 세트가 있었다. 두 번째 오티움이다.


1990년 4월 5일. 벚꽃이 흩날리던 날 친구들과 함께 밤 열차를 타고 부산에 갔다. 일종의 '해방감'과 함께 멀리 떠나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4월의 수평선에게 저마다 가진 '꿈'을 이야기했다. 바다는 우리에게 푸른 청춘의 추억을 심어줬다.


30년이 지난 세월, 나는 해마다 4월이면 부산행 열차를 꿈꾼다. 세 번째 오티움이다.

1993년 11월의 새벽을 기억한다. 대구 군의 학교 교육생이었다. 내무반 건물 입구 보초를 섰다.


칼바람이 군복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까만 밤하늘에 세 개의 별들이 나란히 보였다.


''첫 번째 별은 할아버지 별이지. 어느 날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산속에서 길을 잃었어. 아버지를 찾으러 나간 아들이 돌아오지 못했지.


또 그의 아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나갔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어. 서로를 찾아 나선 그들은 나란히 밤하늘의 별이 되었지.


저 하늘에 있는 3개의 별들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이 순서대로 있는 거야. ''


함께 보초를 서던 입소 동기가 내게 해 준 말이다.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스무 살, 순수한 이등병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찬 바람 속에 맑은 '숨' 하나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네 번째 오티움이다.

2002년 6월 19일은 우리 부부의 결혼식 날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아내는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인천 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다. 다음날 나는 지구가 보여준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요트 위에서 바라본 일몰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보라카이 해변을 아내와 함께 걸었다.


햇살이 투명한 바닷길을 따라왔다. 다섯 번째 오티움이다.

2003년 10월 15일은 공무원으로 임용된

첫날이다. 아버지께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해드렸다.


"이제 됐다. 됐다."


안도의 숨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아버지의 눈시울을 보는 듯했다.


그해 8월 큰 딸, 선영이가 태어났다.


''네가 '튼튼이' (아이를 낳기 전의 예명) 로구나. 고생했다. 고생했어. 엄마 만나느라 힘들었지.. ''


가족 대기실에서 떨리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섯, 일곱 번째 오티움이다.

그러고 보니 수 없이 많은 '마음의 휴식' 오티움이 내 안에 있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날, 매년 가족과 함께한 속초, 강릉, 포항, 경주, 전주, 순천, 여수의 여행이 있었다.


살다가 힘겨운 시간마다 내 안의 '오티움' 이 있었기에 훌훌 털어내는 가벼움을 얻지 않았는가.


'반 백 년의 시간'을 살아왔다. 잠시 내 곁에 머물다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 어쩌면 길을 걷다가 만나는 사람들 중 내 어릴 적 동무가 있지 않았을까.

그들이 내게 준 '오티움' 은 무엇이었을까.


점심을 먹고 직장동료에게 '카톡'을 했다. '커피 한 잔 어때? ' OK 싸인이 왔다. 그와 회사 주변을 걷다가 커피숍에 들렀다.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편안하다.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 나눈 커피 한 잔의 담소에도 '오티움' 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휴식처'가 있다. 너무 애쓰며 살다 보니 삶의 고단한 장벽 너머, 이미 가지고 있는 '오티움'을 보지 못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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