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20권, 중종 9년 2월 3일 정유 4번째 기사 1514년 명 정덕(正德) 9년의 기록이다.
<서얼이 당상에 오른 전례를 이조로 하여금 아뢰게 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옛날에는 혹 도구(屠狗)와 관고(管庫)의 무리에서 사람을 천거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예전의 사람 쓰는 법은 세류(世類)이고 아닌 것을 고려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문벌에 구애되어 어찌 등용의 길이 넓지 않음을 보이는가!
석평은 천얼(賤孼) 출신으로 시골에 살았는데, 그가 학문에 뜻이 있음을 그의 조모가 알고서, 천얼임을 엄폐하고 가문을 일으키고자, 그 손자를 이끌고 서울로 와서 셋집에 살면서 길쌈과 바느질로 의식을 이어가며 취학시켰다.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여 중외(中外)의 관직을 거쳐 지위가 육경에 오르니, 사람들이 모두 그 조모를 현명하게 여겼다.
중종실록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꽤 많이 거론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그 남자의 진실 노비 출신 반석평이 방영되기도 했다. 노비 출신 성분을 감추고 과거급제를 한 후 형조판서 자리에 오른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종에게 자기 죄를 고백했지만 왕은 그를 용서해 주었다.